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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흔들어야... 원래 보수가 복지국가 만들어"

[e사람] '왕의남자'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인터뷰 ①

등록 2011.09.06 12:19수정 2011.09.0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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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말>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 ⓒ 남소연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자료사진) ⓒ 남소연

 

"어차피 잘됐어. 우리 사회에서 한 번은 세게 붙어야 할 논쟁이야. 판을 흔들어야지."

 

예상대로였다. 그의 말은 거리낌이 없었다. 표현도 에둘러 가는 법이 거의 없었다. 답하기 곤란하면, 그냥 웃곤 했다. 곽승준(51)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다.  곽 위원장은  2008년 1월 만났을 때도 그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분과 위원이던 그는, 기자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민감한 경제현안을 불쑥 들고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에선 '너무 나선다'거나 '의욕이 앞선다'는 말까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현 정부 출범하자, 최연소 국정기획수석에 올랐다.

 

부동산 정책부터 공기업민영화, 사교육비 줄이기, 통신비 인하,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최근엔 아랍에메레이트(UAE) 유전개발 사업 등까지 굵직한 경제, 사회 현안에 항상 그가 있었다. '너무 나선다'는 지적을 의식이라도 하듯, 그는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복잡한 사안을 융합해서 현실화 한다"고 말했다.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그와 지난 달 31일 서울 광화문 미래기획위원회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6시를 훌쩍 넘었다. 2시간의 시간이 짧았던지, 쉬는 주말에도 기자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소 애꿎은 개인 질문이나 부담스러운 내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답했다.

 

곽 위원장과의 이야기 상당 부분은 '복지' 문제였다. 그는 "언젠가 한 번은 세게 붙어야 할 논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을 두고는 "쓸데없는 이야기", "그런 것을 두고 싸우는 모습이 우습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세게 붙어야 할 논쟁... 복지 원조는 원래 보수"

 

- 지난번 서울시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에 참여하셨나.

"(웃으면서)......"

 

- 당연히 정부에 계신 분이니, 투표를 하셨을 텐데 어떻게 보셨는지.

"이게 참, 안타까웠다. 소통하고, 대화로 타협했으면 투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인데. 복지가 이념이나 정쟁 대상이 안됐으면 한다."

 

기자가 "이미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라고 답하자, 그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나름대로 이번 투표에 대한 의미를 찾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들이 어쨌든 복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도록 한 것은 플러스지. 이제 논쟁의 시작이라고 봐요. 어차피 우리 자본주의가 진화하는데, 언젠가 세게 한 번은 붙어야 할 논쟁이니까..."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남소연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남소연

-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올해 내년까지 복지 문제가 큰 이슈가 될 텐데.

"양극화와 복지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어떤 비전을 내놓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원래 서구에서도 보면 복지의 원조는 보수였다."

 

- 영국이나 독일 등도 보면 보수쪽에서 집권할 때 복지가 크게 확충되긴 했다.

"맞다. 과거 영국 보수당 시절 교육과 의료 등의 복지정책이 나오기 시작했고, 독일은 철권통치자로 알려진 비스마르크 시절에 복지가 크게 확충됐다. 사회공동체를 잘 유지해주는 것이 복지이며, 무조건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위원장은 그동안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함께 해야 한다고 했는데.

"(끄덕이며) 그 두 가지를 두고 싸우는 것이 우습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저소득층뿐 아니라 고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보편적(복지)으로 가야한다. 반값아파트는 선택적(복지)으로 가야 하지 않나. 집 있는 사람한테까지 반값으로 줄 수는 없지 않나."

 

- 반값등록금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의 대학 등록금은 일반 가정에선 낼 수가 없는 돈이다. 거의 매달 100만원씩을 저축해야 하는데, 연봉 1억을 받는 회사원도 쉽지 않은 구조다.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반값등록금, 어떻게 든 정부에서 해줘야... 현재 등록금은 낼 수 없는 구조"

 

- 그렇다면 교육은 보편적 복지로 해야 하나.

