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자장면을 처음 사주었던 급우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던 검정 목간판
조종안
우리 마을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신풍원 부근에서 내린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등굣길이어서 걷기로 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지지고 볶던 추억들을 되새겨보고 싶었기 때문. 구 군산역에서 창성동 아리랑고개(콩나물고개), 명산시장, 화교소학교, 명산사거리, 구 군산교도소를 지나 식당에 도착하니 검정 목간판(목판)이 가장 먼저 반겼다.
색이 하얗게 바랜 리본과 붉은 글씨의 '中華料理(중화요리)', 금빛으로 양각된 '新豊園'을 읽는 순간 "야~아 몇 년 만에 보는 '신풍원'이냐!"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간판이었기 때문. 중고등학교 총동창회 때 손을 흔들며 안부를 묻던 급우 이상으로 반가웠다.
일반 전면 간판과 달리 아침에 걸었다가 저녁에 떼어 보관하는 검정 목판은 화교들이 신줏단지처럼 아꼈으며 옛날 중국음식점의 상징이요 '랜드마크'였다. 그래서인지 그 옛날 배고플 때 군침을 삼키며 맡았던 구수하고 향긋한 간짜장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철부지 아이들도 아빠와 걷다가 양반집 신부의 큰댕기 비슷한 자줏빛 리본이 장식된 검정 목판을 발견하면 "저기가 짜장면집이다!"라고 소리쳤다. 문맹자 노인들도 음식점 이름은 몰라도 자장면집인 것은 알았으니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목판에 얽힌 웃기는 추억도 있다. 학창 시절에는 급우들과 중국집 앞으로 지나가다가 목판에 머리를 부딪치면 짜증을 냈고, 앙갚음으로 들고 도망치며 중국집 주인을 놀리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누가 볼까 무서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아침에 걸어놓았다가 저녁에 들여놓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쥐불놀이하는 정월 대보름날 목판을 도둑맞은 중국집도 여럿 있었다.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이어서 어른이 훔쳐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신풍원 주인은 중군 산동성에서 건너온 여(呂)씨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