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켜 주겠다더니... 신상정보가 '좌르륵'

인력양성기관, 여성구직자 주소·전화번호 공개... 개인정보 유출 불감증

등록 2011.08.04 14:45수정 2011.08.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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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OOOO인적자원개발센터'라는 곳에서 보낸 우편물을 받아든 나는 내용물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우편물 내용은 특정 수신자가 없는 안내문 형식의 인력채용 추천의뢰 공문이었다. 하지만 이 공문은 여성취업대상자 20여 명에 대한 민감한 신상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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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취업대상자 20여명에 대한 민감한 신상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편물을 두 통이나 받았다. ⓒ 김학용


구인추천 의뢰를 한 적이 없고 인력충원계획이 전혀 없는데도 이 기관에서 보내온 우편물은 추천대상 여성구직자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적나라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21세부터 50세까지 여성구직 희망자 18명의 이름과 나이, 성별, 사진은 물론 출신학교와 전공, 보유자격, 경력소개도 부족하여 휴대전화와 집 주소까지 공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망라해 개인정보를 축약한 결정판이었다.

문제가 된 곳은 전남의 한 도시에서 IT분야 맞춤형 인력양성기관으로 지난해부터 노사민정 양해각서를 체결해 운영 중인 한 인력개발센터. 만18세 이상 실업자와 졸업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ERP(기업자원전산관리)를 가르치고 과정 수료 후 채용 희망기업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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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나이, 성별, 사진은 물론 출신학교와 전공, 보유자격, 경력소개도 부족하여 휴대전화와 집 주소까지 공개하고 있는 여성구직자들의 리스트. ⓒ 김학용


다른 취업기관과 사이트들이 기업고객들에게만 공개하기 위해 개인정보의 일부를 가리고 학력사항도 비공개로 처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과도하게 많은 개인정보를 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상세한 개인정보를 일반우편물로 그것도 수취인을 'OO기업 인사담당자 앞'이라고 무책임하게 보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같은 지번에 회사가 두 곳 입주해 있는 관계로) 동일한 우편물을 똑같은 내용으로 두 통을 받았다. 아마도 공단입주업체나 지역기업주소록을 통해 취득한 불특정다수의 기업 주소로 무차별 발송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국내 3대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와 싸이월드 회원 3500만 명의 정보가 해킹됐다. 회원 아이디와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비밀번호 등이 해커들의 손으로 넘어간 사상 초유의 일인데다 유출 규모 또한 사상 최대였다. 이렇듯 개인정보 누출이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도,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여성 구직자들에게 있어 사진은 물론 출신학교와 집 주소, 그리고 휴대전화번호 등은 민감한 개인정보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성구직자들의 개인정보를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한다는 건 정말 큰 문제다. 이 기관이 그동안 얼마나 구직자의 정보를 제공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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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나이, 성별, 사진은 물론 출신학교와 전공, 보유자격, 경력소개도 부족하여 휴대전화와 집 주소까지 공개하고 있는 여성구직자들의 신상정보. ⓒ 김학용


이 같은 개인정보를 단순한 정보제공이라는 차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것은 해당 기관을 믿고 서류를 제출한 구직자들의 신뢰를 저버린 처사다.


이와 관련해 2일 이 기관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기업에 제공한 구직자들의 개인정보는 워크넷사이트에도 함께 제공되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인사담당자만 볼 수 있도록 발송하였으며, 아직까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1세기는 정보화시대로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정보를 따라가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중략) 아래와 같이 수료생(ERP인력양성과정)을 양성하였으니 귀사의 필요한 인력 충원시 참고하시어 연락주시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 취업추천 안내문 중

인사담당자만 볼 수 있도록 발송했고, 지금까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데 별다른 관계도 없는 내가 개인정보를 담은 우편물을 두 통이나 받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정말로 직접 받은 경우는 얼마나 될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데 구직자들에게 사전 동의는 받았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기업의 정보를 완벽히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력을 양성한다면, 정보통신 인력양성기관의 내부 정보단속부터 제발 제대로 하시라. 우편으로 제공된 개인정보가 내 아내의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아찔할 뿐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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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OO집사님, 20만원만..." 이럴 수도?
#개인정보 #구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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