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의 몫까지 살아가고 있는가?

[사진노트] 죽음이 삶을 낳고

등록 2011.08.12 09:57수정 2011.08.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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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은 모두 베어진 삶 혹은 단절된 삶들이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먹고 삶,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 김민수

▲ 어시장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은 모두 베어진 삶 혹은 단절된 삶들이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먹고 삶,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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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죽어 보관되는 형태도 다양하다. 죽었으되 아직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가 보다. ⓒ 김민수

▲ 어시장 죽어 보관되는 형태도 다양하다. 죽었으되 아직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은가 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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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어떤 것은 죽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저들이 자유로이 유영하던 그 바다, 그들이 몸에 모셨던 그 바다를 우리는 먹는다. ⓒ 김민수

▲ 죽음 그 어떤 것은 죽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저들이 자유로이 유영하던 그 바다, 그들이 몸에 모셨던 그 바다를 우리는 먹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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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어떤 형태건 우리 몸에 모시는 것들은 죽었거나, 살아있어도 죽는다. 죽음을 먹음으로 우리는 산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엇일까? 내가 또 누군가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 김민수

▲ 죽음 어떤 형태건 우리 몸에 모시는 것들은 죽었거나, 살아있어도 죽는다. 죽음을 먹음으로 우리는 산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엇일까? 내가 또 누군가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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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잡이 도구 죽어 껍데기만 남은 것들이 또 다른 생명을 잡는 도구로 사용된다. 살아있을 때에는 잡지도 못하던 것을 죽어서 잡는다. 자기를 비워냈을 때, 담지 못했던 것을 담는다는 상징을 본다. ⓒ 김민수

▲ 낙지잡이 도구 죽어 껍데기만 남은 것들이 또 다른 생명을 잡는 도구로 사용된다. 살아있을 때에는 잡지도 못하던 것을 죽어서 잡는다. 자기를 비워냈을 때, 담지 못했던 것을 담는다는 상징을 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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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은 뒤 고통은 끝나는 것일까?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 이들 중에서는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그 혐오스럽다는 각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 김민수

▲ 죽음 죽은 뒤 고통은 끝나는 것일까?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 이들 중에서는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그 혐오스럽다는 각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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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미 죽은 것들의 눈에서 생생함을 찾아내려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아픔에는 민감하지만, 남의 아픔에는 둔감하고, 자신의 죽음에는 민감하지만, 남의 죽음에는 초연하다. ⓒ 김민수

▲ 죽음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미 죽은 것들의 눈에서 생생함을 찾아내려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아픔에는 민감하지만, 남의 아픔에는 둔감하고, 자신의 죽음에는 민감하지만, 남의 죽음에는 초연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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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기술 과거에는 나물만이 아니라 고기도 이렇게 말려 저장을 했다. 생물과 제 몸의 모든 수분을 다 빼어낸 것들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 김민수

▲ 저장기술 과거에는 나물만이 아니라 고기도 이렇게 말려 저장을 했다. 생물과 제 몸의 모든 수분을 다 빼어낸 것들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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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동료들과 함께 있어 행복할까? 무덤에 합장을 하면 저 세상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왜,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고 믿는 것일까? 죽은 것들에 대한 예의는 무엇일까? ⓒ 김민수

▲ 죽음 동료들과 함께 있어 행복할까? 무덤에 합장을 하면 저 세상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왜,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고 믿는 것일까? 죽은 것들에 대한 예의는 무엇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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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살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 조차도 결국에는 죽이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그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애 하지 않을까? ⓒ 김민수

▲ 어시장 살아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들 조차도 결국에는 죽이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그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애 하지 않을까? ⓒ 김민수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것들을 돌아보니 모두가 죽음을 먹는다.

그것은 동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식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지 인간도 동물의 한 종으로 동물의 소리보다 식물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육식보다는 채식이 더 우아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다.

 

어떤 이는 어릴 적 닭 잡는 것을 본 이후로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이는 돼지잡는 것을 본 이후 너무 잔인해서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개를 뭉둥이로 때려잡고 짚으로 털을 그슬리는 것도 보았으면서도 즐겨먹지는 않지만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졸지에 나는 야만인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죽음을 먹는다.

죽음을 먹고 사는 것이다. 식탁에 올려지는 수많은 죽음들,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거나 그들 속에 모시고 있는 하늘과 바다와 그 모든 것들이 그 속에는 들어 있을 터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모든 것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잔인하게 그들을 배려하지 않고 키우거나 잡는 것을 먹으면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 몸에 모시는 모든 죽음들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영위한다.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먹는 자들의 예의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죽음을 맞이할 터이고, 흙이 우리를 먹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내치지 않도록 살아갈 일이 아닐까?

 

죽음을 먹고 산다.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은 이유

죽어 삶이 된다.

먼저 죽은 이들과

우리의 삶이 되어준 이들의 삶을 더한 것이

내 삶이 된다. <죽음과 삶>

2011.08.12 09:57 ⓒ 2011 OhmyNews
#어시장 #죽음 #음식문화 #삶 #사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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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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