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찾아 나선 길, 극기 훈련이 돼 버렸다

해발 1209미터 영남 알프스 신불산 정상에 서다

등록 2011.09.09 16:36수정 2011.09.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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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 신불산에서 바라본 간월재입니다. 구름이 산을 넘습니다. ⓒ 황주찬

▲ 신불산 신불산에서 바라본 간월재입니다. 구름이 산을 넘습니다. ⓒ 황주찬
해발 1209미터 영남 알프스 신불산 정상에 섰습니다. 홀몸이 아닙니다. 처제가 떡애기까지 달고 왔으니 열 명입니다. 저는 막내를 등위에 올렸고 처제는 아홉 달된 예랑이를 등에 붙였습니다. 극기 훈련이 따로 없네요.

 

먼저 고백할 일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약간의 편법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산 아래에서 출발하지 않고 간월재에서 올랐습니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단련된(?) 소수 정예, 저와 두 아들과 그리고 장모님만 모시고 4시간 정도 정상적인 산행을 계획했는데 신불산 휴양림에 전화 했다가 일이 이 지경으로 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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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이곳까지는 소풍 온 느낌이었습니다. ⓒ 황주찬

▲ 산길 이곳까지는 소풍 온 느낌이었습니다. ⓒ 황주찬

휴양림 안내원 덕분에 온가족이 신불산 정상으로...

 

지난 5일 가족여행 둘째 날, 신불산 정상을 향합니다. 단, 온 가족이 갈 수는 없어 조용히 길을 나서는데 갑자기 예찬아빠가 따라 붙습니다. 아들까지 데리고 말이죠. 몇 번 말렸지만 기어이 따라옵니다.

 

마지못해 승낙 하고 등산로를 찾는데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숙소가 있는 신불산 자연휴양림에 전화했습니다. 친절한(?) 여자 분이 임시 개방된 산길을 알려주면서 가보라네요.

 

간월재까지 차로 갈 수 있답니다. 그곳에서 신불산 정상까지 40분 걸린답니다. 가족과 함께 가면 후회하지 않을 거랍니다. 한번 도전해 볼만 하다기에 용기 얻어 모두 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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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숙소 가까운 곳에 파래소 폭포가 있더군요. ⓒ 황주찬

▲ 폭포 숙소 가까운 곳에 파래소 폭포가 있더군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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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가 가을을 부릅니다. ⓒ 황주찬

▲ 간월재 억새가 가을을 부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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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준비하는 가을뱀 조심해야합니다. 산에 오를 때 신경쓰셔야죠? ⓒ 황주찬

▲ 뱀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뱀 조심해야합니다. 산에 오를 때 신경쓰셔야죠? ⓒ 황주찬

간월재엔 때 이른 가을 찾아왔고

 

임도 따라 한참을 올라 간월재에 도착했습니다. 탁 트인 억새평원이 또 다른 세상입니다. 모두 입에서 감탄사가 터집니다. 아직 때가 이르긴 한데 흔들리는 억새가 가을을 재촉합니다.

 

감흥에 젖어 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가파른 산길로 향합니다. 막내는 목말을 태웠습니다. 뒤따르는 가족이 걱정됩니다. 고개 돌려 아래를 보니 처제가 힘겹게 산을 오릅니다. 괜한 고생을 자초한 건 아닌지 후회됩니다.

 

그래도 정상까지 40분 걸린다는 말에 위안을 삼습니다. 목침 놓인 계단을 지나 돌길을 걷는데 막내가 등위에서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드네요. 더 무거워 졌습니다. 그렇게 산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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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2 정상에서 저 먼 곳을 봅니다. 시원한 산바람이 느껴지시나요? ⓒ 황주찬

▲ 신불산2 정상에서 저 먼 곳을 봅니다. 시원한 산바람이 느껴지시나요? ⓒ 황주찬

애 업고 산에 오른 처제 보니 부르르 떨리는 다리가 무색하다

 

막내를 내려놓으니 다리가 부르르 떨립니다. 그래도 숨 한번 크게 들이 마시니 이내 고통이 사라집니다. 정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산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영남 알프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물기 머금은 촉촉한 바람이 등을 핥고 저 멀리 달아납니다. 근육의 긴장을 풀고 산바람 느끼는 일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세상 시름 내려놓고 한없이 먼 곳을 바라보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시선이 머문 곳에 어른 키 훌쩍 넘는 커다란 돌탑이 보이네요. 꽤 높이 쌓은 돌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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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1 이쪽은 차곡차곡 잘 쌓여있네요. ⓒ 황주찬

▲ 돌탑1 이쪽은 차곡차곡 잘 쌓여있네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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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2 옆으로 돌아가니 이 모양입니다. 누군가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건 아니겠죠? ⓒ 황주찬

▲ 돌탑2 옆으로 돌아가니 이 모양입니다. 누군가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건 아니겠죠? ⓒ 황주찬

돌탑에 무슨 사연이 쌓인 걸까요?

 

처음엔 웬만한 산꼭대기에 있는 그만그만한 돌탑이려니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양이 특이합니다. 한쪽은 차곡차곡 잘 쌓여 있는데 반대쪽은 심하게 허물어졌네요.

 

일부러 그 모양을 낸 건 아닌 듯합니다. 돌탑에 무슨 사연이 쌓여 있는 걸까요? 아내는 바람 때문일 거라 말합니다. 그 소리에 장모님은 말도 안 된다며 누군가 일부러 허물었답니다.

 

누구 말이 맞든 보기 흉합니다. 궁금한 사연은 풀길 없고 시간은 바람 따라 흘러갑니다. 마냥 그곳에 머물고 싶으나 또 다른 길을 나서야 하기에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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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1 천년고도 경주 안압지입니다. 신비롭네요. ⓒ 황주찬

▲ 안압지1 천년고도 경주 안압지입니다. 신비롭네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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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2 어두운 곳에 걸터 앉은 길손님은 무슨 생각에 빠진 걸까요? ⓒ 황주찬

▲ 안압지2 어두운 곳에 걸터 앉은 길손님은 무슨 생각에 빠진 걸까요? ⓒ 황주찬

 

천년 이어온 나라처럼 살고자 했는데 백년도 못 넘기고

 

숙소에서 늦은 점심을 챙겨 먹습니다. 다음은 천년 고도 경주로 가야합니다. 해질녘 안압지에 닿았습니다. 평화로운 기운이 넘칩니다. 조용한 음악과 은은한 빛이 낯선 여행객을 포근히 안아줍니다.

 

마치 오래전 떠났던 고향 찾은 느낌입니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초가을 수상한 바람이 연못 위를 스칩니다. 그곳에 마술처럼 천 년 전 화려했던 궁궐이 되살아납니다.

 

옛날 이곳 신라 사람들은 흙을 드러내고 돌을 이어 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만들었습니다. 북쪽과 동쪽으로 바다건너 중국 땅 쓰촨 성에 있는 무산십이봉을 본 따 12봉우리도 만들었습니다.

 

신선이 되고자 했지요. 천년을 이어온 나라처럼 천년을 더 살고자 했습니다. 그 사람들 노력도 허망하게 백년을 못 넘기고 사라졌습니다. 다만 그때 함께 했던 풀과 나무가 아직도 살아 낯선 길손님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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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3 연못속에 천년의 신비가 있습니다. ⓒ 황주찬

▲ 안압지3 연못속에 천년의 신비가 있습니다. ⓒ 황주찬

#신불산 #간월재 #안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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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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