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는 허구적 논리의 모순
김상봉
그래프를 예로 들면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3000원일 때 기업은 240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보임으로써 균형점 E에서 만나게 되어 적정한 최저임금 3000원이 형성되었음에도 국가가 개입하여 최저임금을 4300원으로 상향 조정함으로 인해 비용 상승에 직면한 기업의 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의사인 수요는 20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소득의 증가를 원하는 노동자들의 일할 의사인 공급은 280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어 위 그래프 상의 (ㄱ) 만큼의 공백이 발생하게 되어 결국 800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게 되니 노동자를 위한다는 최저임금제도가 결국은 노동자를 실업의 길로 내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우리의 최저임금은 균형점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800만 명은 법정최저임금 이하를 받고도 고용될 의사가 있기 때문에 결국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어려운 곳에서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고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는 직장을 잃게 될 것이므로 저기능, 저임금 노동자의 복지 향상을 위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의 목적과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최저임금제도에 관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최저임금제도 무용론에 가깝다. 국가가 저임금의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제도 때문에 가진 기술이 없어 낮은 임금이라도 받아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이게 되므로 전혀 쓸모 없는 제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과연 그럴까? 최저임금에 관한 정의를 다시 보면 그 주장이 모순 덩어리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임금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시장논리에 의해 가격(즉 임금)이 자유롭게 결정되고 있는지 조금만 살펴 보면 그 허구성을 알게 된다. 시장논리에 의하면 상품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은 흥정을 하게 된다. 그 흥정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거래 일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흥정이 시작되면 판매자는 물건의 가격을 부른다. 이에 구매자는 가격의 인하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은 중간 지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됨으로써 거래가 성립된다. 위 그래프에서는 그 중간지점의 가격이 균형점 E이고 최저임금은 균형점 위에서 결정된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나타나며 현재 우리의 최저임금은 균형점 E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미 전제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이러한 거래 또는 흥정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임금인 상품 가격은 다른 상품과는 달리 판매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인 기업이 이미 정해놓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또는 일당)이 시장원리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지 않고 있음은 직접 인력 시장에 나가보지 않더라도 인터넷의 구직·구인 사이트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사지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기업과 정부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비정규직으로 그 지위를 바꿔버림으로써 고용불안은 물론이고 임금에 있어서도 가만히 앉아서 절반 가까이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게 시작된 회오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800만을 넘어 1000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금융위기는 모두 기업의 잘못과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의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하지만 고통의 분담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고통은 아무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어 왔다. 임금을 받아 가족과 생활해야 하는 노동자들로서는 실질적인 임금의 삭감은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기회 삼아 낮은 가격에 임금을 결정한 기업들의 행태가 태풍이나 이상기온에 따라 농축산물을 사재기 해 놓았다가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 놓으려는 비 양심적인 장사꾼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렇게 결정된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도 어긋나고 경제 민주화에도 위해를 끼치게 되므로 국가가 나서서 단속을 하지 않는가?
결국 노동시장에서 수용의 독점(비정규직 양산, 구조조정, 노조탄압 등)은 물난리 때 사재기 해서 나중에 비싼 값에 팔아 이득을 챙기는 시장질서 문란 행위와 다르지 않다. 독점과 과점의 피해 역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되며 국가 경제질서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법률 등의 여러 장치로 금지하고 있지 않은가? 기업프렌들리를 외치며 기업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 정부가, 근로조건을 적용받게 되는 가장 강력한 규범인 단체협약의 체결권자인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통해 이미 손발을 묶어버린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노동자와 기업간의 자유로운 흥정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설명은 궤변을 넘어 거짓에 다름 아니다.
편파적 개입에 의해 왜곡된 임금 결정정부의 강력한 기업 위주의 정책과 노동자의 권리 획득을 억압하는 정부의 기업 편들기 역 시장개입 정책으로 기업의 일상적이고 거대한 노동수요의 독점이 지속됨으로 인해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의한 임금의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E점이 시장가격의 균형점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현재 우리 나라의 노동환경에서 E점은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의해 형성된 균형가격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고 손발을 묶은 채 결정된 임금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균형점 E (3천원) 보다 위에 (4천3백원)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최저임금은 균형점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미 그 존재의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 짓는 규범은 노동 관련 법률과 취업규칙, 그리고 단체협약이 있다. 유리한 규범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노동관련 규범의 특징 상 여러 가지 기준들 중에서 노동자가 흥정을 통해 유리한 기준을 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단체협약이다. 이 단체협약은 사용자와 노동자단체 (즉 노동조합)가 자율에 의해 어떤 수준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근로조건을 향상 시킬수 있으므로 취업규칙과 법률보다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가장 가까이 서 있다. 그러므로 기업과 정부는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통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정한 거래에 의한 임금의 결정을 방해하고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억누르는 정부는 헌법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뇌까리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해치고 있는 주범에 다름 아니다.
OECD 기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가 적정 최저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