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이유 마저 잊게 한 전쟁

[리뷰] 영화 <고지전>을 보고

등록 2011.07.27 15:50수정 2011.07.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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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전은 단 한 명의 영웅만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고지전은 단 한 명의 영웅만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티피에스컴퍼니
고지전은 단 한 명의 영웅만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 티피에스컴퍼니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반공'을 주제로 하거나, 적어도 남북간의 심각한 대립구도를 큰 틀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고지전' 역시 한국전쟁 당시의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휴전 협상이 탁상 위에서 별 다른 소득없이 지지부진 하게 이어지는 동안 숱하게 희생되어 간 고지 점령전을 무대로 하고 있다.

 

휴전선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거점이 될 만한 고지라면 당시 남북이 모두 탐내는 것이었고 남북 지휘부들은 모두 한 뼘의 땅이라고 더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심지어 휴전협상을 체결하면서 까지도 마지막 총력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일선에서 죽어나가던 병사들의 현실은 얼마나 참혹했을까.

 

'고지전'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과 다른 이유는 바로 저 작은 탄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쟁영웅에 의한 기적적인 승리를 묘사하지도 않고, 관중들로 하여금 적개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고지전'은 그들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꺼운 뿔테 안경에 적에게 총을 겨눌 틈도 없이 벌벌 떨고만 있던 이등병이 3년 간의 전쟁끝에 중위로 진급, '악어 중대'의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적 앞에서 적의 군복을 입고 천역덕스럽게 연기를 하며, 어느새 적의 총을 빼앗고 불필요한 포로도 남기지 않는 군인이 되어 있다. 명령이라는 이유로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중대장의 머리에 가차없이 총알을 날리는 그의 모습에서 겁 많던 이등병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앳된 얼굴에 본인 보다 나이 많은 병사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임시 중대장은 다친 어깨에 대한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을 맞는다. 그는 자기 손으로 이미 만선인 배에 오르는 동료들을 죽이고만 기억에 몸서리친다. 어떻게 산 목숨인데 죽으려 하냐며 그를 지켜주던 중위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에 모르핀을 찌르려 하지만, 결국 그는 눈물을 보이고 만다. 

 

방첩대 중위로 동부전선에서 북한군과 내통한다는 첩보를 수사하기 위해 전선에 합류한 중위는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를 다시 만나지만, 이미 많이 변한 친구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한다.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방첩대 장교로서 최소한의 냉정을 유지하려 하지만 점점 지쳐가던 중 전투끝에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이라던  친구를 잃게 된다.

 

전쟁초기 자신만만 했던 북한군 중대장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던 전쟁을 하는 이유도 잊은 지 오래다.

 

독립군 때부터 전쟁에 참여한 병사, 가족사진을 꼭 품고 다니면서 추위에 북한 군복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는 병사,17살 나이에 참전해 곧장 동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노래 잘 하는 병사, 소대원들의 참혹한 죽음에 정신을 놓은 병사, 전쟁중에 고아가 된 아이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병사들까지, 살기 위해 죽이고 또 죽이고 동료들까지 죽이고,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또 죽여야 할 적을 찾아야만 했던 그들.

 

그들이 참혹하게, 또 냉혹할 정도로 잔인해지는 게 전쟁이란다. 수십번 전투를 겪었어도 매번 전투에 앞서 울먹거리게 되는 게 전쟁이란다. 어른 아이, 군인과 민간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죽고 다치는 게 전쟁이란다. 살아서 만나자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두 죽어간 중대원들을 보면서 기나긴 전쟁의 끝은 정전이라고 쓰인 것과는 달리 결국 자멸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2011.07.27 15:50ⓒ 2011 OhmyNews
#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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