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의 곡학아세

등록 2011.09.20 19:27수정 2011.09.2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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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를 구독하지 않은 지 꽤 됩니다.  10년도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그날 관심 가는 뉴스를 검색합니다. 이 정도로도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신문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됩니다. 20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요즘 정치권을 긴장시키고 있는 안철수 돌풍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안 교수에 대한 기사들이 대부분 기존 정치에 식상한 국민에게 신선한 바람을 선사하고 있다는 식의 긍정적 평가 일변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한 기사는 그것에 반대되는 논조를 전개하고 있어서 관심이 더 갔습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자 정치전문기자로 되어있고, 제가 읽은 그 기사도 그 신문에 정기적으로 실리는 정치 칼럼인 것 같았습니다. '김진의 시시각각'이 그것인데, 그때 그때 시사성 있는 정치적 사안들을 분석해서 글로 정리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시시각각(時時刻刻)'이란 '다른 내용을 다른 시각에 새겨 넣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김진의 글도 그의 생각을 새겨 놓은 것이니 왈가왈부할 일이 못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글은 그의 일기장에 기록해 놓은 개인적인 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는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 중 하나입니다. 그 지면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 것이니 만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다중(多衆)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의 글이 세상에 선한 영향이 아니라 폐해로 작용할 때는 어떤 방법으로든 막아야 합니다.

저는 김진의 글을 접할 때도 그렇고 또 방송에 패널로 나와서 그가 하는 말을 들을 때도 이상야릇한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왜냐하면 저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사람이 저와 생각이 달라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입니다. 지금 50대의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 중기에서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중고대학을 다닌 사람들입니다. 그 기간은 오롯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압박기였고 변동기에 해당됩니다. 이 나라 대통령은 박정희 이외에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 권리도 내려놓아야 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남은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의 논리에 익숙해야 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기 이후 어느 때쯤일 것입니다. 지금은 동아일보가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으로 자리잡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몇몇 지사(志士)적 기자들로 인해 불의에 맞서는 신문이었습니다. 동아일보의 지가(紙價)가 꽤 높았을 때였습니다. 박 정권에 비판적 기사를 썼다고 해서 재벌 회사 중심으로 광고를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권의 압력이 작용한 탓이었지요. 시민들이 개미 광고로 신문사를 격려했습니다만 그것이 큰 힘이 될 턱이 없습니다. 한참 뒤 광고 해약 사태가 끝나고 재벌들이 다시 신문에 광고를 줄 때의 이야기입니다. 신문 전면에 이런 내용의 광고문이 실렸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아이, 잘 키워 미래를 준비하는 등불로 만듭시다."

정확한 카피인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문장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예쁜 사내아이가 공원에서 비둘기 떼에게 모이를 주고 있고 먼발치에서 부모님이 대견스러운 듯 빙긋이 웃으며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배경 안에 위와 같은 카피를 넣었던 것입니다.


