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다가 본문은 아주 짤막짤막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내공이 담긴 글솜씨로 독자들을 몰고 간다.
신창범
그는 고택을 과거의 유물로만 보지 않는다. 그에겐 오래된 미래를 만나는 공간이다. 그가 찾아다닌 고택들은 괜히 명문가가 아니다. 그냥 오래됐다고 고택이 아니다. 저자는 하얀 공간, 무념의 비워진 공간을 꿋꿋한 '선비정신'으로 오랜 세월 채워 온 명문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넣었다. 그래서 고택에 남겨진 선인들의 삶의 자취를 과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미래로 치환시켜 놓았다.
그는 왜 고택에서 빈둥거려보라고 했을까? 고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은, 깨달음은 애써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선비정신이 깃든 곳에서 마음을 비우고 어린아이처럼 빈둥거리는 것! 그 자체가 새로운 인생체험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잊고 살던 것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그가 만일 고택의 건축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더라면 그저그런 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여섯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그는 많이 약아졌다. 이제 그는 장안의 지가를 올릴만한 이야기꾼이 되어버렸다. 고택에서 찾아낸 권력과 인생의 허망함, 꼿꼿한 선비의 절개, 학문과 예술, 나눔과 베품 등을 그만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버무려 놓았다.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을 인문학의 반열에 올려 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감히 말하건데 이용재 선배가 이제서야 확실하게 그 길을 텃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는 설계하는 건축가는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저 건축을 대할 때, '복잡한 법규' 또는 '재테크의 수단'이란 굴레 속에서 헤맬 때 그는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너무나 쉽게 풀어놓았다. 그것이 공학이 아닌 인문학적인 건축 바라보기의 시작이다. 이제 고택에서 시작했으니 그가 써대야 할 인문학적 건축 바라보기는 그 소재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더불어 사람들의 건축에 대한 안목, 그리고 건축가를 이해하는 안목까지 높아져서 우리네 건축문화의 질이 한결 높아질 걸 생각하니 흐뭇하기까지 하다.
이 책 서문에 넣은 소설가 이경자의 글에서 한 가지만 고치고 싶다. "건축가 김수근이 건축은 냉동음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라는 첫 문장이다. 원래는 바흐가 말한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란 표현인데 김수근 선생이 그리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냉동음악'과 '동결된 음악'은 표현의 미세한 차이가 아닌 것 같다. 건축판의 식자들은 결코 냉동음악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음 판에서는 수정했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저자는 고택이라는 동결된 음악을 잘 해동해서 맛깔스런 요리로 밥상 위에 올려 놓았다. 독자들은 그저 숟가락만 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