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5권으로 이루어진 루쉰 문학전집이 책은 루쉰이 쓴 수많은 책들 가운데 소설집 ‘납함’ ‘방황’을 빼고 묶은, 1권에 다섯 책을 담은 ‘1권 5책’이라 할 수 있다. ‘잡문’ ‘수필집’ ‘서한집’ ‘양지서’ ‘고사신편’이 그 5책.
고인돌
"'눈을 똑바로 뜨고 보는' 문제로 돌아와 보자. 처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못 보고, 나중에는 용기가 없어 못 보고, 더 나중에는 자연히 보이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길가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둘러싸고 멍청히 구경하는데 결국 얻은 것은 거무칙칙하고 번들번들한 물건을 보았을 따름이다." -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를 논함' 몇 토막1책(冊) '잡문-무덤' 편에는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를 논함',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을까' 등 7편이, '열풍' 편에는 '수감록 25' 등 8편이, '화개집' 편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 등 7편이, '화개집 속편'에는 '꽃 없는 장미' 등 7편이, '화개집 속편의 보충'에는 '<아큐정전>을 쓰게 된 원인' 1편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그밖에 '이이집' 7편, '삼한집' 5편, '이심집' 5편, '남강북조집' 9편, '위자유서' 2편, '준풍월담' 4편, '화변문학' 3편, '차개정 잡문' 8편, '차개정 잡문 2집' 4편, '차개정 잡문 말편' 3편이 마치 '영원불변하는 참 진리'처럼 빛을 반짝반짝 내고 있다.
1책(冊) '잡문' 편은 이 책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루쉰은 일생동안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수많은 책도 펴냈지만 잡문을 가장 많이 썼다. 루쉰은 잡문은 바로 단평이라 말한다. 단평은 짧으면서도 꼭 비평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일까. 루쉰 잡문은 '사회비평'과 '문화비평'이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
"사람의 살갗은 두께가 반 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새빨간 뜨거운 피가 담벼락을 타고 기어오르는 자벌레보다 더 빽빽하게 혈관을 따라 살갗 안으로 흐르면서 뜨거운 열을 분산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이 뜨거운 열로 서로 현혹하고 선동하고 당기면서, 기를 쓰고 서로 붙안고 키스하고 포옹하면서 생명의 통쾌한 기쁨을 맛본다." -'복수' 몇 토막2책(冊) 수필집 '들풀' 편에는 머리말을 뺀 22편이 복수와 희망 그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림자의 고백' '복수' '희망' '아름다운 이야기' '잃어버린 좋은 지옥' '묘비명' '퇴락한 줄의 떨림'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겨울 잎사귀' '희미해진 핏자국-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를 기념하여' 등이 그것.
2책(冊)에 실린 '들풀'은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쓴 산문 23편을 중심으로 1927년에 펴낸 책에서 가려 뽑은 글이다. 이 수필집 편 압권은 '개의 반박'이다. 짖는 개를 보고 "권세에 아부하는 개새끼"라고 꾸짖자 개가 사람에게 대든다. "아직 동과 은, 무명과 명주, 관리와 백성, 주인과 종을 구별할 줄 모르니 사람에 미치지 못 한다"고. 여기 나오는 "주인과 종의 구별"은 루쉰이 평생 싸운 화두였다.
평생 6천여 통에 이르는 편지 쓴 루쉰"지금의 비평가들은 '욕'이란 말을 아주 모호하게 쓰고 있습니다. 양가집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한다면 욕이겠지만 화냥질하는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하는 것은 욕이 아니지요. 내가 일부 사람들을 화냥년이나 발바리라고 진면모를 까밝혔지만 그들이 정말 화냥년이고 발바리이기에 절대 '욕'이 아닙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이 하나 같이 이것을 '욕'이라고 하니 어찌 슬프지 읺겠습니까." - '1935년 1월4일 소군, 소홍에게 보낸 편지' 몇 토막3책(冊) '서한집'에는 루쉰이 '1919년 1월 16일 허수상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해 '1936년 10월 15일 대정농에게 보낸 편지' 등 45편 편지가 실려 있다. 송숭의, 아오기, 이병중, 조기문, 위총무, 위소원, 이제야, 대정농, 조정화, 유화사, 야마코트 하쯔, 요극, 양제운, 합중서점, 소군, 소흥, 조가벽, 뇌소기, 조백, 왕야추, 안여민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그것.
루쉰은 평생 6000여 통에 이르는 편지를 썼다. 그 가운데 1400통 정도가 남아있으며 이 '서한집'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말로 옮겨졌다. 루쉰은 소설과 시보다 잡문과 편지글을 즐겨 썼다. 루쉰 문학이 탁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편지 쓰기는 대중들 글쓰기이자 생활문학이 아닌가. 루쉰이 편지글을 많이 썼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대중과 독자, 제자들과 함께 호흡하려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4책(冊) '양지서'는 모두 3집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집은 북경(1925년 3월부터 7월까지), 제2집은 하문, 광주(1926년9월부터 27년 1월까지), 제3집은 북평, 상해(1929년 5월부터 6월까지)가 그것. 이 '양지서'는 루쉰과 애인 쉬광핑이 주고받은 서간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말로 옮겨졌다.
5책(冊) '고사신편'에는 머리말, 하늘을 메우다, 달나라로 가다, 물을 다스리다, 벼린검, 비공을 포함 모두 6편이 들어 있다. 이 작품들은 루쉰이 1922년부터 1935년까지 썼다. 그 가운데 1927년에 쓴 '벼린 검'은 미간척(眉間尺)이라는 남자가 칼 만들기로 천하 제일 명인인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다. 루쉰은 이 이야기에서 복수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처참한 현실이라는 것을 곱씹는다.
루쉰(魯迅 노신)은 중국 저장성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나 1905~1907년 혁명당원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했다.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대표적인 필명이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루쉰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빠진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해 중국 현대문학 사상 첫 번째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했다. 1918년에서 1926년 사이에는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을,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을,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펴냈다.
그가 쓴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은 중국 근대문학을 다졌고,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 사상 불후의 대표작이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펴냈고, 그가 쓴 작품과 잡문 대부분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실렸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자 민중 만여 명이 스스로 공제(公祭)를 열어 훙자오 만국공묘에 묻었다. 루쉰 유해는 1956년 훙커우 공원으로 옮겨졌다. 1938년에는 '루쉰전집' 20권이 나왔으며, 그 뒤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나왔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나왔다. 1981년에는 '루쉰전집' 16권이 나왔으며, 베이징과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세워져 있다.
한 권으로 읽는 루쉰 문학 선집
루쉰 지음, 송춘남 옮김, 박홍규 해설,
고인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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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겐 뭐라 할 수 있지만 루쉰에겐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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