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3차 희망버스'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행진을 불허한 가운데, 7월 31일 오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생각에 잠겨있다.
유성호
현대중공업이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까닭세 번째, 김대호는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고 그 근거가 희박한 정리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한진중공업이 경영합리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선박의 제조로 거듭날 것이라는, 경영진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을 드러낸다. 과연 그럴까? 현대중공업과 한진중공업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그 믿음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현재,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률은 20%를 넘어서서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한 한진중공업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 현대중공업 노조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의 초강경 노조로 악명이 높았고, 한국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골리앗투쟁의 주역이기도 했다. 이러한 막강한 노조의 힘앞에서 현대중공업이 택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다. 연구개발 극대화를 통해서 고부가가치 선박위주로 사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그 이후, 현대중공업은 정밀한 엔지니어링 설계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초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FPSO, 드릴쉽 등 초고가 선박을 만드는 회사로 거듭났다. 현대중공업은 중국 회사가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고 싶어도 맡기는 선주가 없어서 수주할 수 없는 선박들을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인간다운 처우를 원하는 것에서 시작했던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임금을 조금 더 받고 싶은 당연한 이기심과 결합해 극렬한 투쟁을 낳았지만, 배 만들어서 팔고 남은 이익을 노동자와 아귀다툼하면서 조금 더 가져 가려다가 온갖 못 볼 꼴 다보는 식의 노사갈등에 학을 뗀 경영진이 경영혁신에 힘쓰고 다른 대안을 선택하게 강제도 한 것이다.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노동자들에게 한진중공업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고도 금융위기 와중에도 20%대의 놀라운 영업이익율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이 된 것이다. 김대호 소장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극한투쟁이 역설적으로 현대중공업의 경영혁신을 추동하고 경쟁력 있는 세계기업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기술개발이 아니라 '후진적 노동억압' 선택한 한진중공업자, 그럼 한진중공업을 보자. 불행하게도(?) 한진중공업은 과거 현대중공업이 가졌던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강력한 노조의 저항이 없는 와중에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영도조선소를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로 탈바꿈시킬 기술개발에 주력하기보다는 폐업을 통해서 얻게 될 다른 개발이익의 매력에 쉽게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부산에는 영도조선소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이 위치한 영도구 봉래동은 부산항구를 마주보고 있어 아파트 부지로는 최적지라고 한다. 게다가 한진중공업은 '해모로'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건설업도 겸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고부가가치 선박제조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하는 동안, 한진중공업은 임금이 싼 필리핀에 대규모 조선소를 세우는 데 투자를 했다.
그 결과는? 한진중공업은 저부가가치 선박 조선을 노동조건이 열악한 필리핀으로 옮겨서, 외교문제로 비화될 정도로 우리나라가 과거에 겪었던 노동쟁의를 필리핀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업 최대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영도조선소를 폐업하려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운동이 진보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강력한 노조의 저항 때문에 현대중공업 대주주·경영진은 노동자와의 다툼 대신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런 반면 노조의 저항을 무시할 수 있었던 한진중공업은 아직도 기술개발을 하려는 계획 대신, 노동자를 억압하는 후진적 경영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필리핀으로 조선소를 옮기고 영도조선소를 폐업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만약 노조가 퇴로를 막지 않았더라면 현대중공업이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스스로 하려고 했을까?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 기뻐하는 덴마크 노동자들네 번째의 문제는, '유연안정한 노동시장'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에 대해 김대호가 가진 인식의 추상성이다. 정리해고를 한다고 해도,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재취업을 할 수 있는 희망이 있거나, 산업자체가 사양화되어서 다른 산업으로 직종을 옮겨야 하는 경우 그것에 따른 재교육을 할 수 있다거나, 재취업이 될 때까지 생활의 안정을 이룰 수 있다거나 하는 안정성이 보장되면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전 세계 노동시장의 모범적인 예로 떠오르는 덴마크에서는, 공장이 문을 닫고 중국으로 옮겨간다고 하면 노동자들이 오히려 좋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해왔던 단순노동을 벗어나서, 다른 고급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면, 덴마크에서는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구현된다는 얘기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덴마크는 이런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중공업이 1990년대 중반에 직면했어야 했던 노조의 저항에 덴마크는 국가 전체가 직면했고, 기업들이 고부가가치로 전환할 수밖에 없도록 그 퇴로를 전 사회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진중공업과 같이, 임금이 싼 저개발국가로 사업장을 옮기고 한국 사업장은 고부가가치로의 전환이 아닌 폐업의 수순을 밟는 것이 허락된다면, 김대호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덴마크가 가지고 있는 유연안정한 노동시장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임금이 싼 저개발국가로 사업장을 넓히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고부가가치 선박업을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제하게 하는 데 노동운동의 진보성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같은 무능한 재벌의 탐욕과 이기심을 우리 사회가 제어하지 못하면, (김대호가 주장하는 유연안정한 노동시장의 실현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