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따는 콩밭'은 어디쯤일까

시화전도 볼 겸 경춘선 타고 김유정역까지

등록 2011.07.23 15:59수정 2011.07.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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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유정 가는 길    상천역 내 시화전 전경. 역전구내라기보다 미술 전시장에 
온 듯하다.

김유정 가는 길 상천역 내 시화전 전경. 역전구내라기보다 미술 전시장에 온 듯하다. ⓒ 김학섭


9개 역사에 시화전 배치가 모두 끝나고 시낭송회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22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장마가 끝나더니 오늘 아침에는 잠시 개였던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슬비어서 우산도 없이 집을 나섰다.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다.

칠월 중순을 넘은 대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짙푸른 녹음 속을 경인선 전철은 힘차게 달리고 있다. 옆에 칠십 노인이 경춘선 전철은 언제나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다른 역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서울시특별사법경찰관까지 배치되어 있다. 


시화전이 열린다는 상천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이 아니라 화실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이수화 시인 등 낯익은 시인들의 얼굴이 보인다. 낯모르는 시인들도 많다. 낭송가 오문옥 시인도 바쁘게 움직인다. 박옥태래진 시인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경춘선을 아름다운 역전으로 만드는 일에 일등공신이다. 

a 김유정 가는 길    김진의 상천역장이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김유정 가는 길 김진의 상천역장이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 김학섭


a 김유정 가는 길    박옥태래진 시인이 9개 역사에 시화전을 하게 되어 반갑다며 
인사하고 있다.

김유정 가는 길 박옥태래진 시인이 9개 역사에 시화전을 하게 되어 반갑다며 인사하고 있다. ⓒ 김학섭


찌푸렸던 날씨가 조금씩 개였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김진의 상천역장이 아름다운 역을 만들어준 박옥태래진 시인을 비롯해 여러 시인 분들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동계올림을 대비하여 더 빠른 호송 열차가 다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명사들의 인사말에 이어 박옥태래진 시인이 국제문화상을 수상 한다.   

시 낭송회가 열린다. 짙푸른 녹음 속으로 낭랑한 시인들의 시 낭송소리가 칠월의 하늘에 울려 퍼진다. 여행을 자주 못하는 나에게는 우리의 강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을 처음으로 깨달은 듯하다. 가끔 힘차게 달리는 전동차의 기적 소리가 시의 배경 음악소리처럼 들려 운치를 더해 준다. 

행사가 끝나자 나는 점심을 거른 채 다시 열차에 오른다. 내친김에 마음속으로만 그리던 김유정 문학촌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배가 조금 출출하다. 김유정 문학촌에 가면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늘 그립고 가보고 싶었던 고향 같은 곳이다.

a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아름다운 역사 모습, 동계올림픽과 함께 한옥의 
멋을 한껏 자랑하게 될것이다.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아름다운 역사 모습, 동계올림픽과 함께 한옥의 멋을 한껏 자랑하게 될것이다. ⓒ 김학섭


부푼 마음으로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렌다. 역전에 이르니 김유정 표지판이 없다. 옥에 티다, 작품 이름을 딴 식당만이 김유정 마을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십분 거리란다. 저만치 관광버스가 몇 대 보인다. 아무리 가까워도 정식으로 된 표지판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름이 없는 하늘에서는 따가운 태양빛이 내리 쬔다. 김유정이 태어난 곳은 전형적인 시골 동네다. 양지쪽에 김유정 생가가 있고 앞에는 높은 산. 그 아래는 작은 마을이 몇 집 보인다. 고압선 철탑이 눈에 거슬린다. 마을 앞 넓은 밭에는 잘 자란 옥수수며 고추가 더위에 잎을 늘어트리고 있다. 선생의 유품이 없는 것이 아쉽다.


a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생가의 모습, 앞에는 작품의 산실인 금병산이 
있다.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생가의 모습, 앞에는 작품의 산실인 금병산이 있다. ⓒ 김학섭


실레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앞 높은 산은 금병산이란다. 김유정의 작품이 대부분 이 산과 마을을 중심으로 탄생되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산이며, 들이며, 옹기종기 집들이 있는 마을이 너무 문학적으로 생겼다고나 할까. 어쩐지 작품이 저절로 나올 것만 같은 마을이다.  

강원도가 낳은 천재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생존 문인 말고 돌아가신 문인들 중에 강원도가 낳은 천제 문인들이 많다. 이효석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나는 김유정을 제일 좋아한다. 그중에서 해학이 넘치는 '금따는 콩밭'을 특히 좋아한다. 그 콩밭이 어디쯤일가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a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작품 산실인 금병산의 모습, 고압선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김유정 가는 길 김유정의 작품 산실인 금병산의 모습, 고압선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 김학섭


생가 앞에는 넓은 밭들이 있다. 지금은 옥수수며, 고추며, 온갖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여기쯤이 아닐까. 애무한 남의 집 콩밭을 바라보며 비죽 웃고 만다. 금을 캐기 위해 콩밭에 구덩이를 파는 것을 보고 동리 노인이 땅이나 파먹지 이게 무슨 지랄이야. 하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지금도 일을 하지 않고 금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남의 집 콩밭이나 파헤치는 그런 사람들이 없을까. 가난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일념으로 잘 자란 콩밭을 무작정 파헤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영식, 결국 콩밭을 버리고 야밤에 도주할 생각만 하는 역식이 같은 인간들이 지금에도 있다. 

금병산을 산행할까 하다 너무 늦은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룬다. 봄에 꽃이 피면 금병산을 산행하며 '봄 봄'이란 작품을 느껴볼 생각이다. 기적 소리가 들린다. 이왕 왔으니 춘천에 가서 유명하다는 막국수나 먹고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서둘러 역전을 향해 걷는다. 어쩌다 점심을 놓쳐 배는 고프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김유정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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