그 광고는 그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박정희 이외의 대통령은 이 나라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고정 관념이 그 광고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박정희가 영원히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고 진리였습니다. 그 광고를 만든 회사 임원들이 중정에 불려가서 죽지 않을 정도로 혼이 났다는 풍문이 입을 통해서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사물과 현상의 정(正)과 부(否)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김진이 한 유력 일간지의 간부급 기자라면 언론의 생명인 객관성을 늘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보수의 세포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심해 보수를 넘어 극우의 지점까지 가 있지 않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중앙일보는 보수를 표방하는 신문입니다. 그런 신문에 보수적인 글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에 게재하는 글은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으로 독자에게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독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하지만 김진의 글은 보수에 반하는 사람이나 현상에 대해서는 송곳을 들이대듯 찔러대기 때문에 스릴은 있을지 모르지만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는 못 합니다. 잘 알다시피 보수와 진보, 그 대립과 갈등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것은 양쪽 다 존재 내용과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두 이념이 같이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장단점을 조화롭게 구사하며 자기의 생각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럴 때 독자가 호응하게 되고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김진의 칼럼은 그것이 부족합니다. 제로에 가깝습니다. 지난 9월 10일자 '김진의 시시각각'은 '안철수의 거품 바이러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인신공격성으로 느껴질 정도로 안철수를 깎아내리는 글이었습니다. 그의 등장을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정치인의 출현 정도밖에 안 되는데 국민들이 너무 흥분하는 것 같다며 그 과(過)를 국민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왜 안철수에게 그렇게 환호하는지, 그의 등장에 왜 통쾌해 하는지 그 원인은 밝히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환호하는 국민을 철없는 무리 정도로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 정치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의 현 주소는 애써 눈을 감습니다. 국민에 이어 안철수를 깎아 내리기에 바쁩니다. 김진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오늘날 몇 안 되는 보수 논객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보수 논객이 없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토론장에서는 객관성을 잃고 공격하는 싸움꾼이 돋보이는 법입니다. 김진이 그런 사람입니다. 공격의 고삐를 잡았을 때는 방송 사회자가 저지해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쏟아냅니다. 대단한 용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진이 그의 '시시각각' 칼럼에서 안철수를 공격하는 것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안철수가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위원을 맡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 정부에 발을 담고 있으면서 정권 말기가 되니까 칼을 던지고 있다며 흥분합니다. 이것은 김진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중앙 일간지 논설위원이요 정치전문기자라고 해서 다 알 수 는 없을 것입니다. 현재 대통령직속 위원회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많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닌 형식치레의 위원회도 그 중엔 없지 않습니다. 위원을 위촉할 때도 본인의 의사보다는 정권의 필요에 의해 위촉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마지못해 위원직을 수락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정부에 대한 소속감이 김진이 기대하는 것만큼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즉 대통령의 가치와 세계관에 동조해서 참여하는 사람이 그의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안철수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또 우리나라 발전을 이끈 포스코, 포스텍 등의 사외 이사를 맡아 성장의 단물을 삼키던 자가 갑자기 재야인사와 손잡은 것은 안철수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 주도의 경제 성장이 없었다면 '안철수연구소'도 없었을 것이고, 그 연구소가 아니었다면 그도 필부의 삶에 그쳤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진보진영이냐는 식입니다. 은혜를 입은 은인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며 그의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김진은 안철수에게 이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습니다. "안 교수는 70년대가 모아놓은 벌꿀로 보양하면서 70년대라는 벌집에 침을 뱉고 있다." 비유법을 구사한 문장 치고는  좀 유치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안철수보다 먼저 공격을 받아야 할 대상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이 나라의 재벌, 보수 언론, 검경 등 개인이 아닌 조직만 해도 그 수가 넘쳐 납니다. 그런 것은 모른 척하면서 안철수를 비난하는 것은 화살을 엉뚱한 곳에 겨냥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김진은 또 대통령과 그 가족이 집회장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욕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세상인데, 왜 표현의 자유가 없다고 하느냐고 나무랍니다. 잘 알다시피 집회의 장소, 시위의 현장은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대통령도 그 가족도 심지어는 신까지도 능멸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대통령과 그 가족을 비난하는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식의 발상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방송에서 정부에 듣기 좋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사람은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쫓겨나야 하는 등 과거 정권과는 분명 다른 현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김진이 안철수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불만은 다른 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당신같이 곱게 자라고 안락하게 살아온 사람이 왜 보수층에 줄 서지 않고 진보 개혁 세력과 손잡느냐는 불만이 그것입니다. 보수와 손 잡았으면 보수 논객 김진에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어요. 하지만 역사란 그렇게만 진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철수가 사회운동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고, 그의 삶을 다른 곳에서 일구어 왔다고 해도 그가 사회운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이해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또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가 굴곡된 삶을 살아오지 않고 정직하게 생활에 임했다고 이해하며 손을 잡아주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안철수는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아름다운가게'에 이사로 참여해서 도움을 꾸준히 주었다는 사실도 한 예가 될 것입니다.

김진은 안철수의 행보가 자신의 눈에 벗어났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훼절(보수에서 진보로?)로 보고 싶을 텐데, 그의 삶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안철수는 사회운동을 하다가 보수 세력에 합류해서 홍위병 역할을 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교계 지도자연하는 사람들하고는 그 지향점부터가 다릅니다. 사실 지금까지 무색투명하게 산소 같은 삶을 산 안철수가 진보 개혁 쪽에 손을 잡았다는 것은 큰 결단입니다. 그의 이런 결단이 당장은 손해 같지만 역사적 눈을 갖고 멀리 볼 땐 현명한 선택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의 입장을 굳건히 견지해서 내년 대선에서 국민들의 바람에 응답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보수주의자 김진이 쓴 한 칼럼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주위에 많은 지인(知人)들을 두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실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는 친구가 될 수 있고, 공존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김진은 자타가 인정하는 보수주의자입니다. 나는 그가 얼치기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건전한 보수주의자이기를 바랍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갖고 있는 지식으로 칼질하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장점에도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보수도 진보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잘못을 지적해 주는 그런 논객들이 요청됩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에 결박되어 있는 듯한 김진이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입니다.
#김진의 시시각각 #보수와 진보 #안철수 #동아일보 #곡학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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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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