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벼랑길, 발끝이 짜릿짜릿합니다

비렁길,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단한 '삶의 길'

등록 2011.09.19 18:08수정 2011.09.19 18:08
0
원고료로 응원
a 미역널방2 미역널방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아래 물속에서 딴 미역을 이곳에서 말렸을까요?

미역널방2 미역널방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저 아래 물속에서 딴 미역을 이곳에서 말렸을까요? ⓒ 황주찬


a 비렁길 비렁길을 걷습니다.

비렁길 비렁길을 걷습니다. ⓒ 황주찬


지난 17일 오전 11시, 여수시 남면 금오도 함구미 선착장에 배가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고깃배에서 방금 걷어 올린 생선들처럼 팔딱팔딱, 일행들을 찾는 움직임이 바쁩니다.

대통령이 여름에 가볼 만한 곳으로 전국에 몇 곳을 추천했는데 금오도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덕에 '비렁길' 걷겠다고 많이들 모여듭니다. 조용하던 섬이 길손님 발길로 떠들 썩 합니다.


'비렁'은 절벽의 순우리말 '벼랑'의 여수 사투리입니다. '비렁길'은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땔감과 낚시를 위해 걷던 고단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산길과 절벽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데 길이는 8.5km로 이십 리가 조금 넘습니다.

a 미역널방 깍아지른 절벽이 아찔합니다.

미역널방 깍아지른 절벽이 아찔합니다. ⓒ 황주찬


a 바람을 이기는 법 바람 이겨보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지요.

바람을 이기는 법 바람 이겨보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지요. ⓒ 황주찬


100미터 족히 넘는 해안단구, 남해안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절경

시가 옛길을 사람들 걷기 쉽게 다듬어 관광코스로 만들었습니다. 길은 함구미라는 작은 어촌마을 뒤 산길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바다를 끼고 돌며 두포를 지나 직포까지 이어지는데 걸어서 4시간 쯤 걸립니다.

걸어보니 산에 오르는 일과 전혀 다르군요. 바람 맞으며 탁 트인 바다를 걸으니 마음도 시원하게 열립니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 곳이 없어 더 좋습니다. 경사도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숲과 바다 그리고 해안절벽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찾은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특히, 높이 100m가 족히 넘는 해안단구는 남해안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절경을 선사합니다.


a 신선대 바로 밑은 낭떠러지입니다. 금슬좋은 부부만이 이곳에 설 수 있습니다.

신선대 바로 밑은 낭떠러지입니다. 금슬좋은 부부만이 이곳에 설 수 있습니다. ⓒ 황주찬


a 나무에 걸린 글 나무에 걸린 글입니다.

나무에 걸린 글 나무에 걸린 글입니다. ⓒ 황주찬


"옥빛바다 파도울음에 취하지 않는 나는 바보"

조금 경사진 산길과 울창한 숲을 지나니 신선대가 나옵니다. 바위 끝에 섰습니다.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그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절벽입니다. 발끝이 짜릿짜릿합니다.


금슬 좋은 부부만 이곳에 설 수 있겠네요. 옆에 '추락주의'라고 쓰여 있는 나무 팻말이 쓰러져 있는데 그 모습이 더 무섭습니다. 한참을 경치에 취해 걷고 있는데 나무에 걸린 글이 재밌습니다.

"옥빛바다 파도울음에 취하지 않는 나는 바보인가."

글쓴이는 무슨 고민이 있기에 이런 비경을 옆에 두고 취하지 못하는 걸까요? 길을 걷는 동안 깊고 푸른 바다에 삶의 고민을 던져 넣어 풀어보기를 잠깐 기원했습니다.

a 초분 햇살은 뜨거운데 왜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지...

초분 햇살은 뜨거운데 왜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지... ⓒ 황주찬


등 뒤로 웃음소리가 내 꽁무니를 쫓는다

그렇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비렁길을 걷다 양지바른 곳에서 초분(草墳)을 만났습니다. 짚을 쌓아 올린 곳 둘레로 돌담을 쳐 놓았네요. 초분은 일종의 임시 풀 무덤인데 남해와 서해의 섬지 역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습입니다.

초분으로 가기 전 안내문이 보입니다. "이곳 초분은 돌로 쌓고 시신을 올려두는 고임 초분 형태로 2년 전까지 행해져 왔던 초분 터에 그대로 복원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네요. 그럼 이곳에 시신이 있었다는 말인데...

일행이 사진에 담아보라 권합니다. 아래로 내려가 카메라에 모습을 담는데 왠지 으스스 하네요. 위쪽을 쳐다보니 일행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네요. 저 만치 컴컴한 숲길을 보니 하얀 등이 보이는가 싶더니 홀연히 사라집니다.

혼자 남았습니다. 재빨리 위쪽으로 올라와 큰소리로 일행을 부르며 달려갑니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꽁무니를 쫓아 오는데 제가 웃는 건지 바람 소리인지 확인도 필요 없이 내달렸습니다. 

a 돌담 돌담 앞으로 조그마한 담을 세웠습니다. 돌담 중간에 네모난 구멍도 냈구요.

돌담 돌담 앞으로 조그마한 담을 세웠습니다. 돌담 중간에 네모난 구멍도 냈구요. ⓒ 황주찬


a 점심 해물파전입니다.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길 걷는데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점심 해물파전입니다.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길 걷는데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 황주찬


돌담에 난 작은 구멍, 무슨 용도일까요?

그렇게 스릴만점의 길을 걸으니 두포가 나옵니다. 작은 마을이 바다를 품고 높지 않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마을을 향해 잰걸음을 놓는데 인상적인 돌담이 눈길을 당깁니다.

돌담 앞에 작은 돌담을 하나 더 쌓아 불어오는 섬 바람을 막아봅니다. 또 바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조심스레 볼모양으로 돌담에 작은 구멍을 내 놓았습니다. 이곳 바람도 제주바람 못지않나 봅니다.

점심은 막걸리를 곁들인 해물파전입니다. 해산물 듬성듬성 보이는 육지 파전과 격이 다릅니다. 바닷가 파전답게 갯것이 잔뜩 들어 있네요. 든든히 배 채우고 입맛 몇 번 다시니 비렁길 끝인 직포가 보입니다.

a 나무 직포에서 만난 멋진 나무입니다.

나무 직포에서 만난 멋진 나무입니다. ⓒ 황주찬


예전엔 나라님이 막은 섬, 지금은 대통령이 가보란다

직포는 두포와 또 다른 멋이 있습니다. 바닷가 길 옆으로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데 모양이 하나같이 일품입니다. 묘하게 휘어지고 늘어진 몸매가 지친 여행객 입에서 탄성을 절로 끌어냅니다. 풍상을 이겨낸 모습, 참 멋있습니다.

아슬아슬한 금오도 서쪽 길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금오도는 예부터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니랍니다. 나라에서 관리하며 사람들 출입과 벌채를 막았습니다. 고종은 이 아름다운 섬을 명성황후에게 하사하기도 했고요.

금오도에 사람소리가 들린 지는 120여년 정도랍니다. 나라님이 사람들 발길을 막은 게지요. 원시 자연 그대로인 금오도를 만날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지금은 대통령이 가보라는 곳이 돼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a 함구미 함구미에서 만난 할머니입니다.

함구미 함구미에서 만난 할머니입니다. ⓒ 황주찬


돌아오는 길, 수없이 밀려드는 뭍 사람들 발길 속에서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금오도를 봅니다.
#비렁길 #금오도 #함구미 #여수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