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인의 눈물'...얼마나 청초하길래

터키석보다 더 아름다운 닭의장풀꽃

등록 2011.09.09 13:45수정 2011.09.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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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은 정원에 파란 장미를 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한발만 집밖으로 나가면 거기에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야생의 정원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파란색을 너무나 좋아한다. 우리나라 가을하늘처럼 청명한 파란색!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색깔이라고 시인들이 노래하는 그 색깔.


a  터키석보다 더 아름다운 닭의장풀꽃

터키석보다 더 아름다운 닭의장풀꽃 ⓒ 최오균


a  닭의장풀은 길섶 아무데서나 자라나 흔하게 피어나는 1년생 꽃이다

닭의장풀은 길섶 아무데서나 자라나 흔하게 피어나는 1년생 꽃이다 ⓒ 최오균


요즈음 야생의 정원에는 그 가을 하늘처럼 고운 색깔을 내며 피어난 꽃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닭의장풀'이라고 불리는 바로 이 꽃이다. 아침 이슬을 머금고 풀 섶에서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닭의장풀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란색을 지니고 있다.

닭의장풀꽃은 하늘색보다 더 짙고, 쪽빛보다 더 밝다. 약간 보라색이 돌며 군청색에 좀 더 가까운 색깔이라고나 할까? 닭의장풀은 파란 색깔을 내는 터키석이나, 에메랄드, 사파이어 보석보다 더 곱고 아름답다.

a  하늘색보다 더 짙고, 쪽빛보다 더 밝으며, 약간 보라색이 돌며 군청색에 좀 더 가까운 색깔을 내는 닭의장풀꽃

하늘색보다 더 짙고, 쪽빛보다 더 밝으며, 약간 보라색이 돌며 군청색에 좀 더 가까운 색깔을 내는 닭의장풀꽃 ⓒ 최오균


닭의장풀꽃은 끝이 점점 가늘어지면서 살짝 포개지는 잎사귀에서 약 2.5센티미터의 작은 두 장의 꽃잎이 우아하게 솟아난다. 그러나 이 귀여운 두 장의 꽃잎은 새벽녘에 개화를 했다가 정오쯤에 이내 시들고 만다.

닭의장풀은 닭장근처에서 잘 자라고, 꽃잎이 닭의 벼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을 "미망인의 눈물"이라고도 부른다. 아마도 그것은 두 장의 꽃잎이 미망인의 눈물방울 같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a  닭의 벼슬 같다고 하여 붙여진 닭의장풀꽃은 미망인의 눈물처럼 청초하고 곱다

닭의 벼슬 같다고 하여 붙여진 닭의장풀꽃은 미망인의 눈물처럼 청초하고 곱다 ⓒ 최오균


닭의장풀은 길섶 아무데서나 너무도 흔하게 피어나는 꽃이어서 전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러나 이곳 지리산 자락에 정착하면서부터 나는 야생의 정원에 핀 꽃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뜨게 됐다.


요즈음 야생에 핀 수없이 많은 보석들과 조우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한껏 맛보고 있다. 그것은 늦었지만 용기를 내어 도심을 벗어나 야생에 묻혀 산 나에게 신이 내려주신 축복이다. 들과 산에 피어난 야생화들은 과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들이다.

그 많은 야생화들 중에서 여름이 오면 에메랄드, 아니 그 어떤 보다 더 아름다운 닭의장풀꽃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풀 섶에서 별안간 나타나 터키석처럼 반짝이는 닭의장풀에 나는 그만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a  둥근유영초와 절묘하게 어울려 피어 있는 닭의장풀의 매력적인 자태

둥근유영초와 절묘하게 어울려 피어 있는 닭의장풀의 매력적인 자태 ⓒ 최오균


a  노란 호박꽃 위에 핀 닭의장풀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노란 호박꽃 위에 핀 닭의장풀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 최오균


닭의장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명한 남빛 두 장의 꽃잎 사이에 샛노란 수술이 여섯 개나  뻗어 있다. 화피(꽃받침)는 3장인데, 그 가운데 두 장은 색깔이 선명하고, 나머지 한 장은 작고 반투명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화피와 수술을 보트 모양의 포가 감싸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꽃의 세계인가! 두 장의 파란 꽃잎에 숨어있는 신비! 그것은 저절로 사랑하고 싶은 이의 모습이다. 나는 이 작은 꽃 안에서 신의 모습을 본다. 조물주 하느님의 모습을 본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꽃의 세계를 본다.

a  두 장의 꽃잎 사이에 6개의 수술을 3장의 꽃받침이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보트처럼 생긴 포가 수술과 꽃받침을 감싸고 있다.

