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들고 하이에나에 맞서는 여인들

극심한 가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아프리카의 뿔' 사람들

등록 2011.07.15 16:32수정 2011.07.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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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브 난민 캠프에 있는 소말리아 출신 아이. ⓒ <알 자지라>


장마철을 맞은 한국에선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지만, 이와 반대로 애타는 마음으로 비를 바라는 곳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아프리카의 뿔'(아프리카 대륙 동쪽으로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등의 지역)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가뭄은 이 지역에서 지난 60년 동안 발생한 가뭄 중 최악으로 꼽힌다. 몇 년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곳도 있다. 그로 인해 땅은 갈라지고 가축도 죽어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농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가뭄으로 농업이 망가진 데다 식량 가격이 급등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은 이 지역의 가뭄 피해자가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 지역의 어린이 중 200만 명이 영양실조 상태며 이 가운데 50만 명은 당장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100만 명 넘게 사망한 1980년대 에티오피아 대기근의 참상이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물과 먹을거리 찾아 위험한 길 나서는 사람들

'아프리카의 뿔' 국가들 가운데 피해가 특히 심각한 곳은 소말리아다. 끔찍한 가뭄에 더해 1991년 내전이 시작된 이래 계속되고 있는 사회 불안으로 인해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앉아서 죽느니 위험을 감수하고 물과 먹을거리를 찾겠다고 길을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인접국 케냐에 있는 다다브 난민 캠프다. 이 캠프는 내전을 피해 떠난 소말리아 난민들을 위해 1991년에 만들어졌다. 그 후 내전이 길어지고 캠프로 몸을 피하는 소말리아 사람이 계속 늘어나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수용 인원 9만 명)가 됐다.

2009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다다브 캠프의 1년 예산이 소말리아 해적을 물리치기 위해 인도양을 순찰하는 군함 1척을 1년간 운영하는 데 드는 돈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말리아' 하면 해적만 떠올리지 말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제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었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캠프를 찾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 다다브 난민 캠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38만 명이 넘는다. 매주 수천 명씩 찾아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40만 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와 함께 살던 곳을 떠났지만 캠프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굶어 죽은 아이들의 시신이 곳곳에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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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 이 캠프는 세계의 난민 캠프 중 규모가 가장 크다. ⓒ <알 자지라>


<섹스 앤 더 시티> '샬롯' "다다브 캠프가 지워지지 않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4일(현지 시각) 여배우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다다브 난민 캠프 방문기('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를 실었다. 크리스틴 데이비스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섹스 앤 더 시티>의 네 여주인공 중 완벽한 결혼을 꿈꾸는 샬롯 요크 역을 한 배우다.

크리스틴 데이비스는 이 글을 통해 목숨 걸고 캠프를 찾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놀라운 용기와 인간애를 보여주는 여성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그들을 잊을 수 없다"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래는 크리스틴 데이비스가 쓴 글의 주요 내용이다. 중간 제목은 기자가 붙인 것이다.

난 케냐의 다다브 캠프에서 내가 본 것들에 대해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완전한 공포감에 대해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다다브 캠프에 새로 왔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이 난민 캠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캠프 바깥에 방치돼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음식, 물, 쉴 곳을 찾아 (이곳까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여행을 했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머물고 있었다.

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다브 캠프로 오는 동안 많은 이가 아이들을 잃었고, 상당수의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식과 물이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시점이 이미 지나버린 것이다. 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이에나들이 가장 쇠약한 아이들을 노리고 매일 밤 주변을 빙빙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 (다른 어른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었다. 이들은 가시 돋친 잔가지만 가지고 자기 힘으로 아기들과 몇몇 아이들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이 캠프로 오는 동안 "동반자(기자 :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들"을 모았다. 이 아이들은 자신을 살리려 애쓰는 이 여성들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이 아이들은 아마도 고아일 것이다.

그 사이에, (캠프까지 오는 동안)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강탈당한 여성들이 친절하게도 팔을 뻗어 또 다른 고아 7명을 따뜻하게 품에 안았다. 이 여성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 여성들의 힘과 결의가 날 고무시킨다. 난 이 여성들이 자신들의 그러한 힘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정말 놀랍다. 난 '당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 세계에 알릴 테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이 여성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 난 내가 그들을 위해 아무리 말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두렵다.

놀라운 용기와 인간애 보여준 여성들... "그들을 잊을 수 없다"

난 이런 일이 2011년에 일어나고 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폭풍처럼 몰아쳐 위기를 불러온 여러 문제들의 희생자다. 소말리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6년간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들의 주식인 수수 가격이 240%나 치솟았다. 옥수수 값은 40% 올랐다. 소말리아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분쟁은 이제 (이들에게는) 슬픈 삶의 방식이 된 것 같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간명한 해결책은 없다. 전 세계의 총명한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해왔다. 몇몇 사례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2010년에 난 (국제 구호 단체) 옥스팸과 함께 방문한 에티오피아 북부에서 식량 안전 보장을 목표로 삼은 고무적인 장기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의 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지 않다. 난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시대에 대중이 보여준 관대함에서 용기를 얻는다. 난 또한 영국 NGO들이 모여 있는 '긴급 재난 구호 위원회(DEC)'에 매우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도주의의 위기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과 집단들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을 허물고, 이들을 돕기 위해 모두 함께해야 한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를 장기간 지원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주변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식량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를 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원조에 의존하지 않게 할 것이다. 옥스팸과 함께한 수많은 여행에서 난 공짜 지원을 원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다다브 캠프에는 매주 9000명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 사람들이 이 황량한 캠프를 향해 위험한 여행을 해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끔찍한가. 이 여성들과 아이들이 삶의 기본인 물과 음식, 쉴 곳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전 세계가 그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해야 한다. 그들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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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사람들이 극심한 가뭄과 기아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나 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로 향하고 있다. <가디언>은 14일(현지 시각) 배우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다다브 난민 캠프 방문기를 실었다. ⓒ <가디언>


#가뭄 #기아 #소말리아 #아프리카의 뿔 #다다브 난민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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