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거라 삼각산아

[역사소설 수양대군9] 무계정사에서 황룡이 일어난다?

등록 2011.08.25 09:32수정 2011.10.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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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두봉 서강8경중의 하나로 풍광이 수려해 명나라 사신들의 필수 유람지였다. 병자호란때 조선 왕의 항복을 받아 콧대가 높아진 청나라 사신들은 잠두봉 아래 양화나루에서 뱃놀이를 즐기면서 ‘삼배탕’을 요구해 영접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 처형 장소로 쓰여 현재는 절두산 성지가 되었다. ⓒ 이정근


의금부도사 신선경이 이끄는 안평대군 호송행렬이 양화나루에 도착했다. 강바람이 쌀쌀하다. 하늘을 찌를듯한 권세도 때가 되면 세(勢)를 잃듯이 대지를 달구던 폭염도 바람 앞에 위세를 잃고 꼬리를 내렸다. 이우직이 먼저 거룻배에 올랐다. 뒤이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안평대군이 배에 올랐다. 위풍당당했던 위엄은 간데없고 참담한 모습이다

거룻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일은 알바 아니다'라고 무심히 서있던 소가 놀랐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소가 큰 눈을 부릅뜨고 움직였다. 함거를 끌고 갈 황소다. 덩달아 거룻배가 기우뚱했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기겁했다. 놀란 소가 안평을 쳐다보았다. 산발한 모양새가 시선을 혼란하게 했는지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배가 강심에 이르자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잠두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잠두봉은 서강8경 중의 으뜸이다. 때문에 조선을 찾은 명나라 사신들의 유흥 명소였다. 강 건너 마주보이는 선유도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쪽진 여인네의 뒷머리 같은 선유봉은 암봉이고 우직하게 생긴 잠두봉은 숫봉이기 때문에 궁합이 맞는다는 것이다.

잠두봉과 선유봉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상 삼배탕, 한강의 명물이었다

조선에 나온 중국 사신들은 선유도 뱃놀이를 게걸스럽게 탐했다. 더구나 '조선에 나가 뱃놀이 하면서 '삼배탕'을 식(食)하지 않은 사람은 조선에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는 말이 중국 관리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면서 사신을 영접하는 조선 관리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사람들은 광진에서 군자감이 있는 용산강 까지를 한강. 용산강에서 삼개나루 지나고 안평대군 정자를 지나 양화나루 까지를 서강. 그 이서(以西)는 임진강과 예성강이 합류하고 개경 상인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고 해서 경강이라 불렀다.

눈을 왼쪽으로 돌리니 효령대군의 별장 희우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 세종의 부름을 받고 형 수양과 함께 잔치에 참석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때처럼 아우 금성, 형님 수양과 함께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 수는 없을까?"
부질없는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이우직이 오라에 묶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러니까 제가 먼저 치자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부끄럽다. 시기를 놓친 것이 한스럽다."

안평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배가 강심을 벗어나자 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어우러져 영험하게 보이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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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가 뿔처럼 생겼다 하여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북한산이라고도 불린다. ⓒ 이정근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출발한 용(龍)이 백두대간을 달리다 추가령에서 말을 갈아타고 수피령을 넘어 운악산과 죽엽산을 단숨에 제치고 도봉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니 해가 뉘엿뉘엿. 최종 목적지 곡릉천에 닿으려면 장면산을 넘어야 하는데 해 떨어지기 전엔 당도하기가 어렵겠다. 갈 길 바쁜 용이 방향을 바꿔 백운대에 오르니 구름이 유혹한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쉬어가시라'는데 외면할 수 있겠는가. 정상에서 운우의 정을 나눈 용이 보현봉 지나 형제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 깊다. 하늘을 나는 용이 그게 두려울 소냐. 보토는 다음문제, 협곡을 건너뛰어 백악에 이르니 숨이 차다. 자신도 모르게 여의주를 떨어뜨리고 인왕 능선을 따라 마구 달려 금화 찍고 만리재를 넘으니 한강이 눈앞. 도화동 뒷산 용산에서 목을 늘여 목을 축였으나 해는 떨어졌다.'

건국초기, 한양천도를 둘러싸고 무학대사와 하륜, 정도전이 격론을 벌일 때 참설에 능한 하륜이 내세웠던 논리였다. 무악을 진산으로 서면(西面)하여 도읍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도성 한복판 양화진 나루에 조운선이 닿으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것이다. 실용성과 경제성이 도드라졌다. 허나, 유사시 적 함선이 양화진에 정박하고 왕궁에 포격을 가해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안보를 간과한 계획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왕을 진산으로 동면(東面)하여 동해에서 발호하는 왜구를 잠재우자고 주장한 무학대사의 복안은 어땠을까? 왕궁을 동면하지 않으면 동해를 건너오는 왜적 때문에 왕조가 2백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이성계를 겁박했으나 무악을 진산으로 하자는 하륜과 인왕을 주장했던 무학대사의 논거는 배척되었고 정도전의 백악 주산론이 채택되었다.

