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의 석양일리노이와 아이오와 경계의 미시시피 강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호수처럼 잔잔한 물빛을 가진 미시시피 강가에 해가 저물면 대지 위로 평화와 안식이 함께 내려 앉는다.
김창엽
여행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둘이서만 엿새째를 같이 지내왔는데, 한번도 서로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리 부자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다. 서로 조심하고, 또 참는 등 나름 신경을 써온 결과이다. 하지만 시종 대체로 마음을 평안하게 했던 주변의 풍광들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윤의는 일리노이 북부의 비슷비슷한 시골 풍경에 대해 조금 지루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런 풍광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빠는 참 이 곳을 유달리 좋아하시네요." "정말 기막히지 않니. 강 너머 석양이 너무 좋구나."
디트로이트에서 출발, 하루 종일을 달려 일리노이의 시골 마을, 하노버(Hanover) 인근의 강가에 도착했을 때 강 너머로막 해가 지고 있었다. 미시시피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들게 긴 강이다. 유장한 맛이 일품인데, 4000km에 육박할 정도로 강의 길이가 긴탓만은 아니다. 산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대평원 지대를 주로 통과하다 보니 급류가 형성되기 힘들다. 강과 땅은 서로를 닮게 마련인가 보다.
느릿한 강물은 급속도로 힘을 잃어가는 여명 속에서 초저녁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온 대지에 평화로운 기운이 하나 둘씩 내려 앉았다. '무얼 그리 다툴 일이 있었다고 핏대를 세웠던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갑자기 물처럼 밀려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평안을 앗아갔던 욕심이란 존재가창피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 윤의를 숨막히게 했고, 삶의 의지를 꺾어놨던 것도 똑 같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지자요수(智者樂水)라 했던가. 욕심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어리석기 때문이다.미시시피의 강물은 옆에서 소리 없이 순리를 읊조리고 있었다. 물을 좋아하는 윤의는 내가 저녁밥을 짓는 시간을 틈타,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윤의도어둠 속에 잠긴 미시시피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항상 어색하기만 한 우리 부자, 큰 강에서 만나 하나로 어울려 같이 흘러가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