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 원에 팔려가는 미성년 '가뭄 신부'들

'아프리카의 뿔' 덮친 기근으로 딸 파는 가정 증가

등록 2011.08.05 19:03수정 2011.08.0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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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케냐의 미성년 여성들이 '가뭄 신부'로 팔려가고 있다. ⓒ 트러스트 로


"일부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어린 딸을 팔고 있다. (여기선) 흔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쉬쉬한다."

케냐의 하바스와인에 사는 파트마 아흐메드는 막대기로 얼기설기 만든 임시 숙소에 쪼그리고 앉아 이렇게 말했다. 과부인 파트마 아흐메드에겐 7명의 아이가 있다. 파트마 아흐메드는 돈을 받고 어린 딸을 파는 일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은밀히 이뤄지는 이유는 케냐에서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리 향상을 추구하는 사이트 '트러스트 로(Trust Law)'는 4일(현지 시각), 성년이 되기 전에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여성에 관한 특별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는 하바스와인 현지를 돌아본 내용이 있는데, 파트마 아흐메드의 이야기도 거기에 포함돼 있다.

'트러스트 로'에 따르면, 딸을 어린 나이에 결혼시키는 것이 이 지역에서 최근에 생긴 현상은 아니다. 이 지역의 많은 유목 공동체에서는 '명예', 즉 처녀성이 유지되는 어린 나이에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릴 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뭔가 결함이 있다고 보거나 가족의 짐으로 여기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신부 값", 즉 지참금을 내고 여성을 데려갔다. 지참금 역할을 한 것은 대개 가축이다. 이 지역의 한 보건 노동자는 "우리 문화에서는 여성이 아홉 살이 되면 결혼한다"며, 부모가 강요하기 때문에 여성은 결혼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제 인권 단체와 여성 단체는 이처럼 미성년 여성에게 혼인을 강제하는 것을 거세게 비판해왔다. 강제적인 조혼은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이자 권리 침해라는 비판이었다. 어린 신부가 교육은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남편으로부터 성병이 전염될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소녀에게 원치 않는 결혼을 강제하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녀 팔아 또 다른 자녀에게 줄 먹을거리 마련해야 하는 부모들


최근 하바스와인에서는 어린 딸을 신부로 파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다. '아프리카의 뿔'(아프리카 대륙 동쪽으로 뿔처럼 튀어나온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케냐 등)을 덮친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관련 기사 : <나뭇가지 들고 하이에나에 맞서는 여인들>, <로프로 배 묶은 여성들... "생명 위험할 수도">, <"아이들 보는 앞에서 사흘 동안 집단 성폭행">). 가뭄 때문에 기근이 발생하자, 생존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딸을 내다파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자식(주로 딸)을 파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있던 비극으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의 한 족장은 "열네 살짜리 딸을 학교에서 데리고 나와 남자(나이든 남자라도)에게 팔" 예정인 한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줄 먹을거리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딸을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10명인 가정도 여럿 있는데, 그 아이들을 다 먹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트러스트 로'는 "구호품 공급이 부족해 사람들이 절망적인 전략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렇게 팔려가는 여성들을 "가뭄 신부"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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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결혼해야 하는 현실은 소녀들에게 재앙이라고 '트러스트 로'가 밝혔다. ⓒ 트러스트 로


'가뭄 신부'로 팔려가는 소녀들 늘면서 학생 수 감소

극심한 가뭄과 기근은 지참금 형태도 바꿨다. 가축이 대부분 죽고 그 사체가 곳곳에 널려 있는 상황이 되면서, 가축이 아니라 돈으로 지참금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지역 사람들에 따르면, 요즘 소녀들은 1만5000 케냐 실링(168달러, 약 17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이와 관련, 파트마 아흐메드는 "남자가 부자면 값이 5만 케냐 실링(559달러, 약 56만 원)까지 오른다"고 말했다.

이렇게 팔려가는 여자아이들이 늘면서 학교의 학생 수가 줄고 있다. 작년부터 가뭄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350명이던 이 지역의 초등학교 학생은 210명으로 줄었다. 40%가 감소한 것이다. 지역의 족장은 "굶주림 문제 때문에 100명 넘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엔은 케냐 북동부 주의 소녀 중 학교에 다니는 이는 5명 중 1명꼴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트러스트 로'는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이 이 지역에서 후원하던 어린이 3060명 중 400명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월드비전은 400명 중 일부가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부유한 친척 집으로 보내지거나, 남의 집 하녀로 혹은 음식 가판대에서 일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다른 가족 구성원이 굶어 죽지 않도록" 입 하나 더는 차원에서 혼인했을 것이라고 월드비전 지역 책임자가 말했다.

'트러스트 로'는 매년 전 세계에서 18세 미만의 소녀 중 약 1000만 명이 결혼하고 있다고 밝혔다. 3초에 1명꼴로 이는 대부분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중에는 원치 않는데도 혼인해야 하거나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트러스트 로'는 밝혔다.

한편 미국의 한 구호 단체는 3일(현지 시각), '아프리카의 뿔' 국가 중에서도 가뭄과 기근 피해가 극심한 소말리아에서 최근 석 달 사이에 2만9000명이 넘는 어린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의 뿔 #케냐 #가뭄 #조혼 #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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