참설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惑世誣民)고 폄하했던 정도전 역시 여의주를 내려놓았다는 백악을 택한 것을 보면 참설과 성리학은 일맥상통한 면이 있나보다.

"잘 있거라 삼각산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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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동 무계정사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이라는 글씨. 안평대군의 글씨로 추정된다. ⓒ 이정근

삼각산. 그 품속에 자리 잡은 무계정사. 사나이 가슴에 품은 뜻을 실현하기 위해 자리 잡은 터. 백악의 산세가 인왕으로 넘어가는 목줄기에 자리 잡은 사(舍). 모두가 황룡(黃龍)이 일어설 곳이라고 기대했던 명당. 도성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 창의문만 벗어나면 인왕산 아래 계류가 흐르던 그곳에 무계정사가 있었다.

6년 전 어느 여름날.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던 안평은 스르르 눈이 감겼다. 내(川)를 따라 하염없이 가다가 길을 잃었다. 불안한 마음도 잠시, 흐드러진 복사꽃 숲을 만나게 되었다. 냇물 양편 기슭 수백 보는 복숭아나무 이외에는 잡나무가 일체 없고 향기로운 꽃잎들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꽃 눈(花雪)이다.

안평은 꽃눈을 맞으며 복사꽃 숲이 끝나는 곳까지 가보았다. 그곳에는 물이 흐르고 산 하나가 나타났다. 그 산에는 조그마한 굴이 있는데 그 뒤에서 빛이 비치고 있었다. 안평이 굴을 따라 들어가는데 처음은 아주 비좁아서 사람이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였는데 수십 보를 가니 길이 넓어지며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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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안견의 작품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일본 천리대가 소장하고 있다. ⓒ 이정근


낮잠에서 깨어난 안평은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황홀했다. 여운이 가시기전에 그림으로 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안평이 종자를 시켜 안견을 불렀다. 득달같이 달려온 안견이 안평의 이야기를 듣고 붓을 잡았다. 비단 화폭을 잠시 응시하던 안견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들린 듯한 그의 붓질은 거침이 없었다. 붓이 지나가면 산이 되고 내가 되었다. 붓이 멈추면 바위가 되고 점을 찍으면 꽃이 되었다. 특히 산 아래에서 빛이 들어와 화면 전체를 흐르는 듯한 조광은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절윤이었으며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부감법(俯瞰法)의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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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안평대군이 쓴 몽유도원도 발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 이정근


그림이 완성되었다. '무릉도원도'이라 명명한 안평이 발문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이다. 박팽년, 최항, 신숙주가 찬시를 썼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붓을 잡았다. 무려 스물한 명이다.

'무릉도원도'에 대 만족한 안평은 도화원 종6품 선화(善畵)에 있던 안견을 정4품 호군에 밀어 올렸다. 궁중화원의 품계는 종6품이 상한치라는 규정을 깬 파격이었다. 이것이 안평 자신의 발등을 찍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안견 정4품 승차 후, '안평이 국정을 농단한다', '안평대군 뒷배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나랏일 잘하면 뭐하냐? 안평대군에게 잘해야지', '승차하려면 안평대군에게 먼저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등등 갖은 억측이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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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정사 안평대군이 시인묵객을 초치해 풍류를 즐기고 무사들을 훈련시키던 곳. 당시 건물은 계유정난 후 헐렸으며 현재의 건물은 훗날 세워진 건물이다. 쇠락한 모습이 안평대군을 떠올리게 한다. 자하문고개 너머에 있다. ⓒ 이정근


수양 역시 유쾌하지 않았다. '길이 넓어지며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는 몽유도원도를 곱게 보지 않았다. 뭔가 야심이 있고 그것을 드러낸 게 '몽유도원도'라는 것이다. 찬시를 쓴 이십여 명의 선비들 역시, 요주의 인물로 집중 관찰하기 시작했다.

안견을 불러들여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고 시인묵객을 초대하여 풍류를 즐기는 것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고 믿었던 무계정사. 하지만 한명회가 심어놓은 세작이 동구에 토굴을 짓고 드나드는 무사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뼈아픈 실책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수양대군 #안평대군 #무릉도원도 #무계정사 #잠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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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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