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전 요사채
육성철
지리산 실상사의 새벽은 고요했다. 네 명의 중징계 정직자와 한 명의 '사실상' 해고자, 그리고 서울과 광주에서 합류한 세 명의 징계자를 더해 모두 여덟 명이 수행자 선방에 묵었다. 팔월 열여드레 하현달은 고찰의 중심 법당인 보광전 팔짝 지붕을 넘은 지 오래, 잘 익은 단감이 찬 이슬을 맞아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속이 드러난 단감을 약수에 씻어 껍질째 베어 물었다. 단맛이 혀를 감싸는가 싶더니 곧바로 떫은 기운이 입 속에 퍼졌다. 한 입으로 두 맛을 즐기며 달빛에 잠든 국보 제10호 삼층석탑을 바라보았다. 옛 사람들은 자연의 경계를 허물지 않는 가람 배치의 멋을 알았다. 실상사는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은근함을 간직하고 있다.
인시를 넘어 법고가 울렸다. 몸을 씻고 뒷간에 들어 속을 비웠다. 실상사 뒷간은 생태의 순환을 고스란히 수용한다. 사람의 몸에서 나온 물질을 한 톨도 내버리지 않고 사람에게 돌려보낸다. 소변은 따로 모아 정화하고 대변은 톱밥과 뒤섞어 거름으로 뿌린다. 뒷간에 쭈그린 채 문 앞에 새겨진 문구를 소리 내어 읽고 되새겼다.
'밥은 똥이 되고 똥은 밥이 된다. 비우고 또 비우니 큰 기쁨입니다.'실상사의 새벽예불은 화엄경의 정행품을 낭송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목탁 소리의 운율을 느끼며 수행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발원했다. 비록 징계 중이나 여전히 공무원 신분인지라 특정한 대목에서 눈길이 확 쏠렸다.
"정치인과 공무원을 볼 때엔 반드시 지극한 마음으로 '중생들이 정의와 마음 굳게 지켜 항상 공평무사함 실천하여 지이다'하고 발원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