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별장, 구경 한 번 해봐

[한국의 최북단 강원도 고성 답사기 ②] 화진포

등록 2011.07.12 11:39수정 2011.09.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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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해수욕장으로 이루어진 화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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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호수 ⓒ 이상기


간성에서 점심을 먹고 7번 국도를 따라 화진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화진포호수를 따라 난 길을 지나 화진포 해변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바닷가로 간다. 화진포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생긴 석호다. 호숫가에 피는 해당화 때문에 화진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철이 지나 해당화 꽃을 볼 수는 없다. 화진포는 둘레가 16㎞나 되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화진포호는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또 바다와 연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여름을 즐겼다. 건국 초기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대표하는 두 인물, 이승만과 김일성의 별장이 이곳에 있고,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의 별장도 이곳에 있다. 그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과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도 그들처럼 여름에 화진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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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해수욕장 ⓒ 이상기


바다에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시원하게 펼쳐진 해수욕장이다. 길이가 1.7㎞, 폭이 50m, 수심이 1-1.5m쯤 된다. 동해안 해수욕장 치고는 수심이 낮아 안전하고, 솔밭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하며 쉴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 개장하지 않은 모래사장에 파도를 타고 온 해조류가 널려 있다. 그리고 바다 속에는 해산물을 채취하는 관광객들이 보인다. 바다로 들어가 몸을 구부리고 뭔가를 뜯는데, 자세히 보니 미역이나 톳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수욕장 앞에 떠 있는 섬이다. 해수욕장으로부터 500m 떨어진 곳에서 거북이가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기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섬의 이름이 금구도(金龜島)다. 머리 쪽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등 쪽은 대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꼬리 쪽은 자갈과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다.

1997년 4월 문화재연구소 학술 조사 결과, 금구도가 과거 수군의 진지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섬의 북쪽에는 석축이 일부 남아 있고, 섬의 중심부에서는 와편과 주춧돌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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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도 ⓒ 이상기


화진포는 1971년 12월 강원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1973년 민간인에게 처음 개방되었다. 1990년 11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현재와 같은 주차장과 진입로를 가지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 현내면 초도리에 화진포 해양박물관이 들어서면서 관광과 교육의 장이 되었다. 화진포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대단위 콘도미니엄, 컨벤션 센터, 스파 센터, 클럽 하우스 등이 들어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국제적인 종합 관광휴양지가 될 것이다.


화진포의 성

화진포는 일제강점기까지 외국인 별장지대였다. 해방 후에는 38선 이북이 되어 북한 땅이 되었다가, 6․25 사변 후 휴전선이 생기면서 수복된 지역이다. 처음에는 남북이 대치하는 최전선이어서 주민들이 많지 않았으나 1970년 들면서 다시 관광휴양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 관광휴양시설 중 화진포의 성을 먼저 찾았다. 이곳은 1950년까지 김일성(金日成) 별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안보전시관이 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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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오른쪽 아래 김정일 사진이 붙어 있다. ⓒ 이상기


우리를 안내하는 관광해설사는 북한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화진포의 성으로 향한다. 화진포의 성 관광은 바닷가로 난 계단을 따라 성에 오른 다음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계단을 오르며 보니 화진포 해수욕장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관광해설사는 올라가다 사진과 동판이 있는 곳에서 잠시 멈춘다.

동판에 보니 '1948년 8월 김정일이 그의 동생 김경희와 앉아 사진 찍었던 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계단 벽에는 당시 사진이 걸려있다. 네 명의 어린이가 찍은 사진인데,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정일이란다. 당시 그의 나이는 6세 미만이라고 적혀 있다. 이 성의 역사는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히틀러 독재를 피해 온 독일인 건축가 베버가 유럽의 성을 모방해 이곳에 2층의 원통형 건물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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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성 내부 ⓒ 이상기


해방 후 이 건물은 북한 당국에 수용되었고, 김일성 일가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연유로 김정일과 김경희가 이곳에 피서를 오게 되었던 것 같다. 이 건물은 6․25사변으로 파괴되었고, 1964년 재건축되어 장병휴양소로 쓰이게 되었다. 그 후 민간에게 이양되었고, 1999년부터는 안보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1층에는 화진포의 과거와 현재가 패널형태로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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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호수 너머 산이 있고, 그 너머로 흐릿하게 금강산 줄기가 보인다. ⓒ 이상기


