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밭 60일, 그 사이에 무슨 변화 있었나?

[사진] 참깨 떡잎이 숲을 이루고 꽃을 피우기까지

등록 2011.07.18 10:47수정 2011.07.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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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웃마을 하씨 아주머니가 참깨를 파종하고 있습니다.(5월14일)

이웃마을 하씨 아주머니가 참깨를 파종하고 있습니다.(5월14일) ⓒ 조종안


두 달 남짓 되었는데요. 정확히 5월 14일이었습니다. 시내에 다녀오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이웃마을 하씨 아주머니가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뭐하시느냐고 물으니까 참깨를 심는다고 하더군요. 


밭을 덮고 있는 검정 비닐에는 지름 5cm 정도 크기의 구멍이 20~25cm 간격으로 앞으로 나란히 하듯 뚫려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박카스 병'에 든 씨앗(참깨)을 4~5개씩 넣어주고 상토를 뿌려주었는데요. 손놀림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참깨는 농사짓기 까다로운 작물이라고 합니다. 크기가 매우 작아서 발아(떡잎)와 성장에 필요한 토양 환경을 맞추기가 어려워서라고 하는데요. 땅이 너무 건조하면 떡잎이 나오다 말라 죽고, 너무 습하거나 날씨가 서늘하면 '입고병'으로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참깨가 재료인 깨소금과 참기름은 양념 중에 으뜸으로 치는데요.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참깨를 심는 아주머니 모습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습니다. 참깨 파종을 갓난아이 돌보듯 하는 아주머니 손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고요.   

모종판에 심은 메주콩 떡잎이 나올 때부터 밭으로 옮겨심기 전까지 사진을 모아 기사로 작성했던 1년 전 일들이 떠오르더군요. 해서 올해는 참깨 떡잎이 성장해서 꽃을 피우고 벌·나비가 찾아들기까지의 깨밭을 사진으로 기록해보았습니다.

a  떡잎이 나오기 시작한 이틀 후 모습 (5월19일)

떡잎이 나오기 시작한 이틀 후 모습 (5월19일) ⓒ 조종안


참깨, 자연의 무한한 힘과 오묘함을 일깨우다


파종하고 닷새가 지난 5월 19일 깨밭에 갔더니 아직 싹이 나오지 않은 구멍도 있고, 떡잎이 한두 개 나온 구멍도 있고, 솜털이 보이는 떡잎 4~5개가 오순도순 모여 있는 구멍도 있었는데요. 살짝 건드려도 자빠질 것처럼 가녀린 떡잎이 위대해 보였습니다.

참깨는 낮 온도가 20~25일 때는 파종한 지 3-4일 지나면 발아한다고 합니다. 떡잎이 뿌리를 내리면 웬만큼 가물어도 거의 말라 죽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물었을 때 파종하면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1mm 남짓 크기의 참깨가 땅의 기운을 받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우리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는 양념이 된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무한한 힘과 오묘함에 한동안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a  한 구멍에서 여러 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순을 잘라주고 있습니다. (6월1일)

한 구멍에서 여러 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순을 잘라주고 있습니다. (6월1일) ⓒ 조종안


파종 보름쯤 지난 6월 1일에 찾았더니 비닐에 뚫린 구멍이 좁게 보일 정도로 싹이 촘촘했는데요. 하씨 아주머니는 참깨에게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는 연락이라도 받았는지 비가 내리는데도 밭에 나와 순 자르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참깨 수확을 "깨를 털어 낸다!"는 말로 표현했는데요. 수확은 언제쯤 하느냐고 물었더니 양력으로 8월 중순쯤 될 거라고 하더군요. 되도록 모기 잎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 전에 해야 한다며 참깨를 수확한 밭에는 김장용 배추를 심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고향(군산시 나포면)을 한 번도 뜬 적이 없고, 스물에 결혼해서 예순이 되도록 어렸을 때 어른들 뒤치다꺼리하면서 배운 농사만 지으며 살았다는 하씨 아주머니. 그의 환한 표정은 올해도 참깨 농사 풍년을 기약하는 것 같았습니다.

a  물방울이 굴러다닐 정도로 이파리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월7일)

물방울이 굴러다닐 정도로 이파리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월7일) ⓒ 조종안


파종을 하고 20일 남짓 지난 6월 7일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는데요. 힘겹게 땅을 뚫고 나온 떡잎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고 물방울이 굴러다닐 정도의 넓은 이파리들이 사방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사춘기에 해당된다고 할까요. 제법 어른스럽게 보였습니다.

a  한 달쯤 지나니까 태풍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있었습니다. (6월15일)

