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타기의 달인' 한나라당...내가 너무 순진했다

등록금넷 대학생 활동가가 지켜본 '반값등록금 1인시위 100일'... 다시 시작입니다

등록 2011.08.29 20:47수정 2011.08.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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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넷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예산 편성과 관련 입법 추진을 촉구하며 100만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등록금넷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대학생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예산 편성과 관련 입법 추진을 촉구하며 100만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형섭씨, 등록금 관련해서 일 해볼 생각 없어?"

 

졸업반 취업준비생의 초조함에 맘껏 쪼그라들고 있던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뜻밖이었다. 봄이 지나 여름의 모양새를 갖추려던 즈음이었다. 유쾌한 강의로 기억에 남았던 안진걸 선생님께서 내게 '등록금넷'에서 일하길 권했다. 그 때는 등록금넷이 뭔지도 몰랐기에 우선은 얼버무리고 고민에 들어갔다.

 

처음엔 당장 내년이면 졸업인데 토익은? 한국어시험은? 지금 이 일을 한다면 취업관련 공부는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더 컸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입생 시절의 패기는 엿 바꿔 먹은 지 오래였다.

 

그날 저녁 학생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엔 경찰에 끌러가며 절규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눈에 불꽃이 튀었다. 부모님께 의존했지만, 나 또한 등록금 부담을 덜어보고자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남아 공부하며 장학금에 매달렸다. 나는 운 좋게 장학금을 얻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알바자리로 뿔뿔이 흩어지기 바빴다. 그들이 방과 후 여가는 물론이고 공부할 시간까지 알바에 저당잡혀버린 이유는 등록금 때문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광장에 모여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하던 학생들을 경찰은 강제로 연행해 버린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는 분노가 내 살길 걱정보다 앞섰다. 등록금 관련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에서 들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당장 실무에 투입되기는 어려웠다. 논평 작성도 어설펐고, 점점 크게 이슈화되는 등록금 문제 때문에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내가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초짜'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등록금넷 활동가들의 활동이 원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일, 쉽게 말해 '단순작업'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반값등록금 릴레이 1인 시위가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업무가 많은 간사들에겐 1인 시위 피켓을 매일매일 바뀌는 시위자에게 전해주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맡기로 했다.

 

1인 시위자와 얘기만 나눠도 '집시법 위반'이라고요?

 

피켓을 전해주고 받아오고, 뭐 어려울 것 있나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 예상은 빗나가야 제 맛, 생각도 못한 문제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가장 먼저 날 놀라게 한 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이었다. 집시법을 고쳐야 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 정도 수준일 줄은 몰랐다. 한낮 뙤약볕에 혼자 서 있는 1인 시위 참가자가 안쓰러워 물과 함께 말을 건넸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가 그렇듯 데면데면하고 그리 길게 이어지지도 못했다. 그 장면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던 정복경찰 아저씨는 나에게 다가와 짧게 말했다.

 

"물러서십시오."

"예? 왜요?"

"두 분이 서 계시면 집시법 위반입니다."

"아저씨, 저는 그냥 얘기만 하는 거예요, 제가 여길 보라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나요, 아니면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나요, 뭐가 시위라는 거죠?"

"그래도 두 분이 서 계시면 위반입니다."

"글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어떤 행동이 시위인지 말씀해 보시라니까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지루한 말싸움 끝에 경찰 아저씨가 물러섰다. 나도 어지간하면 들어주겠지만, 옆에서 대화 나눈다고 시위라니 이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 그래도 잡아가면 어쩌나 하는 소심함이 잠시 후 다시 날 시위자로부터 몇 발짝 떨어뜨려 놓기는 했다. 그 후로도 다른 몇 명의 정복경찰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정말 피곤했다. 요즘엔 나도 할 일이 많아져 1인 시위 참가자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지만, 다시 한가해지면 어찌될지 모르겠다.