2층에는 거실과 사무실 같은 생활공간을 배치하고, 의류와 사무용품, 생활용품 등을 전시해 놓았다. 3층은 일종의 전망대로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 이곳에 오르면 화진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안쪽으로 화진포 호수와 바깥쪽으로 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북쪽으로 바라보면 휴전선 너머로 금강산 연봉을 볼 수가 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바다 쪽으로부터 상승해 가는 금강산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의 성을 내려온 우리는 화진포 호숫가에 있는 이기붕 별장으로 간다. 이기붕(1896-1960)은 이승만과 함께 불명예스럽게 정·부통령에서 물러난 현대 정치사의 인물이다. 그는 이승만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다. 1951년 자유당 창당에 관여했고, 1954년에는 민의원 의장이 되었다. 그는 1960년 3월15일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했고 4월 28일 아들 이강석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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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붕 별장 ⓒ 이상기


이런 비극적인 최후와는 달리 화진포에 있는 그의 별장은 아주 조용하고 서정적이기 그지없다. 자연석을 이용해 벽을 쌓고 문과 창을 냈으며, 벽을 따라 지붕까지는 담쟁이덩굴이 자연미를 더해주고 있다. 집 주변에는 송림이 아름답고 집 앞으로는 호수가 펼쳐져 있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하는 주택의 배치와 건축기법이 보인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가 세 칸으로 구획되어 있다. 가장 먼저 접견실이 나타난다. 소파와 탁자 그리고 검은색 옛날 전화기가 있다. 모두 오래된 것이지만 아주 깔끔하다. 가운데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책상 위에는 타자기와 라디오, 스탠드와 전화가 있다. 한 쪽에는 필기구함도 보인다. 벽에는 이기붕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 옷걸이에는 한복 두루마기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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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내 사무실 ⓒ 이상기


마지막 방은 거실 겸 침실이다. 작은 침대가 놓여있고, 그 위에 진분홍과 연녹색 이불이 덮여 있다. 벽에는 이기붕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벽 앞에 작은 사물함이 하나 있고, 그 옆 옷걸이에는 여자 한복이 한 벌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정치적으로 불우하지만 않았다면, 별장에서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가정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가족 모두는 1960년 4월 28일 비극적으로 최후를 마친다.     

화진팔경(花津八景) 이야기

마지막으로 가야할 곳은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다. 그곳은 화진포 호수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4․19혁명 후 육군 관사로 되었다가 1997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역사적 자료와 유품을 전시하게 되었다. 그후 2007년 고성군이 인수, 이승만 초대대통령 전시관으로 확장하였으며, 유물과 역사적인 자료 외에 교육자료, 실물모형 등을 만들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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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의 아름다운 경치 ⓒ 이상기


그러나 우리는 그곳엘 가질 않고 잠시 화진포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자료를 통해 화진팔경에 대해 공부를 한다. 소위 팔경은 경치 좋은 곳에는 늘 있게 마련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시인묵객들의 힘을 빌려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팔경이라는 것이 현재와는 너무 동떨어지고 추상적이다. 또 그 표현이 완전 한자식이어서 요즘 사람들은 그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월안풍림(月安楓林), 차동취연(次洞炊煙), 평사해당(平沙海棠), 장평낙안(長坪落雁),  금구농파(金龜弄波), 구용치수(龜龍治水),  풍암귀범(楓岩歸帆), 모화정각(茅花亭閣). 그렇다면 이들 중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어떤 걸까? 한마디로 거의 없다.

단풍은 아직 들지 않았고, 밥짓는 연기는 볼 수가 없다. 해당화꽃은 진지 오래고, 기러기는 또 언제나 볼 수 있을런지. 금 거북이 파도를 희롱하는 모습 정도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용이니, 범선이니, 모화정 같은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화진팔경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냥 옛날 선조들의 이야기로 한 번 듣고 넘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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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건봉사 ⓒ 이상기


이제 차는 다음 행선지인 건봉사로 향한다. 건봉사는 거진읍 냉천리에 있다. 우리는 이제 민통선으로 좀 더 가까이 가게 된다. 건봉사에는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멸보궁 건봉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기대가 크다. 더욱이 그곳에는 사명대사 유정과 만해 한용운 선사의 흔적이 남아있어 보고 배울 것이 많다. 호탕한 스님 사명대사와 사색의 스님 만해선사를 만나러 간다.
#화진포 #금구도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 #화진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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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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