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방영된 KBS <신고합니다> 중 한 장면. 얼차려의 기본은 일명 원산폭격이다. 머리를 바닥에 박는 이 얼차려는 구타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이었다.
KBS
입대 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기합은 머리박기(일명 원산폭격)였는데, 역시 이것도 어느 정도 짬밥이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잠이 들 만큼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약 뚜껑을 알기 전까지였다.
내가 군대 생활 중 가장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던 게 치약뚜껑에 머리를 박는 일이었다. 볼펜, 반합뚜껑, 야삽자루, 구둣솔 등 여러 가지 소품(?)에 머리를 박아봤지만 치약뚜껑만 한 게 없었다. 두 손을 뒤로한 채 (두 다리는 관물대 상단에 올려 체중을 머리에 실어) 군용치약 뚜껑에 머리를 박는 건데, 잘못하여 뚜껑이 삐끗하면 이마에 살이 움푹 패는 불상사까지 감수해야 한다. 잘 버틴다 해도 보름 정도는 이마에 치약뚜껑 문신이 남는 아주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얼차려다.
아, 이걸 처음 생각해낸 인간은 과연 어떤 놈일까? 치약뚜껑의 고통, 아마도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고통이 아니었을까?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면 야삽자루로 온몸을 닥치는 대로 내리치는 무자비한 구타가 기다리고 있지만, 오죽하면 몇 대 터지는 것이 더 편했다. 잠깐 동안이라도 치약뚜껑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까….
1989년 2월, 노오란 새우깡(이등병) 때였다. 함께 새벽 초소근무를 나온 박 일병은 "야, 이 개XX야!"라는 입에 담지 못할 육두문자와 동시에 다짜고짜 머리박기를 시켰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바닥에 박혀 있는 내 얼굴을 전투화로 인정사정없이 걷어찼다.
이제 일병 2호봉 정도인 그는 사회에서 주산학원 강사 출신이었지만, 나에게 무자비하게 가했던 구타는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라고 하기에 딱 어울릴 만했다.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는 덩치답게 구타의 위력은 정말 무자비했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동들이었다. 폐쇄적 공간에서 내 인격은 이미 내팽개쳐졌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모욕은 정말 수치스러웠다.
결국 내 얼굴은 피가 낭자하고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피가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자 이젠 소총 개머리판으로 하체를 내리 찍었다. 꼼짝도 못하는 내게 무릎 위 허벅지 부위 한 곳만을 개머리판으로 집중적으로 때렸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르리라. 2시간 동안 한 곳만 맞는 그 고통을….
구타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네 동기들이 요즘 군기가 빠진 것 같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전부였다. 그가 전투화로 걷어 찬 내 얼굴은 온통 피멍이 선명했고, 음식조차 씹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개머리판으로 맞은 허벅지는 피가 배겨 전투복이 살점에 붙어 버리고 말았다. 거구의 몸으로 체중을 실은 두 발로 내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강타했던 그 인간 박 일병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감히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서 3년이란 청춘을 바친 군대는 이미 인생에서 지워진 시간이었다. 군대라는 이름 속에 감춰진 구타, 나는 군대생활을 떠올릴 때면 인격말살의 극치를 보여준 구타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 하나, 당신은 그저 병영구타의 선한 피해자에 불과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구타 피해자가 어느새 구타자로... '구타악습 대물림' 쓰나미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구타 피해자를 벗어나 누군가에게 가해자이지는 않았었나? 계급이 올라가고 후임병에 대한 장악권을 손에 쥐니 어느새 구타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재된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구타의 악습은 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대물림 쓰나미에 휩쓸려 머리와 손과 몸이 따로 움직여 버렸다. 결국 '구타유발자' 시기를 지나니 '구타자'가 되고 만 것이다
혹시 종교에 의지하고, 부대 내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구타근절을 향한 개인의 의지만 바로 서 있다고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착한 고참(?)은 '능력 없는 고참'이 되고 마는 구조에서, "나는 절대로 선임이 되면 구타 안 할 거다"라고 다짐했던 내무반원 가운데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당신의 아들, 남편이 구타행위의 가해자였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반성 없이 평범한 서민인양 선량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제대한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구타의 추억은 전설이 되지 못하고 아직도 현실로 남아있다. 해병대원 몇 명 영창 징계한다고 일단락되었다고 생각 말라. 선량한 척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역자들과 그들로부터 대물림 받은 구타의 악습은 무슨 수로 징계한단 말인가?
지휘관들이야말로 가장 큰 '구타유발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군대 구타의 근본적인 원인에 지휘관들의 묵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직안정과 군기 유지라는 미명하에 구타와 가혹행위를 외면하고 침묵하지는 않았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들이 해야 할 책임을 사병들에게 맡기고 떠넘기니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병사 신분인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더 이상 '군기유지'라는 핑계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젠 지휘관들이 직접 챙기라.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무생활과 인성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구시대적 연좌제인 연대책임만 축소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고 그 연결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지휘관의 결단력과 용기가 절실하다.
언제까지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만 급급할 것인가? 입대를 앞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눈물을 안기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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