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갈 땐 젖꼭지부터 만져야...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⑤]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과 소수민족 박물관

등록 2011.07.30 19:20수정 2011.08.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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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 기획 기사를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소규모 사업자들과 현지인들의 경제사정을 헤아리는 작은 규모의 호텔이나 민박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바람직한 자본 분배를 돕자는 것도 공정여행의 취지 중 하나다. 그에 맞게 우리의 첫 숙소는 중국 쿤밍(곤명)의 한 작은 호텔.

그런데 8박 9일간의 이번 여행을 통틀어 '최악의 잠자리'라고 손꼽을 정도로 첫날밤 일행 대부분은 잠을 설쳤다. 호텔의 여건 때문이 아니라 호텔 바로 옆에서 주변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밤새 설쳐대고 으르렁대던 공사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고 공사현장을 내려다 보니 저 멀리에 있는 굴착기가 겨우 분별될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다.

"밤새 왕왕 대는 통에 도무지 잘 수가 있어야지. 잠들만 하면 깨우고, 잠들만 하면 깨우고. 공사도 참 무식하게 한다니깐!"

나라가 하는 일에 감히 한마디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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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바로 옆에서 밤새 으르렁댔던 공사현장 일부를 내려다보며 찍었다.공사현장은 대단히 넓었다. 아침에는 감쪽같이 조~~~용해졌다. ⓒ 김현자


사람들마다 부스스한 얼굴로 이와 비슷한 인사들을 주고받았다. 잠자리 바뀌어도 잘 자는 편인 나도 거의 자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라면 항의를 해 공사를 중단시키거나 주민 대표를 뽑아 손해배상 집단 소송이라도 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몰상식한 수준의 공사가. 그런데 누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공산국가잖아. 겉으론 평화롭게 보이지만 국가가 하는 일에 아무 말도 못하는!"

그래. 맞아. 이 나라가 공산 국가지. 나라가 하는 일에 감히 한마디 못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도 진실이라고, 정의라고, 최선이라고 우겨 강행할 수 있는 독재. '독재'라는 말을 갖다 붙이자 좀처럼 이해되지 않던 밤의 공사판, 밤새 왕왕대다 아침에 감쪽같이 조용해진 공사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우리의 4대강 건설처럼.


중국인들의 아침 식사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다. 국수와 콩물, 짠지 등을 싸서 먹는 흰 빵과 우리 자장면 집에서 볼 수 있는 꽃빵, 흑미로 만든 죽과 우리들이 미음이라고 하는 하얀 쌀죽 등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 후 '봄의 도시'로 불리는 쿤밍 거리를 달려 '윈난성 소수민족 민속촌'과 '소수민족 박물관'으로 향했다.

"젖꼭지 어루만지며 들어가야 집안이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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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족 가옥 입구에 걸려있던 젖무덤. 젖꼭지를 어루만지며 들어가야 자신과 집안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에 우리 모두는 젖꼭지를 어루만지며 들어갔다.2011.7.17일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그냥 들어가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젖꼭지 꼭 어루만지며 들어가세요. 그걸 만지며 들어가야 집안이 평온하고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하네요. 진포족의 풍습 중 하나랍니다."

처음 만난 것은 진포족(景颇族,징포족으로도 발음) 의 가옥. 가이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폭소가 쏟아졌다. 가옥 입구에 장식된 젖무덤의 젖꼭지를 저마다 어루만지며 엉거주춤 들어갔다. 집안에는 우리처럼 선반을 매어 곡식을 저장하는 모습, 부부와 자녀들의 방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남성을 상징하는 해와 여성을 상징하는 달 장식이 걸려있는 것도 진포족 가옥의 특징.