 

짜증나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광화문 광장을 순찰하는 정복 입은 경찰아저씨 빼고는 거의 모든 시민들이 우리를 응원해줬다.(가끔 선글라스를 쓰고 오신 할아버지들의 거센 반발도 있었다) 그 중 '화이팅'을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넥타이 부대들이 정말 고마웠다. 얼마 전까지 자신들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덕였을 젊은 회사원도, 앞으로 자식들이 곧 대학에 들어갈 486 회사원도 1인 시위 피켓을 보며 응원을 보냈다.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건네던 분들도 있었다.

 

더위에 지쳐 말라가던 낮 12시, 아이스티 하나가 그처럼 고마운 적도 없었다. 그뿐 아니다. 1인 시위자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던 수많은 시민들도 익명의 대중 앞에 외롭게 나선 1인 시위자를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매일 시민들과 호응하며 커져가는 이슈를 체감할 수 있었다.

 

'반값등록금 1인 시위' 100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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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6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실업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날리리 선배부대 연예인들의 1인 시위 참여도 반값등록금을 이슈화 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 순간 사진으로 남는 이미지가 자신의 직업적 안정을 해할 수도 있는 연예인이기에 개인 견해의 표현이라도 많은 고민이 따랐를 것이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반값등록금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그 용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친근한 그들의 이미지를 통해 등록금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1인 시위 사진이 인터넷에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리플을 달았다. 많은 누리꾼들이 '개념연예인'이라며 응원을 보냈다. 6월 10일 촛불집회엔 5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난 이제 반값등록금이 다 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값등록금이 정국의 핵심 이슈가 되자 수구언론에선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반격 카드를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이런 저런 조건을 붙여가며 반값등록금에 물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립대학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수구진영의 교묘한 공세가 이어지자 여론도 차츰 그 '조건'들을 수긍하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떠내려가는 반값등록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간은 이미 방학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반값등록금의 가장 중요한 여론주도층인 학생들이 학교에서 멀어지면 그 목소리가 잠잠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26일 반값등록금 1인 시위 중인 황혜현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 이형섭

26일 반값등록금 1인 시위 중인 황혜현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 ⓒ 이형섭

예상대로 7월이 되자 반값등록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갔다. 더불어 1인 시위도 예전과 같이 사람들의 응원을 받지 못했다. 장맛비 속에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길을 보며 1인 시위자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8월까지 이어졌다.

 

반전의 계기가 있었으면 싶었지만, 뉴스는 매일 새로운 이슈를 끌어올렸고, 안타깝게도 등록금 문제는 단신으로 처리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1인 시위는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90여 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8월 30일은 반값등록금 1인 시위를 이어온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100일을 맞이해 더욱 많은 시민들이 호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김새면 곤란하니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다)

 

1학기 동안 반값등록금 이슈가 사회를 뜨겁게 달궜지만, 500만 원 가까운 2학기 등록금이 학생들에게 다시 고지되고 있다. 반값등록금은 현재진행형이다.

 

1인 시위 피켓에는 '반값등록금 될 때까지 1인 시위'라고 적혀 있다. 그래도 난 가급적이면 이 1인 시위가 이른 시일 내에 끝났으면 좋겠다. 1인 시위가 끝나면 크게는 학생과 학부모를 짓누르는 이 '미친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고, 작게는 나와 1인 시위 참가자들이 더 이상 광화문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자동차 매연을 안 마셔도 되기 때문이다.

 

그날을 학수고대 하지만, 일단은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가야겠다. 오늘도 1인 시위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이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 광화문 광장을 지난다면, 반값등록금 피켓을 든 1인 시위자에게 가벼운 눈인사라도 건네주시길 바란다. 늦여름 더위에 시들어가는 나와 1인 시위 참가자가 빵끗 웃는 얼굴로 맞이할 것이다. 반값등록금이 될 때까지.

덧붙이는 글 이형섭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반값등록금 #일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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