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이 지난달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의 굳게 잠긴 정문에서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고, 조합원들의 일괄복귀를 허용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선대식
"우리의 소망은 자그마합니다.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들고 낮에는 일하자는 지극히 평범한 요구였습니다. 야간노동 일주일을 마치고 퇴근버스를 탔던 동료가 차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유성기업에서 십오 년 동안 일한 노동자였습니다. 일어나라고 깨웠는데, 집 앞이니 내려야 한다고 깨웠는데, 일어나지를 않습니다.(말을 잊지 못하고 시간을 거슬러가 굵은 눈물을 흘린다.)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습니다. 스물여덟 살인 직장 동생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자다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다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심야근무를 없애자,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 요구했던 겁니다."한여름 햇볕에 새까맣게 탄 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말입니다. 요즘처럼 해를 많이 본 적이 없다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밤에는 잠 좀 자자!' 이전에 '죽지 말고 일하자!'가 아닐까요. 기계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인간선언'이 아닐까요. 이 당연한 요구가 두들겨 맞아 머리가 함몰되고, 감옥에 가고, 일터에서 쫓겨날 이유가 될까요?
낮에 일하자는 요구도, 살고 싶다는 절규도 잠시 접었습니다. 일단은 내 한 몸 부서지더라도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터에 돌아가고 싶다고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요구합니다. 회사의 직장폐쇄(2시간 부분파업에 회사는 곧바로 직장폐쇄를 하여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로 뜻하지 않게 길어진 파업을 철회하겠으니 내 사랑스런 아들딸이 끼니 거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방어권으로 만들어진 '직장폐쇄'가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격권'이 되었습니다. 파업을 철회한지가 한 달이 넘었건만 여전히 '직장폐쇄'는 계속 됩니다. 부품생산 차질 운운하며 얼토당토 않는 '연봉 칠천만 원' 운운하며 노동자를 비난하던 회사가 생산을 하겠다는 노동자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원청기업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구매담당 이사의 차량에서 '유성기업 불법파업 대응방안'이라는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현대, 기아 자동차 노동자의 주된 요구기도 하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밤에는 자고 싶다'는 요구가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징계를 하거나 형사처분을 하면 될 겁니다. 이제껏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심야노동을 10년 넘게 했던 이들의 일터를 빼앗아 이제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해서야 되겠습니까?
유성기업문제는 노사갈등문제가 아니다유성기업 대표님께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심정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제발 직장폐쇄를 풀고 거리에서 풍찬노숙 하는 노동자에게 일터를 돌려주십시오. 그건 기업가의 윤리에 앞서 '인간, 그 최소한의 예의'입니다(회사는 노동자의 진정성이 의심되어 공장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정성은 진정성을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도 바랍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문제는 노사관계나 노사갈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요구는 '인간, 그 최소한의 바람'입니다. 이 요구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작은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기계를 닮은 세상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밤낮을 잃은 닭들의 달걀은 유정란일 수 없습니다. 부화할 수 없는, 생명을 피울 수 없는 기계가 찍어 낸 생산품과 다름없습니다. 밤낮을 잃은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사람이고 싶은, 껍질을 깨고 부화하여 생명이 되고자 하는 지극히 당연한 본능입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웃고 울 수 있는,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인간의 바람일 뿐입니다.
밤을 빼앗긴 이들에게 밤을 되돌려 주고, 기계에 갇힌 사람, 아니 기계에 갇힌 세상을 구하는데 나약한 글쟁이의 마음을 보탭니다.
덧붙이는 글 | 이 릴레이 기고는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레디앙>, <민중의 소리>, <참세상>에 동시에 연재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