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님, 당신이 집값 올린 여기서 살아보세요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가 화가 나는 이유

등록 2011.08.26 11:36수정 2011.08.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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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 오픈하우스

작가 공지영이 신문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더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오픈하우스 펴냄, 2010년 10월)는 도시에서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숨구멍 같은 책이다.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여사, 최도사 등 섬진강과 지리산을 벗하며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일기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예금통장 없이 "한잔 커피와 갑 속에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꿈꾸는 삶이지만, 모두가 꿈으로만 끝나는 삶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어도 감히 용기를 내어 살 수가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과연 행복이란 뭘까?

<지리산 행복학교>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과연 행복할까? 책을 쓴 공지영도 마찬가지겠지만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 등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글을 쓰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고통, 힘듦 등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행복학교'라는 수식어를 달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온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도 전혀 없다.

공지영은 제대로 관찰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신문 연재를 하기 위해 찾은 지리산은 언제나 행복할 때만 온 것이다. 아니 행복한 모습만 보러 온 것이다. 지리산 사람들도 일을 해야 하고, 땀을 흘려야 하며,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은 늘어가고, 결국은 야반도주를 하기도 한다. 고통이나 고난 역시 삶의 과정일진대, 어떻게 아픔 없이 기쁨만을 누릴 수 있을까.

지리산은 결코 행복학교가 아니다. 지리산에도 폭우는 내렸고, 엄청난 비와 산사태로 길이 쓸려 내려갔다. 귀농 1번지로 손꼽히는 악양은 비싼 땅값으로 인해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 때문에 전혀 비쌀 이유가 없는 지역이 부동산 투기꾼들이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작가는 섬진강 유역에 러브호텔을 허가해 주지 않은 관에 고맙다고 했다. 펜션이 계곡마다 들어서고, 산허리를 잘라 집을 짓는 풍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나는 <지리산 행복학교>의 주요 무대가 되는 악양에서 나고 자랐다. 잠시 도시에서 살았지만 결혼을 해서 다시 고향집을 수리하여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은 더러는 세상을 떠났다. 일부는 아예 이사를 갔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팔순 노인들이 되었지만 아침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함께 드시곤 한다.

그러나 지리산이 좋다고, 악양이 좋다고 새롭게 터를 잡은 사람들은 함께 동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놀이가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다툼이 생긴다. 바로 이곳도 '사람 사는 세상'인 것이다.

MBC 다큐멘터리 <지리산에서 행복을 배우다>. ⓒ iMBC

지리산, 특히 <지리산 행복학교>의 주요 배경이 된 하동군 악양면은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원래 이곳은 귀농이나 귀촌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리산 행복학교>는 잘 타는 장작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고나 할까. 책 출간 이후 MBC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영향도 어머어마했다.

우선 이곳에 땅을 사거나 혹은 집을 보러 오는 도시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연세(年貰) 50만 원으로 집을 구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현실은 어느 곳이나 비참하다. 다른 어떤 이는 임대한 집에서 5개월을 살고 쫓겨났다. 또 어떤 이는 급하게 방을 구하는 사람에게 화장실도 없는 집을 월세로 20만 원을 달라고 한다. 곧 집을 지을 예정인 그 부부는 약간 비싸지만 몇 달만 살 것이기에 조금 더 세가 비싼 집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곳에도 집 없는 사람은 있다. 날마다 돈을 벌기 위해 인력 사무소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으며, 수억 대의 빚 때문에 이자 날짜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햇살 좋은 봄날에 화전을 부쳐 먹는 것보다 감자 심을 밭을 걱정하는 농부가 있다.

왜 작가는 한쪽만을 이야기 했을까? 햇살 따뜻한 양지가 있으면 추위에 떨며 지내야 하는 음지도 있다.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만을 듣고 악양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양지만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꿈을 꾼다. 나도 저곳으로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꿈일 뿐이다. 꿈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 보자. 지금 그곳, 바로 그 자리가 가장 행복한 곳일 테니.
#지리산 #공지영 #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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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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