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보경스님이 책에서 생전에 자실인의(慈室忍衣)를 즐겨 쓰셨다는 석주 큰스님께서는 글을 쓰고 나면 낙관까지 꼼꼼히 찍어 주셨습니다.
임윤수
디지털 시대입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휴대전화기의 기능에 의존해 사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도 많지만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횡횡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천리 밖 소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보여주고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요즘의 디지털 세상이지만 정작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펼쳐들면 더 큰 경외감에 젖어듭니다.
대부분의 경전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의 경전은 대부분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됩니다. 아난의 기억,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해석되는 이 '여시아문'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경전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배우고 들었던 것을 기억으로 꺼내놓고, 논의와 검증으로 확립해 정리 된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5백 명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외웠던 말씀을 이야기하고,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논의하여 부처님의 말씀으로 편집한 것이 경전입니다.
숫자 몇 개의 조합인 전화번호조차 깜빡거리는 시대에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경전 대부분이 기억을 바탕으로 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 경이로움이 저절로 경외심에 젖게 합니다.
불어(佛語), '부처님이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42장경> 대부분의 경전들이 이렇듯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42장경>,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 주지이며 (사)생명실천나눔본부 이사인 보경 스님의 글을 <조계종출판사>에서 펴낸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는 여느 경전들처럼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불어(佛語),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2장경>은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2∼3세기에 처음 선을 보인 경전으로 경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말씀 42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주제를 놓고 길게 설한 내용이 아니라 짤막한 그때그때의 단편적 이야기를 모아놓은 단편집 같은 구성입니다.
유교, 도교, 기독교의 가르침 까지 수용한 깊은 해설'억불정책'이나 '숭유배불' 이라는 용어가 발현할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부처님의 경을 설명하는데 공자나, 노자, 장자 등의 가르침이나 말씀이 직접 거론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의 저자인 보경 스님은 유가의 공자, 도가의 노자와 장자는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까지도 도입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