다음으로 만난 것은 하니족의 전통가옥. 부모가 거주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을 중심으로 자녀들이 거주하는 가옥을 몇 개든 따로 짓는데(자녀의 가옥 앞에서 찍어 부모의 가옥이 상대적으로 작게 찍혔지만) 자녀는 16세까지만 부모의 가옥에서 지내고 이후 따로 지은 자녀의 가옥에서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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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족 가옥.16세가 되면 하니족 자녀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지내며 부모의 간섭없이 이성교제를 할 수 있다.-2011.7.17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자녀의 가옥은 바닥에 고정해 지은 부모 가옥과 달리 우리의 원두막처럼 기둥을 세워 높이 지어 습기를 차단했다. 한 채에 여러 명의 자녀들이 모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한 채에 한명씩 거주하며 마음에 드는 이성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자녀의 이와 같은 이성교제에 하니족 부모들은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일까? 하니족은 현재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 비교적 많은 132만 명 정도라 한다. 1만 7000명으로 숫자가 가장 적은 덕양족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소수민족들의 가옥이 저마다 독특하고 흥미로워 모두 알고 싶었지만, 일정 때문에 어떤 곳에는 들르고 어떤 곳은 그냥 스쳐야만 했다. 어떤 소수민족의 민속춤 공연을 본다고 옆만 보고 가다가 앞에 가던 중국인과 한 차례 부딪히며 일행을 따라 멈춰 선 곳은 여자의 얼굴 전체에 문신을 한다는 독용족의 가옥.

여자의 얼굴 전체에 문신을... 왜?

"얼굴에 문신을 한 여자가 그 집안에 없으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즉 얼굴에 문신을 한 여자가 집안에 있어야만 그 집안이 평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웃 혹은 다른 민족의 남자들이 여자를 납치해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독용족의 여인들은 얼굴에 문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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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용족 가옥 앞에 서있는 설명. 이 할머니가 집안에 있었다.-2011.7.17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독용족의 가옥은 여타의 소수민족 가옥보다 규모도 작고 소박했다. 이들 역시 어엿한 규모로 살았는데 원래의 가옥보다 작은 규모로 재현해 놓은 걸까? 원래 이들이 이처럼 작은 규모로 열악하고 부족한 환경에 살다보니 이웃 민족들에게 자주 밟히고 여자까지 빼앗기는 일이 벌어져 그걸 막고자 얼굴 가득 문신을 하기 시작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집안을 들여다보니 얼굴 가득 문신을 한 할머니가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입술에 문신이 새겨지는 동안 고통을 참느라 일그러지던, <아프리카의 눈물>이란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본 그 고통스런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몸의 다른 곳도 아닌 여자의 얼굴 가득 문신을 새겼다는 것, 그 얼굴을 눈앞에서 직접 맞닥뜨렸다는 것.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못 볼 것을 봤을 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몇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나가 버렸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하지만 그 누구도 사진을 찍으려고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처럼 사진 한 장으로라도 기념하고 싶지 않은 그런 께름칙한 생각 때문에 사진 찍기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석 잔의 술을 받아먹어야만 마을 출입을 허용한다는 묘족 가옥 앞에 이를 때까지 개운치 못한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자꾸 독용족 가옥에 눈이 갔다.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쫒는 할머니의 처연한 모습을 안 보았다면 얼굴 가득 문신을 새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할머니나 독용족 여인들을 쉬이 잊었을까. 쿤밍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대리, 백족이 운영하는 객잔에 몸을 누이자 잠깐 보았을 뿐인 할머니의 문신들이 달려들어 덮치는 통에 깜짝 놀라 깨어 이국에서의 두 번째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묘족이 외부인에게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시험처럼 베푸는(?) 석 잔의 술도 흥미롭다. 이들은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석 잔의 술만 베풀지 않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잔에는 좋은 술, 세 번째 잔에는 독이 든 술이 들어 있는데, 이때 나쁜 사람은 독이 든 세 번째 잔까지만 받을 뿐 해독제가 든 네 번째 잔은 받지 못한다고 한다.

참고로, 묘족은 중국 여러 소수민족 중 독을 가장 많이 쓰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 인구는 106만 정도. 묘족의 묘는 고양이 묘(猫)자인데 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썼던 것은 아니란다. 현재 중국의 주권을 쥐고 있는 한족이 자신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으로, 혹은 소수민족을 격하하고자 소수민족 관련 정리를 할 때 비교적 작은 동물인 고양이를 뜻하는 '묘'자를 끌어다 썼다고 한다.

