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기도매주 월요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지금까지 마흔한 번을 계속 참례했지만, 매일 거행되는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에는 한 번도 참례하지 못하여 무거운 죄의식을 안고 살아야 했다. 9월 19일 드디어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강변을 찾았다. 모시고 사는 노친의 88회 미수 생신에...
지요하
그동안 늘 두물머리를 생각하며 살았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강변에서 지난 2010년 2월 17일부터 매일같이 오후 3시에 '생명평화미사'가 거행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29일 이후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만사제폐하고 서울 여의도를 가서 7시 30분에 거행되는 '거리미사'에 참례하는 생활을 줄기차게 이어오면서도(지금까지 마흔한 번을 갔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는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거운 죄의식마저 가지게 했다.
그런 죄의식 속에서, 오는 9월 26일(월) 오후 2시에 거행되는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에는 반드시 참례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26일 이전에 두물머리를 한 번 다녀오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26일의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는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참례를 하거나 취재를 하고 또 글을 쓸 터였다. 그러니 그 일은 그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미리 두물머리를 가서 총체적인 취재를 한 다음 26일의 전국 집중미사를 좀 더 도울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생각이었다.
4대강 반대세력 어디 있느냐고? 충남 태안에서 경기도 양평군 강변을 가는 일은 수월하지가 않았다. 시간은 2시간 남짓 걸렸지만 유료도로를 여러 번 바꾸어 타야 했고,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에도 순간적으로 길을 놓쳐 좀 더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운전을 하면서 <조선일보>의 박정훈이라는 이가 쓴 글을 떠올리곤 했다. 사회부장을 지낸 기사기획에디터라고 했다. 9월 14일치 신문에 난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칼럼에서, 그는 4대강 비판세력을 향해 "지금은 어디 있느냐"고 일갈하면서 "오류를 인정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기고만장'의 실체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사실을 마구 왜곡하면서 정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따르고 전하는 그는 이미 '승리감'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철없는 충성 독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복창을 해댄 "4대강 반대세력 어디 있느냐"는 일갈에는 청맹과니들의 속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4대강 반대세력에는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서, 다시 말해 반대세력의 눈물겨운 움직임들과 뜨거운 주장들을 한 번도 지면에 '자세히 정직하게' 반영하지 않았으면서 느닷없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는 것은 너무도 뻔뻔스러운 망발이 아닌가. 또 그것은 언어도단의 전형이 아닌가.
그가 유치한 거짓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여의도 강변에서 '시대의 횃불'은 계속 타오르고, 두물머리 강변에서는 '강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십자가가 매일같이 계속적으로 메시지를 발현하고 있건만, 그는 왜 그쪽으로는 전혀 눈을 주지 않는가. 오늘도 수많은 국민들이 강의 파괴와 상실을 뼈아파하며 강의 원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이유를 그는 왜 외면하며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가.
먹물의 한계에 사로잡혀 사는 <조선일보> 기사기획에디터 박정훈에 대한 연민도 한 가슴 끌어안은 채 나는 양평군 땅에 들어서면서, 양평군은 이제 강이 없는 고장, 강 대신 호수만을 가진 동네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