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8월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멀리서나마 보았다. 3번에 걸쳐 부산을 향했던 희망버스에는 동승하지 못하고, 내가 가서 본다고 상황이 바뀔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런 상징 앞에 서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죄송한 마음이라도 씻어야지"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영도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때 김진숙 위원장과 지인으로 지내면서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을 음으로 양으로 돕고 있던 "Soo"님을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딱히 몇 시라고 하는 정해진 약속 시간이 없던터라 오후 즈음에 혼자서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하차해 85호 크레인 맞은편까지 천천히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에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플래카드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위치가 봉래초등학교 정문 근처였는데, 바로 담장 밑에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세 명이 담장을 그늘 삼아 돗자리를 펴소 크레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크레인 맞은편으로 점점 다가갈 즈음에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전경 두 명이 크레인 앞 담장을 왕래하며 순찰하고 있었다. 저렇게 높게 드리워진 담장을 왜 감시하고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직접 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문제이고 해서 그냥 의문부호만 머릿속에 계속 붙이고 있었다.
크레인 맞은편 자리에서 보기만해도 어지러운 높이의 크레인을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약속했던 Soo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만나러 와주셨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분과 오직 한진중공업이 인연이 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다.
Soo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Soo님께서 "트위터 하시면 김 위원장님께 멘션 날려보세요. 좋아하실예요."라고 하셨다. 순간적으로 "에이,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그래요. 괜찮아요." 했는데, "그럼, 통화라도 잠시 해 보실래요?" "에? 통화가 되요?"라고 말하자마자 버튼을 누르시더니 김 위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바꿔주신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당황했는지, 안부도 묻지 못하고, "안녕하세요, 제 후배가 조그만 인터넷 신문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나중에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게 무슨 경우인지. 속으로 얼마나 죄송했던지. 어쨌든 김 위원장님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서울에서 내려갈 때부터 기회가 되면 해봐야지 했던 인터뷰 약속도 잡을 수 있어 서울에서 내려 온 목적은 다 이루었구나 했다.
통화를 마치고 멈추었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해고 노동자 두 분께서 우리에게로 다가오셨다. 한 분은 Soo님께서 나를 위해 한진중공업을 둘러볼 수 있도록 부탁해 놓았던 "철"이라는 분이었고, 또 한 분은 이름도 여쭈어보지 못했던 분이다. 그렇게 네 명이서 모이자 화제는 당연히 모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네 명이서 한 목소리가 된 것은 "그 방송사가 어떻게 그런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 하는 것과 "그나마 한진중공업 사태의 사실에 제일 근접해 있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통성명도 하지 못했던 노동자분께서 한 가지 억울한 사실과 웃기는 풍문 또 하나를 이야기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