중국 오지에서 듣는 "막걸리, 막걸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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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의 가옥. 석잔의 술을 마셔야 마을 출입을 허용하는 민족이다. 세번째 잔에는 독이 들어있다.-2011.7.17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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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족 가옥에서 팔던 막걸리-2011.7.17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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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어서자 막걸리 막걸리 외치며 막걸리를 팔던 와족의 가옥과 민속춤 공연장-2011.7.17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 김현자


"막걸리, 막걸리 있어요! 한잔에 시 번(10위엔) 시 번! 막걸리, 막걸리 마셔 봐요!"

막걸리? 낯익은 막걸리 타령에 우르르 몰려가 보니 와족의 처녀 총각들이 우리의 막걸리를 10위안씩(출국 당시 환전 금액 1800원)에 팔고 있어서 맛이나 보자 싶어 5명꼴에 석 잔 꼴로 시켜 마셨다.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머리가 노란 외국인들도 막걸리를 시켜 먹느라 막걸리 집은 한동안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막걸리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전혀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순하고 달달했다. 막걸리 고유의 맛을 이들이 망쳐 놓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국에서 막걸리를 팔고 있다는 감동과 돈벌이에 약삭빠른 중국인들, 제 맛을 잃은 막걸리 맛, 정말 막걸리가 맞나? 막걸리와 비슷한 자신들의 술을 약삭빠르게 막걸리로 둔갑시켜 돈벌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뒷맛이 허전하고 좀 씁쓸했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티베트로 많이 알려져 있는 태족, 피부가 검을수록 미남 미녀인 이족, 숫자가 적어 '~족'을 붙이지 못하고 '~인'을 붙이는 모서인들 이야기, 장족 등 여러 소수민족들의 가옥에 들른 후 소수민족 박물관으로 이동해 부관장으로부터 윈난성 소수민족에 대한 강연도 듣고 소수민족 박물관 관람도 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소수민족은 모두 55개. 윈난(운남)에는 25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이 중 19개 소수민족은 윈난에만 있다. 이를 입증하듯 윈난의 대표 지역인 대리(따리)나 리장(여강)에 가면 독특한 복장을 입은 소수민족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윈난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윈난의 소수민족들을 우선 이해하는 것이 좋다.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은 윈난성 25개 소수민족 중 14개 소수민족의 주거 문화와 전통, 생활양식, 전통 복식 등을 볼 수 있도록 가옥을 재현해 놨으며 관람과 함께 독특한 풍습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와 함께 그들의 사랑과 결혼, 이별 등을 주제로 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어 윈난성의 소수민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소수민족 민속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소수민족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파문자와 윈난성 소수민족들의 화려하고 독특한 복식의 원형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과 소수민족들의 옛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수민족을 이해하려면 박물관도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과거에 완전히 독립해 있던 민족들...그만큼 알아가는 재미 가득


어떤 곳을 여행할 때 그곳을 알고 갈 때와 모르고 갈 때, 그 보고 느낄 수 있는 차이를 새삼 무엇으로 설명하랴.

"소수민족 지역들은 중국 영토에 있지만, 50~100년 전까지만 해도 민족과 문화, 종교 등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른 독립적인 지역들이었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들로 중국 영토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중국 전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들과는 다른 문화나 풍습 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만큼 알아가는 재미도 많고 알릴 것도 많다.

또한 문화 종교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데다가 그들의 독자적인 민족 특성들을 없애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소외받고 있기에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여러 조건으로 볼 때 공정여행의 최적지라고 생각한다."
-최정규(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프로그램 개발자)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 여행지인 대리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행 떠나기 며칠 전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여행을 직접 이끌고 있는 최정규 작가(여행도서 다수 씀)를 인터뷰하며 들은 이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고 또 했다.  
#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윈난 소수민족 민속촌 #윈난 소수민족 박물관 #윈난(차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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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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