"라면, 네가 열무비빔국수 맛을 아느냐"

등록 2011.07.11 17:39수정 2011.07.12 12: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1학년부터 32살 결혼할 때까지 자취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라면을 얼마나 끓여 먹었겠습니까. 대학 다닐 때는 라면에 온갖 것들을 다 넣었는데 게중에는 참치통조림까지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주인집 강아지가 라면을 끓이면 밥상머리에 앉아 쳐다보던 기억이 새록새록납니다. 20년 이상을 라면과 아주 친했으니 위는 만신창이가 되었지요.


결혼을 하고 따뜻한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라면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보기도 싫었지요, 신라면블랙이 아무리 맛있다고 광고를 해도 나를 유혹하기는 힘들었지요. 물론 라면을 전혀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취생활 때 비하면 20분의 1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1인 큰 녀셕이 라면을 무지무지 좋아합니다. 라면을 먹지 못하게 하지만 잘 안 됩니다. 며칠 전에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밤늦게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밤참을 아내에게 주라고 했더니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펴보니 공부방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있더라고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a

국수를 삶은 후 흐르는 찬물에 손을 비비면서 씻으면 전분도 빠지고 면발도 졸깃졸깃해진다. ⓒ 김동수


"아니 밤참을 라면으로 먹어? 당신도 참 아이에게 라면을 끓여주다니."
"아니에요, 자기가 끓여 먹었어요."
"라면을 아무리 좋아해도 밤참으로 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 밤참으로 먹을 게 많아. 할머니가 주신 옥수수, 감자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둘 다 농약도 치지 않는 진짜 친환경 먹을거리다."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아빠가 라면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밤참으로 먹으면 몸에 좋지 않아, 알겠니?"
"예, 그렇게 할게요."

라면은 좋아하지 않지만 국수를 참 좋아합니다. 잔치국수도 좋아하지만 장맛철에는 열무비빔국수가 진짜 별미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먹는 비빔국수를 먹다 보면 장맛비에 우중충중했던 몸과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열무비빔국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박 2일>에서 강호동씨가 수박을 따면서 새참으로 열무비빔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고 아내에게 침이 넘어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입 안에 침이 남강입니다."
"아이구, 내일 또 열무비빔국수 만들야겠네요."
"몇 년 전에 국수 한 박스 산 기억나요."
"국수 한 박스를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형님이 주셨어요."
"그랬나? 그 때 정말 국수 먹다가 시간 다 보냈다. 라면보다 훨씬 낫잖아요."
"라면은 그냥 물만 끓이면 되지만. 국수는 열무김치, 고추장, 참깨, 오이가 들어가야 하고 잔치국수는 육수, 소풀(부추), 달걀 따위 손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 알아요."
"그래도 건강에 좋잖아요."


a

아내가 왼손을 칼질 하는 모습을 14년이나 봤지만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특히 어머니와 제수씨도 왼손잡이로 명절때 세 사람이 동시에 칼질을 하면 함박웃음이다. ⓒ 김동수


열무비빔국수는 물에 삶은 후 흐르는 찬물에 비비면서 씻어야 합니다. 아내 말로는 전분을 제게하고 면발이 쫄깃쫄깃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왼손으로 하는 칼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어머니와 제수씨가 왼손잡이라 명절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동시에 칼질하는 모습을 보면 배꼽을 잡습니다.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면 안 되는데도 왼손으로 칼질하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열무비빔국수에 들어가는 재료는 별 것 아닙니다. 열무김치와 고추장, 오이 그리고 참깨와 참기름입니다.


a

어머니이 키운 열무와 참깨, 직접짠 참기름. 아내가 직접 담근 열무김치, 장모님이 직접 담근 고추장. 별미 중 별미인 열무비빔국수로 만들어 준다. ⓒ 김동수


어머니가 키운 열무와 참깨, 그리고 직접 짠 참기름. 아내가 직접 담근 열무김치와 장모님이 담가 주신 고추장.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만든 열무비빔국수는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먹다보면 몸에 땀이 배입니다. 입안은 불이 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참기름 생각이 납니다. 큰 녀석이 4살 때 외가에 갔을 때 외할머니에게 참기름에 밥을 비벼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기름이 아니라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보니 집에서는 할머니가 우리깨와 직접 기름을 짠 참기름이고, 외할머니가 비벼준 참기름은 중국산이었습니다. 4살 아이도 중국산 참기름과 국산 참기름을 구별하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바로 그런 참기름으로 열무비빔국수를 비볐으니 맛은 더 할 말이 없습니다.

a

열무비빔국수를 먹으면 땀이 온 몸에서 흐른다. 장맛비에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씻어내주는 기분이다. ⓒ 김동수


"야, 정말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것은 아이들도 자주 먹어야 해요."
"또 라면 끓이지 말라는 것이죠?"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열무비빔국수 얼마나 좋아요."
"올 여름 고생 많이 하게 생겼네요."
"고생이 아니라 우리 가족 건강을 챙기게 생겼지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라면아 네가 열무비빔국수 맛을 아느냐.'"
"건강 챙기는 사람치고 건강한 사람 별로 보지 못했네요."
"…"

아내 말에 순간 멍했지만 맛있는 열무비빔국수는 올 여름 우리집에 별미가 되어 상에 오를 것입니다.
#열무비빔국수 #여름별미 #고추장 #라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3. 3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4. 4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5. 5 김용의 5월 3일 '구글동선'..."확인되면 검찰에게 치명적, 1심 깨질 수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