한 달쯤 지나니까 태풍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있었습니다. (6월15일) ⓒ 조종안


한 달쯤 지나니까 태풍이나 가뭄 등 어떤 악조건 기후에도 견딜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믿음직스러웠는데요. 한참 가물 때여서 밭고랑도 바싹 말랐는데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버티는 나무들이 대견하게 보였습니다.

a   파종하고 40일이 지나니까 무릎 높이까지 자랐더군요. 당연한 결과임에도 신기했습니다. (6월26일)

파종하고 40일이 지나니까 무릎 높이까지 자랐더군요. 당연한 결과임에도 신기했습니다. (6월26일) ⓒ 조종안


파종하고 40일이 지나니까 무릎 높이로 자랐더군요. 이웃의 고추밭보다 풍성하게 느껴지면서 울창한 숲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지렁이와 달팽이 등 땅속에서 살거나 음지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시원한 그늘이 생겼다며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a   7월이 되니까 참깨 특유의 싱그러운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는데요. 완전히 성숙했음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7월1일)

7월이 되니까 참깨 특유의 싱그러운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는데요. 완전히 성숙했음을 알리는 것 같았습니다. (7월1일) ⓒ 조종안


7월 1일에 밭을 찾았더니 참깨 특유의 고소한 냄새와 싱그러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더군요. 빠른 세월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벌써 다 자랐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굵어진 줄기를 따라 계속 나오는 깻잎들이 글자 그대로 깨밭을 이루고 있었으니까요.

a   파종하고 45일이 지나면서 꽃이 보이기 시작했고, 50일 후에는 꽃밭을 보는 것처럼 만개해 있었습니다. (7월15일)

파종하고 45일이 지나면서 꽃이 보이기 시작했고, 50일 후에는 꽃밭을 보는 것처럼 만개해 있었습니다. (7월15일) ⓒ 조종안


a  참깨꽃 주위를 맴도는 꿀벌. 만물이 상생하고 상극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7월15일)

참깨꽃 주위를 맴도는 꿀벌. 만물이 상생하고 상극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7월15일) ⓒ 조종안


자연의 이치는 거스를 수 없는 법, 파종하고 달포가 지나니까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색 꽃송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두 달쯤 되니까 깨밭인지 꽃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주위를 맴도는 꿀벌들을 보며 '이제 열매를 맺는 일만 남았구나!'하고 생각했는데요. 당연한 일이지만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농작물은 논밭에 씨를 뿌려 거름을 주고 열매를 맺으면 수확해서 먹는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인데요. 자라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관찰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참깨에 얽힌 이런저런 추억들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참깨는 우리와 친근한 농작물이고, 밥상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양념인데요. 참깨에 얽힌 추억 몇 개를 더듬어봅니다.

우리의 전통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 깨소금. 늦가을에 수확해서 대청에 놓아두었다가 겨울에 끓여 먹는 늙은 호박국에도 꼭 들어갔습니다. 깨소금이 빠지면 시원하고 담백하면서 달착지근한 국물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생선탕. 특히 '복어탕', '아귀탕', '생조기탕' 등에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비린내가 가시면서 더욱 구수하고 개운한 국물 맛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그 깊은 맛을 잊을 수 없다는 게 불행이라면 불행이겠습니다.

a  흰색에 가까운 엷은 연분홍 참깨꽃. 꽃이 여리게 보이는데요. 참깨꽃은 아래에서 피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7월10일)

흰색에 가까운 엷은 연분홍 참깨꽃. 꽃이 여리게 보이는데요. 참깨꽃은 아래에서 피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간다고 합니다.(7월10일) ⓒ 조종안


참깨는 꽃만 봐도 고소한 맛이 떠올라 군침이 도는데요. 반찬이 귀하던 시절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놓았던 보리밥에 찹쌀고추장 넣고,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팍팍 비벼 먹는 맛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거기에 계란 하나 깨뜨려 넣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지요.

양은 냄비에 볶아서 통깨로 먹기도 하고, 쇠 절구에 빻아 예쁜 깨소금 단지에 넣어 찬장 깊숙이 보관해놓고 양념으로 먹었는데요. 빻을 때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반해서 도둑고양이처럼 부엌에 드나들면서 퍼먹던 추억도 새롭습니다.

수입품이 없던 옛날에는 참깨가 참 비쌌습니다. 그래서 깨소금이나 참기름을 양념으로 먹는 집이 드물었지요. 참기름도 들기름처럼 고소한 줄 알고 한 수저 훔쳐 먹었다가 비위가 상해서 말도 못하고 고생했던 일도 있는데요. 모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깨밭 #참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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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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