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수 출렁이고 그동안 못다 한 무림의 저자 거리 사정들을 캐보도록 할까 한다.
꽃 피네
내 검은 청산을 울리는 마검이요
그대의 검은 냇가에 반짝이는 보검이로다
흐르는 물이야 멈출 리 없고
청산의 맑은 기운이야 거칠 게 없으니
우리네 녹수청산에 빛을 발하는
마검과 보검의 따뜻하고 포근한 가름으로
하늘이 요동하고, 땅이 춤을 추는구나
강호 모래바람만 부는 언덕에
세상의 모진 살점 집어 들고
아랫목 아늑함 던져든 바위 같은 수발秀拔
섬세한 에메랄드빛 순결지청도
단호한 금빛의 청룡언월도
들끓는 욕망의 그늘 쩐두밀월도
은은히 빛을 발하는 은빛 은진보전도
구릿빛 마른 몸매 끓는도다 경기건천도
둥당당 둥당당 둥기둥당이 둥당당
둥당이지야 둥당이지야 둥기둥당이 둥당당
우리네 삶이 낳자마자 북망일진데
어이하여 벼린 보검은 각을 세워 나서는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책사는 물론 제갈량이라 알고 있다. 물론 정사에서는 제갈량의 책술은 장량에 이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항우의 책사였던 범증보검도, 한 고조의 책사 방통축절창이나 괴통후진기권이나 후공방침사도 모두 제갈량이나 장량에 못지않은 걸출한 책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다들 책략에 실패했거나 주군들에게 버림받은 책사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명을 다하고도 중달 사마의를 물리친 공명의 일화는 물론 예외다.
허나 세상에는 책사들 중에도 예외라 일컫는 제갈량 못지않은 책사들도 많았으니 한 왕 유방을 만든 장량대부와 육가통손. 조선조 세조의 머리를 껴안고 천하를 누리고도 연이어 세 명의 왕을 좌지우지한 불세출의 요염한 장자방 조선의 명회술책랑(한명회)도 있다.
장부가 세상에 나서 바야흐로 '세상을 돌리는 강호 무림의 검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세상과 밀착하여 조우하는 이들을 도와 한 세상 고락을 같이함도 뜻있는 길임은 강호가 인정하는 일, 도력과 경륜을 꾸준히 쌓아 나 자신을 인내해가며 내공을 길러 뜻을 함께하는 맹주들과 교우하는 이들의 노력이 어찌 가당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옛 고수들이 전하는 무림비기인 '전선출공법'에도 '대장부 한번 강호 무림에 나와 뜻을 가지고 도력을 다하라. 한 평생 노력하다 뜻을 알아주는 진실한 맹주가 나타나면 그를 위해 헌헌장부 하라. 그러나 장부의 큰 뜻을 알아주는 이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은둔거사로 칩거하며 살다 죽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옛적 무림의 고수인 강호맹주들은 자신들의 도력에 빛을 입혀줄 지혜로운 장자방을 찾아 삼고초려도 마다치 않았건만, 작금의 도방 맹주들은 우선 스스로가 잘 난 것에 근자감이 꽂혀 조력자들의 충언 따위는 잘 들으려하지 않는다. 들을 수 있는 귀청보살을 끼고 살기는커녕 오히려 동거 무림의 학벌이나 캐캐묵은 혈연 등 아직도 공력의 완성도보다는 정실 인사나 충성도 위주의 엽관에 의지함이 지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작금의 맹주들 주위에는 준비된 책사를 보기 어렵고 교언영색 하는 자나 바른 입 하나로 삼족이 멸해진다는 이유로 '침묵은 금이다'식으로 묵언하던 시절대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 방관자적 인물들만 맹주들 주위를 감싸고도는 결과를 낳는다.
대한민주무림대국의 지난날 도방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소위 강호의 잣대로 인정하던 그 모든 맹주들의 곁에 과연 몇이나 진실한 책사들이 있었던가. 비록 지나가는 걸인일지언정 바른 말하는 자가 있으면 경청하고, 또 그를 주위에 두고 지속적으로 국가의 대세를 의논한 맹주들이 민중과 국가의 백년지계를 논하던 시절이 그립다.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던 몽골세계방(징키즈칸)이나 청년지대계(알렉산더), 불란서 화장실의 하급관리 출신 불쇼이천하랑(나폴레옹), 한나라를 일으킨 패현의 건달 하초단단공(유방), 조선의 수양버들 대군만세공(세조), 니뽄훈또시빤쓰국의 지략막부 원숭이팽 덕천낭인총(덕천가강) 같은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그 무림의 맹주들은 모두 타인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았고, 또 그것이 옳은 말이라면 바로 실천에 옮겼다는데 있지 않은가.
작금의 우리 무림의 맹주들이 대한민주무림대국의 황제로 등극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우선 백성이 하늘이라는 기본적인 무림인의 자세확립과, 강호를 호령할 준비와 경륜을 위하여 항상 읽고 생각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특히 고전에서 얻어오는 상상력과 비전은 민중과 더불어 가는 강호를 만드는 맹주들 삶의 원천이요,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의 구석구석을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는 맑은 청사진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꿔린민국 제나라의 '환공'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역사상 최고의 재상 이었다' 일컫는 '관중'이 있어, 역사에 기록되는 황제의 바른 정치가 가능했다. 삼황오제 이후 요와 순의 태평시대는, 사기 이전 발달한 사회상이 그 근원이었음이 요즘 들어 와 새삼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같은 혼란한 무림의 세계에서 화합형 재상보다는 분란형 재상들이 더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민중의 지지 속에 성장한 이들도 어느새 권력을 가지면 또 다른 의미의 기득권자가 되어 버리는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관중'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열린 사고로 유연하게 타인들을 바라보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던 우리네 참된 영웅적 맹주들이 그리워진다. 공맹과 지략천하 다산천재뇌랑(정약용)은 '군자의 도리는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편안한 삶으로 이끄는 것이요.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라 하였다.
물길뱃길 강호십사략(요)임금이 백성들의 사는 형편이 궁금하여 잠행을 나와 촌로에게 물은 즉, '해 뜨면 들에 나가고 해지면 들어와 쉬네 / 우물 파 물 마시고 농사 지어 밥 먹네 / 임금 따위가 뭐이 그리 부러워.(격앙가)' 하고 노래하니, 임금이 웃으며 궁궐로 돌아왔다 하지 않는가. 민중의 삶이란 그저 편안한 것이 최고인 것. '무림황제비무대회'에 진출하려는 맹주들은 경청해야 할 지혜의 보고 앞에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쏟아지는 두 달 간의 폭우가 생성한 참담한 현실을 견디고 뒷동산에 올라 후두둑후두둑 머리로 떨어지는 별비를 맞으며 잠시 세상사 시름을 잊으려는 백성들이 정녕코 묻고 싶은 물음 하나. 찬란한 욕망의 전차가 만들어 낸 진수성찬이 아닌 소박한 어머니 두레밥상을 나에게 차려다오. 덧붙이는 글 | *한동안 절 짓는 곳에 공양을 갔다가 다쳐 보름을 누위있었지요.
*집에 돌아오니 다시 아버님의 환우, 일주일 후 퇴원시키고는 산에 갓어요.
*북한산, 치악산, 지리산을 돌다 어제 와보니. 밀린 숙제가 한 말.
*생각도 많이 했고, 비록 밥자리가 없어 경제도 불편하고, 읽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어쨌든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100여회 쓰려했던 것 계속 가렵니다. 고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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