두 장의 꽃잎 사이에 6개의 수술을 3장의 꽃받침이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보트처럼 생긴 포가 수술과 꽃받침을 감싸고 있다. ⓒ 최오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여, 닭의장풀의 수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닭의장풀은 꽃받침 사이로 여섯 개의 수술 중에서 아래쪽에 길게 뻗어난 두 개의 수술에만 꽃가루를 지니고 있다. 위쪽 네 개의 노란 수술은 꽃가루가 없는 헛수술이다. 푸른 나비의 더듬이처럼 아래쪽에 길게 뻗어난 두 개의 수술만이 꽃가루를 가지고 있는 진짜 수술이다. 

벌이나 나비가 닭의장풀을 찾아와 착륙을 하게 되면, 두 개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가 자연스럽게 곤충의 다리에 묻는다. 그리고 꽃가루를 묻힌 곤충들이 다른 꽃으로 날아가 앉으면 저절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a  닭의장풀꽃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벌. 벌과 나비가 앉으면 두 개의 긴 수술에 지니고 있는 꽃가루가 저절로 곤추의 다리에 묻혀져 꽃가루받이를 하게된다.

닭의장풀꽃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벌. 벌과 나비가 앉으면 두 개의 긴 수술에 지니고 있는 꽃가루가 저절로 곤추의 다리에 묻혀져 꽃가루받이를 하게된다. ⓒ 최오균


닭의장풀꽃의 경이로운 세계를 알고도 놀라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 혼탁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닭의장풀의 수명은 매우 짧다. 대개의 꽃들은 꽃가루받이를 끝내면 시들어지고 만다. 씨앗을 맺기 위해 목적을 이룬 꽃들은 더 이상 오래 살아야 할 까닭이 없어진다. 이것은 마치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그 긴 여행에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a  파란나비에 나있는 더듬이처럼 네 개의 수술 밑에 길게 뻗어있는 두 개의 수술이 진짜 꽃가루를 지니고 있다.

파란나비에 나있는 더듬이처럼 네 개의 수술 밑에 길게 뻗어있는 두 개의 수술이 진짜 꽃가루를 지니고 있다. ⓒ 최오균


그런데 닭의장풀꽃은 피어나는 순간 이미 꽃가루받이를 마친 경우가 9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다. 피어나면서부터 거의 생존의 목적을 이룬 닭의장풀 꽃은 오래 피어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일찍 시들어 버리기에 더 아름다운 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늘 아침 산책길서도 밭두렁과 논두렁에 흔하게 피어 있는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닭의장풀에 취해있다. 코끼리 귀처럼 생긴 꽃잎 아시에 쑥 내밀고 있는 수술을 들여다보며 마치 호주의 야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캥거루 같기도 하여 피씩 웃음이 나온다.  두 장의 꽃잎은 캥거루의 귀처럼 생겼고, 그 아래 꽃술은 캥거루의 배안에서 세상을 내다보고 있는 새끼 캥거루처럼 귀엽게만 보인다.

a  두 장 꽃잎 사이에 고개를 쑥 내밀고 있는 모습은 귀여운 캥거루를 연상케도한다

두 장 꽃잎 사이에 고개를 쑥 내밀고 있는 모습은 귀여운 캥거루를 연상케도한다 ⓒ 최오균


한나절도 채 피어있지 못하는 닭의장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름 꽃이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성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 정원에는 파란 장미를 필요로 하지 않다. 파란 장미는 사람의 손을 빌러 태어난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의 정원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어울리는 꽃이다.

a  너무 흔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닭의장풀은 볼수록 매력이 넘쳐흐른다.

너무 흔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닭의장풀은 볼수록 매력이 넘쳐흐른다. ⓒ 최오균


길섭 아무데나 너무 흔하게 피어 대접을 받지못한는 닭의장풀! 만약에 이 꽃이 흔하지 않고 희귀식물이라면 엄청나게 값진 예우를 받을 것임에 틀없다. 오늘 아침에도 아침이슬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웃어주는 닭의장풀꽃을 볼 수 있게 해준 자연의 신에게 나는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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