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한번도 가축 키우는 걸 본 적 없어요"

[르포] 군산미군기지 주민들 난청 등 피해 심각... 학교 수업도 어려움

등록 2011.08.03 18:08수정 2011.08.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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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미군기지 모습

군산 미군기지 모습 ⓒ 안효선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환경문제는 소음공해다. 인근 주민들은 24시간 비행연습을 하는 미공군기들로 50년 이상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소음피해가 큰 곳은 활주로가 있는 선연리 중제, 하제 부락 주민들이다. 실제로 녹색연합과 군산우리땅찾기시민모임이 군산시의 용역을 받아 소음피해 조사 사업을 한 결과, 이 지역은 인간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곳으로 판정됐다. 군산시가 실시한 주민건강조사(2009년)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와 그 실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쒸이이이이익 꽈아아아아아."

시도 때도 없이 전투기 폭음... 사람이 살 수 없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엄청난 굉음이 귀청을 때린다. 가슴이 짓눌릴 정도의 중압감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전투기 엔진 소음을 듣기는 생전 처음이다. 그래서였을까, 몇 차례 더 이어진 전투기 폭음에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의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전투기 엔진음이 시도 때도 없이 들렸지만 군산비행장피해대책주민협의회 하운기 사무국장은 "엔진 테스트인 것 같다"며 "곧 잦아들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오지만 세월이 이를 적응시킨 것 같았다. 그는 "적응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군산미군기지의 하루 평균 전투기 출격은 50여 차례. 하지만 국내·국제상황에 따라 출격 횟수는 달라진다. 주일미병력과 함께 대규모 비상 출격훈련이 계획되면 보통 24시간 동안 100∼150회 이상 전투기의 출격이 이루어진다. 이럴 때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감과 함께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착륙뿐 아니라 엔진 테스트 및 예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지인근 주거지역의 소음 측정 결과를 보면 옥봉리가 85웨클을 기록해 '군소음특별법' 보상대상에 포함되는 수치를 보였다. 활주로에서 가까운 선연리의 경우 최고 90웨클의 소음이 측정돼 핵심피해지역(95웨클)에 근접하는 기록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치는 심장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는 정도의 소음이다.

송촌 마을에서 50여 년을 살아온 이근태(53·가명)씨는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농업이 대부분의 생계수단이지만 밖에 나가 일하는 게 수월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확성기 소리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울리는 확성기 소리에 자다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다, 혹시 모를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혹여 심장이 약한 노부모가 확성기 소리에 놀라 쓰러지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송촌마을 앞산 미군기지 내에 설치된 확성기는 아침·점심·저녁 하루 3번 소리를 낸다. 그러나 훈련이 있는 날이면 주·야 상관없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 확성기는 송촌마을뿐 아니라 4km 정도 떨어진 하제보건소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강력하다.

난청에 시달리는 사람들... 가축 사육은 꿈도 못 꿔

마을 주민들은 전투기소음에 이어 확성기소음에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정신집중이 안 되는 것은 물론 대화나 전화통화, TV 시청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또한 갑자기 울려대는 확성기로 불안감이 조성되어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이 되는 등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여기에 난청·이명·현기증·수면부족 등 신체적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선연리 중제, 하제 부락 주민 중 상당수는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난청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하제 부락의 김연수(49·가명)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 지역에 가축이 사육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전투기 폭음 스트레스로 가축들이 수태를 하지 못해 주민들이 일찌감치 사육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인근 지역 주민이 토끼 사육을 하다 수백 마리가 폐사해 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보상이 가능하면 맘 놓고 가축을 사육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내다 팔 때도 정이 들어 속이 상하는데 소음 때문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키우냐"고 반문한다. 비단 가축뿐만이 아니다.

이 지역의 아이들 또한 소음 때문에 난청, 정서불안 등 신체적·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의 둘째 아이 초연(10·가명)이는 얼마 전 난청 진단을 받았다. 초연이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교사의 관찰 덕분에 그나마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초기증상이라 완치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생활 환경이다. 김씨는 자녀들 때문에라도 시내권으로 이사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에 있다.

비행장 소음에 초등학교 수업도 어려워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소음피해는 신체적·정신적 수준을 넘어 주택의 균열과 가축사육의 포기 등 재산상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산미군기지 인근에 위치한 선연초등학교와 옥구초등학교는 전투기 소음으로 학업에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 소음측정 결과에 따르면 선연초등학교의 경우 지난 5년간 평균 75웨클 이상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이 정도의 상시적 소음노출은 심한 난청현상에 시달리게 되고, 주위가 산만해져 정서불안 현상을 띄게 된다고 분석했다.

지역주민들은 전투기 폭음과 같은 소음피해만 줄어도 이곳이 살기 좋은 고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의 고향, 내 아들, 딸들에게 삶의 터전을 온전히 물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스스로 척박한 땅이라고 구박하면서도 지난 50여 년 동안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지킨 이유다.

하운기 집행위원장(군산비행장피해대책주민협의회)은 "지금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향을 만드는 게 목표다"며 기지소음문제는 물론 기름유출, 오·폐수 무단방류 등 지역 환경을 저해하는 미군기지에 맞서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서해타임즈(8.3)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글은 서해타임즈(8.3)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군산미군기지 #군산비행장 #미군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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