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혹은 일출저편으로 떠오르기 위해 이편에서 저물어 피 흘리는 하늘, 남도에서.
이상경
밤에는……
밤에는 끓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용광로를 보았다면
밤에는 야근 하는 노동자 하나도 없어 곤히 잠든 공장을 보았다면
밤에는 차가운 바다에 뜨거운 쇳물에 빠져죽는 이가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격실 가스에 질식해 죽거나 폭사당하는 노동형제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굴뚝에 올라 목숨 걸고 대화를 청하는 해고노동자가 하나도 없다면
밤에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크레인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구호하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일하지 않아도 높아가는 전세 융자금 이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잔업 특근 없이도 아들딸 대학 등록금에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면
밤에는 자본의 억압과 수탈이 멈추고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다면
밤에는 어여쁜 가족들 곁에서 근심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시위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집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죄 짓지 않을 것이다.
야밤에 희망을 기획하는
어리석고 슬픈 죄를
더럽게 아름다운 죄를
아무도 짓지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신설 법령에
새로운 법이 추가될 것 같다.
이름하야 '희망기획죄'
희망을 기획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 없으니
죄를 짓지 않으려면 절망하는 것뿐이다.
김진숙은 높고 높은 크레인에서 희망을 기획하고
전태일은 넓고 넓은 하늘나라에서 희망을 기획하고
이소선 어머니는 깊고 깊은 혼수상태에서도 희망을 기획하는데
송경동이 감옥에서 희망을 기획하는 일쯤이야…….
원고지 창살에 갇힌 부끄러운 낭만보다
감옥 창살에 갇혀 자유를 노래하려니
온몸으로 시를 쓴 죄
희망을 기획한 죄
시인 송경동!
감옥에서 백년쯤 …
아니, 천 년 쯤 살다 오라!
희망을 기획한 사람을 구속할지언정
희망마저 구속할 수는 없지 않느냐!
사랑마저 가둘 수는 없지 않느냐!
- 노동 정의와 희망을 믿는 청년
덧붙이는 글 | 이 연대시는 송경동 시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의 부당함을 알리고, 3차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전면 철회를 이끌고, 혼수상태 속에서 희망을 기획하는 이소선 어머니가 깨어나셔서 승리한 김진숙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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