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미래> 표지
들녘
서울에서 강원도 횡성의 시골로 이사온 지 10년이 지났다. 남편은 공기 좋은 강원도에서 살고 싶다며 시골로 내려가자 했고, 나는 농사를 업으로 짓지 않기에 시골에서 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도 딱히 서울에서 전망을 찾을 수 없던 우리는 불확실한 시골행을 감행했다.
2000년쯤에는, 농민운동을 하겠다고 이미 10년 전에 농촌으로 내려간 친구도 있었고, 막 귀농하겠다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한쪽은 농촌을 의식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한쪽은 농촌에 대안적 삶이 있다는 생각이 귀농의 동력이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시골에서 대안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나는 번잡함이나 복잡함, 존재감 없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은 단순하게 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남편은 도시에서는 내 집 갖기 힘들고 조적(벽돌 쌓는 일) 일도 없으니, 시골에 집 지어서 가족들 살게 하고, 자기는 밖으로 일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무모하게 시골로 와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조용할 것 같은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농촌에서 관찰자와 방관자로 살면서 내가 배운 것들은 무엇인가.
변현단 님이 쓴 <소박한 미래>는 내가 보고 듣고 겪은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잘 말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는 원리와 철학은 알기 쉽게 말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관심 가는 소주제를 찾아 하나씩 읽어봐도 좋다.
저자는 생태적 삶을 살면서 철저히 자연을 해치지 않는 농사법으로 경기도 시흥에서 '연두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늘과 땅과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농사를 짓는다는 그의 철학처럼, 책에서는 석유, 식량, 에너지, 국가, 경제학, 서구문명, 개인의 행복, 가족 등의 거의 모든 주제가 농사와 관련됨을 잘 알려주고 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이해하는 사람, 농부 "농부는 없어지고 그림자만 남다"라는 장(章)에서는, 점차 축산은 기업에 맡기고 농부는 농사만 짓되 유통은 기업에 맡기도록 농축산물에 살균처리공정을 의무화한다든지 저온창고와 배달 시스템을 갖추도록 법을 만들어 소규모 개인 농가를 없애려는 정부를 폭로하였다.
"농민의 손에 토종 종자가 없다니!"라는 글을 보자. 미국과 유럽은 지난 200년간 세계의 토종종자를 채집하여 다국적기업에서 새 종자를 만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팔고 있다. 우리나라 18만7천 종의 토종종자는 매년 200여 종 이상씩 사라지고 있다. 다국적기업은 그의 종자로 농부에게 생산을 요구하고 있기에, 이제 농부들은 토종종자를 가지고 농사지을 수 있는 권리마저 잃고 있다.
국내외의 큰 기업에 농업이 종속되면서 우리 밥상 위의 음식은 인간이 먹지 않아야 할 음식으로 바뀌었다. 첨가물을 넣어 먹음직스럽게 입맛을 자극하는 가공식품들, 외국사료와 항생제를 듬뿍 먹어 살이 오른 육고기, 멀리 물 건너온 농산물과 철에 맞지 않은 음식들이 자꾸 들어오니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소박한 미래>는 우리 밥상을 육식에서 채식으로 바꾸고, 지역음식과 계절음식, 거친 음식을 먹되 무조건 소식하며 많이 움직이며, 좋은 음식을 골라 먹어야 생명을 살리고 외국과 기업에 종속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제 자급자족 농사로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세계는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자연의 재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장에서는 석유를 캐서 인류가 풍족하게 살아왔던 100년이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가 더 이상 살 수 없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지진이나 해일로, 고래의 떼죽음으로 경고하는데, 인간은 그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 인간이 오감과 육감을 닫고 자연과 관계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연과 소통하지 않는 인간에게 재앙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연과 교류할 수 있는, 자연과 닮은 사람들이 바로 농부라고 했다. 농부는 하늘과 땅,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 하늘의 이치를 알고, 땅의 이치를 알고, 나의 몸과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농부인 부모님을 두거나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은근히 자랑스러워질 것이고, 도시 사람들은 '귀농을 해볼까'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돈과 사회에 종속되지 말고 자연에 종속되라하지만 시골에서 내가 보는 현실은 다르다. 농사는 돈벌이는 안 되고 고생만 하는 직업, 아는 것 없는 무지랭이들이 하는 직업, 농사를 짓고는 자식 대학공부 시키기 어렵고, 농사를 짓는 총각은 결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농촌을 채운 생각이다. 이분들은 여전히 현대농업의 이데올로기를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새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농업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미래>에서 말하는 '농부'와 '농사'의 철학을 곱씹어보면 좋겠다. 