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부친까지 나섰는데 기억 안 난다? 거짓말"

'43일간 구속' 이병문씨 12시간 청문회 방청... 한 후보자 "기억 안 난다"

등록 2011.08.05 14:04수정 2011.08.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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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4일 국회 본청 4층. 백발이 성성한 한 70대 노인이 방청석에 앉아 한상대 후보자와 국회의원들 간의 공방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병문(78)씨다. 그는 27년 전 한 후보자의 잘못된 수사지휘로 인해 43일간 구속됐다가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1984년 당시 초임검사였던 한 후보자는 피고소인(이씨의 동업자)는 물론이고 고소인이었던 이씨까지 구속했다. 피고소인과 고소인 모두 구속된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다(8월 3일자 기사 <"한상대로부터 43일간 무고죄로 구속됐다 '무죄' 받아"> 참조).

한 후보자 "판결문 보고 사과 여부 결정하겠다"

 한상대 후보자의 초임검사 시절 43일간 구속됐다가 무죄판결받은 이병문씨.
한상대 후보자의 초임검사 시절 43일간 구속됐다가 무죄판결받은 이병문씨.구영식
이날 청문회장에서 몇몇 야당 의원들은 지난 3일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이씨의 사연을 청문회장에서 소개하며 한 후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가장 먼저 이씨의 사연을 언급한 이는 노철래 미래희망연대 의원이었다. 노 의원은 한 후보자와 이씨의 '악연'을 소개한 <오마이뉴스>의 보도 내용을 언급하면서 "초임검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오류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오마이뉴스> 보도 내용이 나름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뒤 "검사가 피고소인과 고소인을 동시에 구속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이씨와 같은) 이런 피해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자신의 비서관을 통해 이씨를 접촉했던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이씨가 아침부터 이곳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다"며 "이씨는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겠다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고소인이 43일간 구속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억울한 사연을 우리 사무실에서도 제보를 받았지만 재판관계이기 때문에 얘기 안 했는데 <오마이뉴스>에 보도됐다"며 "그분에게 사과할 용의가 없나?"라고 한 후보자에게 물었다.

이에 한 후보자는 "오래된 초임검사 때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며 "남부지법에 남아 있는 판결문을 확인해보고 그분에게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이씨 "부친까지 나를 찾아온 사건인데 기억 안 난다니..."

이씨는 5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청문회장에 있었는데 몇몇 의원들이 내 얘기를 조금이나마 언급해줘 고마웠다"며 "내 사연에 귀를 기울여준 <오마이뉴스>에도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한 후보자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과 관련해 "한 후보자가 많은 사건을 처리했겠지만 제 사건은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기억이 안 날 수 없다. 제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후 한 후보자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자 한 후보자의 부친(한윤수, 당시 변호사)이 저를 찾아왔다. 처음에 '내가 아들에게 야단치고 사과하라고 했다'고 하더라. 부친이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씨는 "그런데 제가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니까 그의 부친은 '현직 검사가 술자리에서 여자의 배를 걷어차 사람이 죽는 살인 사건이 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검사가 공소한 사건이 무죄가 됐다고 무슨 문제가 되느냐, 괜히 고생하지 말고 소를 취하하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씨는 "12시간 동안 뒤에서 지켜보면서 준비해온 말을 한 후보자에게 꼭 하고 싶었다"며 '27년간 못다한 말'을 이렇게 짧게 풀어놓았다.

"당신은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무죄임을 알고도 저를 구속시켰다. 이것은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해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씨는 "12시간 동안 한 후보자의 답변 내용들을 지켜봤는데 국민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모친이나 장인이나 부인 핑계만 댔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에서 그런 한 후보자를 임명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는 이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가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한상대 #이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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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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