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에 노안까지... 사람이 개를 닮아가네

어려운 경제 상황, 사회적 제도의 부재... 장수가 두려운 '삼포'세대

등록 2011.09.28 14:09수정 2011.09.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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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수술을 통해 인공 수정체를 넣은 다롱이의 눈. 귀 밑 검버섯이나 주름이 14년의 세월을 보여주고 있다. ⓒ 박주희


60년이 채 안 되는 세월 동안 한 가족이 탄생하고 소멸한다. 생판 모르고 지내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세상에 없던 두 사람을 낳아 네 식구를 꾸린 지 24년. 우리 가족의 역사도 어느덧 중반부로 달려가고 있다. 언제 클지 걱정스럽던 딸,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청춘일 것만 같던 부모님은 중장년층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바쁘게 살다보니 가족 모두 나이 앞자리 숫자가 휙휙 바뀌어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막내'가 우리 가족의 나이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건이 터졌다.

그 막내는 바로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고 있는 14살짜리 개, 다롱이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70~80살 정도 된 노견이다. 치와와답게 큰 눈을 가지고 있어서 내 얼굴이 눈동자에 비치는 게 훤히 보일 정도다. 그런 다롱이의 눈이 구름이 낀 것처럼 흐릿해진 걸 발견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병원에 데려가 보니 한쪽 눈은 나이가 들어 서서히 혼탁해지는 중이고 반대쪽 눈은 백내장이란다.

백내장은 노견들이 주로 겪는 질병으로 수술을 하지 못할 경우 실명에 이르는 질병이다.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만 같던 다롱이가 전신마취를 하고 눈 수술을 받는 동안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술을 통해 인공 수정체를 넣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염증이 생겨 여전히 매일 안약을 넣어주어야 한다. 근데 다롱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나니 부모님이 시야가 흐려졌다며 답답함을 호소하셨다. 개가 주인을 닮는 게 아니라 주인이 개를 닮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글씨가 잘 안보이네"... 세월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계셨던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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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안경(위)과 간혹 쓰시던 것을 이제 매일 쓰시는 아버지의 안경(아래). ⓒ 박주희


3년 전, 아버지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신다며 책이나 서류를 팔을 쭉 편 상태에서 보기 시작하셨다. 아버지에게 노안이 찾아온 것이다. 나에게 노안은 돋보기 안경을 코 끝에 걸친 채 백과사전만한 전화번호부를 뒤적이시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였다. 이렇게나 일찍, 아버지가 노안 현상을 겪으실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안경 없이도 불편하지 않다던 아버지는 결국 안경점에 가 안경을 맞춰오셨다. 노안인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 중간 거리, 먼 거리까지 불편함없이 보기 위해 쓴다는 누진다초점렌즈란다. 가뜩이나 머리숱도 별로 없는 아버지가 안경까지 쓰시니 지금 나이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이셨다. 렌즈 너머 아버지의 두 눈에도 뭔가 모를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젊은 애가 나보다 눈이 안 좋아서 큰일이라며 걱정하셨던 게 바로 어제일만 같은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노안 대열'에 합류하셨다. 문자 메시지나 제품명이 잘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 수정체를 끼워 넣은 다롱이와 익숙지 않은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었다. 갈수록 건조해지는 피부와 작지만 하나씩 생기는  검버섯까지. 내가 청춘의 절정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부모님은 그렇게 세월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계셨던 거다.

'삼포세대'라는 20대, 중년도 장수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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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잘 팔려서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는 친구의 연금복권 ⓒ 박주희


부모님과 다롱이의 '노안 사태'를 경험하며 가슴이 저려오면서도 한편,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 역시 언젠가 겪을 일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해서 '삼포(三抛)세대'라 불리우는 지금의 20대. 우리 세대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산다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취업이나 고용 보장이 되지 않는 지금, 우리에게 은퇴 이후나 노후를 계획한다는 건 배부른 소리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몇 십장 쓰다 보면 무엇이든 취업 이후로 제쳐두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취업을 한 뒤에도 일에 치여 아득히 먼 미래는 돌볼 겨를이 없고 국민연금과 각종 보험료, 생활비, 교육비로 월급의 많은 부분이 깎여나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꿈꾸는 '핑크빛 노년'은 사실상 이루기 힘든 꿈 같아 보인다.

이런 현실과 두려움 때문일까 몇몇 내 친구들은 40~50대 사이에서 열풍이라는 연금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1등에 당첨되면 매월 500만 원씩 20년 동안 주는 복권이란다. 아저씨, 아줌마들 사이에 껴 복권을 구입한 친구들은 복권이 당첨되면 그 돈으로 생활비를 보충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취업난에 머리를 감싸 안지만 매일 버틴다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얼떨결에 맞이 할 중년도 20대들에게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우린 당첨 가능성도 낮은 복권에 '만약'이라는 단서를 달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현실에 발목이 잡혀 똑 떨어지곤 한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언제까지 노년 두려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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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청춘 합창단'의 합창단원들. ⓒ KBS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은 100세 이상의 노인이 넘쳐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노인 때문에 세금이 낭비된다며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의료비 지급을 제한하고 광고대행사에서는 반노(反老)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식들이 요청할 경우 노인센터에서는 부모를 끌고 간다. 믿었던 자식의 신고로 센터에 끌려가던 한 남자는 자신을 차에 태우는 센터의 젊은 직원에게 이렇게 외친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소설을 보며 뭔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은 우리 사회 역시 그렇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굳이 애써 찾지 않더라도 TV와 신문을 통해 자식이 부모를 져버리고 사회가 노인을 홀대하는 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사회적 제도의 부재뿐만 아니라 '소통의 부재' 역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할머니·할아버지로 구성된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이나 1세부터 100세까지 총 100명의 시청자와 함께 한 <1박 2일>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노년의 추억과 꿈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많은 세대가 그간 중·장년층과 얼마나 깊이 있는 소통이 없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걸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서야 볼 수 있는 상황. 먹고 살기 위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졌던 '소통'의 부재는 노년은 어떨 것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준 채 노년기를 두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 가족의 시계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 또 한 번 눈 뜨고 나면 나는 30대로, 부모님은 60대로 변해 있을 것이다.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 20대든,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중년이든 닥치지 않은 노후를 생각하는 일이 무섭고 불안한 일이 아닌 영광스럽고 축복받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존경받는 어른, 그 어른의 삶을 좇아 사는 청년들이 어우러져 소통하는 세상이라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불어 정부는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드는 사람들과 이미 당도한 사람들까지 고려해 정책을 수립하고 재정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당신들도 언젠가는 맞이할 '노년'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박주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주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안 #노후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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