새로운 변화는 새로운 생각과 실천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자연을 따라가는 사람"인 농부는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이념이다. 이 새로운 이념을 실천하는 농부는 농협이나 농업기술센터의 권고로 새로운 작물과 기술을 도입하지 않는다. 우리 옛 방식대로 절기와 계절에 따른 농사를 짓고 작물을 맞추고, 땅의 이치와 특성을 파악하여 땅도 살고 식물도 사는 전통농법으로 여러 종류의 작물을 지어 자급자족하는 농사를 짓는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현대농법은 이익을 더 많이 발생시키려는 동력이 있기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을 수 없다. 반대로 전통농법은 가족이 안전하게 자급자족해서 먹을 것이 목적이므로 건강한 먹을거리가 된다는 명쾌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쯤이면 많은 농민들이나,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나는 농사를 업으로 지어 돈을 벌고 자식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럼 두 개의 직업을 가지란 말이냐 하고 말이다. 사실 시골에는 농사만으로 먹고사는 일부의 부농을 빼고서는 가족들 중의 한사람은 다른 직업을 갖거나, 농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부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말은 대규모의 농사를 지어야만 기업이나 유통과정에서 뺏기고 정부의 농산물정책에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전업농으로 먹고산다는 뜻이고, 내 식구 자급자족할 정도로만 짓는다면 다른 직업을 또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 현실이 농사의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고 거꾸로 생각해보게도 되었다.
<소박한 미래>는 농사는 누구나 지을 수 있고 누구나 지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자연적 세계구조를 깨는 데는 내 손으로 생산한 채소와 콩을 먹고 가공식품을 먹지 않는 것으로도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치를 바로 보면서 살기에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내가 생산한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현대문명, 자연과의 교감이 없는 도시문명 안에서 인간의 사회성은 곧 '인간관계가 돈'임을 은밀하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이 책은 만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에 종속된 존재"임을 깨달으라고 한다. 돈과 사회에 종속되지 말고 자연에 종속되라! 마음에 콱 와닿았다.
농촌살이가 불편한 것은 '농부' 잘못이 아니다그렇다면 시골 농부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하나? 내 가족이 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안전한 농작물을 길러, 대기업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으로 보내서 판매하면 된다. 도시 사람들은 빨리 귀농해서 텃밭에서 농작물을 키우고, 이도 할 수 없는 도시 사람들은 한 평의 상자에라도 흙을 떠다 채소를 키워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가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이치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내 식구가 먹을 안전한 먹을거리를 키우며, 석유와 원자력에 의존한 경제에서 헤쳐나와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강하고 주체적인 사람인가. 우리는 <소박한 미래>를 읽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귀농을 하는 것이 대책 없는 대안이 아니라, 더디지만 확실한 대안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왕 시골에 내려와서 살려면 <소박한 미래>를 읽어보라. 그리고 시골농부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자. 시골 가까이 '비까번쩍'한 문화시설이 없다는 것이, 아이들 다니는 학교에 아이들이 줄어든다는 것이, 시골에서 살자면 차가 꼭 있어야 된다는 것이 힘들 것이다. 그것은 내가 무능해서도 아니고, 현실을 잘 몰라 시골에 온 탓도 아니다. 그것은 농촌이 기업과 외국에 종속된 결과여서 그만큼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당당히 농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100평의 텃밭을 가꾸면서 그 농산물이 내게 아무런 수입을 주지 않는다 해도, 내 수고로움은 내 건강을 지키고 내 삶을 기업과 외국자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는 귀중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조용한 내 시간을 갖자면 그만큼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농사를 지으려면 새로운 생각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아직도 시골에는 낡은 생각들이 많다. 현대농법이 전통농법과 유기농법으로 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태줘야 한다.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농사'와 '농부'에 대한 생각을 바로 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우리 눈을 흐리는 자본의 막강한 힘을 늘 자각하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연의 경고를 귀 기울여 듣는다면 모두들 좀 더 생태적으로 살 수 있지 않나.
오늘도 바쁘게 걸음 걷는, 길가 한구석 민들레 한 포기 쳐다보지 못하는 많은 도시 사람들, 시골에 살면서 현대농법에 환상을 갖고 있거나 시골에 산다고 답답함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농촌은 '소박한 미래'를 열어주는 새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