"교육은 좀 애매하다. 물론 의무교육은 보편적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학등록금은 정부 재정지원과 함께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10년 후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인구가 훨씬 줄어든다. 학교 갈 아이들이 없는데, 학교만 있을 수 없지 않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 위원장의 선택적-보편적 복지의 조합 주장과 현 정부의 기조와 온도차가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정부나 여당 안에서도 정리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쪽에선 재정이 중요하다고 하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서로 노선투쟁을 벌이고 있다.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라 재정으로 국민 생활에 밀접한 부분에 대해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거와 교육, 보육, 의료, 실업, 재취업, 노후 등 7가지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지고, 재정을 투입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 7가지 모두 나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인데.

"다른 서구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 우리는 여유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사회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시장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그래도 어려우면 (정부가) 먹여 살려야 한다."

 

- 정부는 국가 부채를 관리한다면서, 균형재정을 말하고 있다.

"(곧장) 안타까운 것이 균형재정, 좋다고 본다. 그러면서 또 세금 감면을 말한다. 서민과 양극화 해소를 정책을 펼친다고도 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감세를 하게 되면, 세 수입이 줄어든다. 균형 재정을 한다고 했으니, 재정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서민을 보살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느새 곽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했다. 곽 위원장은 "현재의 감세논쟁은 2013년 이후에나 적용되는 문제들"이라며 "그때 가면, 나를 포함해서 지금 장관들도 그 자리에 없을 사람인데, 좀 쓸데없는 논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감세와 균형재정, 서로 안 맞지 않나?... 시장탈락자는 정부가 먹여 살려야"

 

그러면서 그는 "현재의 감세기조를 유지하더라도, 향후 감세와 관련한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균형재정에서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해서라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의 일관성을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야기는 기업 문제로 이어졌다. 마침 인터뷰 당일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총수들의 간담회도 있었다. 그는 올해 초 국민연금을 통한 주주권 강화를 외쳤다. 그러자, 대기업쪽에서 "연금 사회주의"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 오늘 대통령과 재계총수들이 또 만났다. 요즘 기업들의 책임을 부쩍 강조하신 것 같은데.

"이것을 무슨 '재벌때리기네, 기업 옥죄기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 기업을 보라. 자신들 이익만 추구해선 살아남질 못한다.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인가.

"(끄덕이며) 나도 그렇고, 당신도 매달 연금에 돈 내지 않는가. 국민연금은 공익성 펀드다. 이런 펀드를 통해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 투명성과 견제와 감시를 통해서... 펀드자본주의로 민간 기업에 활력을 넣자는 것이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남소연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남소연

- 기업들도 처음엔 경영권 침해 등 반발하더니, 이건희 회장이 "환영한다"는 말한마디에 잠잠하더라.

"(웃으면서) 그러게 말이다. 기업들이 좀 귀찮아져야 한다. 회사에 시어머니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경영권 분쟁있었던 신한은행에서 1대주주가 국민연금이다. 2대주주가 일본계인데, (신한)이사회가 일본 주주들만 보고, 국민연금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KB국민은행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년 3월이면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주주권 행사를 할 것"이라며, 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에 사외이사 파견 등 대대적인 변화를 암시하기도 했다.

 

- 정부가 주도하는 대-중소기업의 상생이나 공생발전 등이 시기적으로 좀 늦은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좀더 빨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전보다 사회가 이런 분위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서 다행이다. 이젠 더이상 과거의 싼 노동력 투입 중심이나, 정부 주도 투자에서 벗어날 때다. 기업혁신 주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고, 산업생태계를 새롭게 짜야 한다."

 

그는 스마트시대의 애플 아이폰과 구글, 페이스북 등의 예를 들어가면서, "더이상 기업간의 경쟁이 아니라, 애플과 실리콘밸리 생태계 등과의 경쟁"이라고 말했다. 협력적 경쟁을 통해 산업 생태계 구성원 능력과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곽 위원장은 아이폰과 갤럭시S 등 스마트폰 2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유자재로 다룬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서 대학신문 주간교수를 최장수로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과 노래방에 같이 가서 랩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면서 "그때 학생들이 나를 보고 '쿨(Cool) 보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인터뷰 말미에 미래기획위원장인 그에게 한국사회의 미래를 물었다. 그는 3가지 키워드를 내밀었다. '개방'과 '소통', 그리고 '통합'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곽 위원장은 "양극화가 해소되고, 중산층이 튼튼한 복지국가"라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복지 논쟁'은 이제 제대로 불이 붙었다.  '왕의남자' 곽승준이 그리는 복지국가는 과연 현실이 될까.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다.

#곽승준 #복지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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