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유령>은 현실과 가상, 남과 북, 그 경계에 불안하게 서있는 탈북자 청년 '나'가 주인공이다.
은행나무
"바츠 해방전쟁에 참여한 피멍은 적을 죽이면 꼭 눈알을 뽑아 전리품으로 줄에 매달고 다녔다. 그뿐 아니라 그는 혁명에 가담하면서 맹세의 의미로 새끼손가락과 무명지를 잘라내 하나는 자신의 제단에, 다른 하나는 바츠 공화국의 독재자 시저의 재단에 바치는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백석 공원의 사건이 발생하자 나는 이 사건의 범인은 피멍이라고 확신한다." - 책 속에서 이 소설은 서울 강북에 있는 백석공원 '모닥불' 시비 앞에 놓여 있는 사람 눈알 하나, 조촐한 제사상과 함께 누군가에게 바치는 것인 양 놓여 있는 눈알로 문을 연다. 경찰은 그 눈알이 '나'와 같은 집에 사는 회령 아저씨 것이라 믿고 '나'를 경찰서로 잡아들인다. '나'는 한 달 넘게 피시방에 처박혀 게임에 빠진 탓에 정신병원에서 치료까지 받고 몽롱한 상태에 있다.
'나'는 경찰서에서 회령 아저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답장을 받아 경찰이 잘못 짚었다는 것을 밝히고 풀려난다. 이틀 뒤, 백석공원에서 같은 사람 두 손목이 발견되고, 사체 가운데 또 다른 신체 일부가 강남에 있는 한 공원에서 발견된다. 이 사건이 생기기 몇 달 전, 한 남자가 백석공원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남자는 탈북과정에서 딸과 아내를 잃고 남한으로 흘러 들어온 탈북자다. 그 남자 손에는 새끼손가락과 무명지가 잘려나가고 없다. 죽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탈북자가 백석공원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백석공원에 유령이 나타난다고 수군거린다. 이 모든 죽음을 지켜보던 '나'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리니지 폐인인 '나'는 탈북자로 구성된 '뫼비우스의 띠'라는 혈맹을 이끄는 군주다. 리니지에서 독재자에 저항하는 바츠 해방전쟁이 벌어질 때 혈맹 주변을 외톨이로 맴돌던 '피멍'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전사. 그는 적을 죽이면 반드시 눈알을 뽑고, 새끼손가락과 무명지를 잘라 제단에 바쳤다. '나'는 이 사건 범인은 바로 그 피멍이라고 믿지만 찾을 수 없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누가 피멍인가? '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은 '대딸방 딸녀'와 삐끼, 불법 포르노 제작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남한으로 내려와 뿌리내리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아가는 탈북자들이다. 그 틈에서 나는 대학 시절 사랑했던 마리를 찾아 유령처럼 헤매고 다니지만 배우가 된 마리는 광고 속의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
탈북자가 지닌 상처와 아픔은 곧 남북이 지닌 피멍"저희들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05년 10월 마지막 주, 찬바람에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내리는 어느 깊은 가을날. 독립군들이 얼어 죽고, 맞아 죽고, 굶어 죽었다는 만주 벌판을 떠돌다가 살아서 한국으로 들어온 꽃제비 출신의 내복단 셋이 디케이 동맹의 장군 둘과 한판 승부를 벌인 그 일을 말입니다……."- 책 속에서 제7회 세계문학상 심사를 맡았던 김화영, 김미현, 김형경, 박범신, 우찬제, 은희경, 이창동, 임철우, 하응백은 '심사평'에서 "젊은 탈북자 세대의 고민을 리얼하게 드러낸 '진화'된 분단 문학"이라며 "<유령>은 탈북자들의 소외를 리니지 게임과 연결시켜 서술한 점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기존 탈북자 소설들처럼 남/북, 탈북자/비탈북자를 대립시키지 않고, 현실과 가상현실, 자살과 타살, 탈북자와 다른 탈북자들 사이의 모호함과 구분 불가능성을 오히려 리얼하게 문제 삼은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신예작가 강희진이 창안한 하림은 그 누구인가. 탈북자인 그는 남한과 북한 사이, 남한 내에서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 사이, 그리고 현실과 사이버 공간 사이의 경계에서 존재론적 위기를 극적으로 경험하는 인물"이라며 "경계선의 생태 위기를 그만큼 웅숭깊게 환기하는 인물을 한국문학은 아직까지 배태한 적이 없었다"고 되뇌었다.
강희진 장편소설 <유령>은 지구촌에서 꼭 하나 남은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이 지닌 날선 모서리를 파헤친다. 이 소설은 '젊은' 탈북자 세대들이 지닌 고민과 탈북을 한 뒤 남한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보다 진화된 분단문학'으로 이끈다. 이들 탈북자들이 지닌 상처와 아픔은 곧 남북이 지닌 속앓이이자 천민자본주의가 지닌 피멍이다.
작가 강희진은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몹시 좋아해 대학 때까지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문학보다 영상에 끌려 영화판을 기웃거리다 영화 시나리오로 썼던 작품이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돼 몇 년 동안 다큐드라마를 썼다.
그는 "그때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났던 여러 사건 주인공들인 연쇄살인범, 사형수, 사기꾼, 성전환자들로부터 충격과 영감을 받았고, 그 경험은 소설 창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한민국 최다 본선 진출 작가로 끝날 줄 알았다"라며 "마지막 응모라고 생각하고 탈고한 <유령>이 <세계일보>에서 주최하는 제7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은행나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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