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구청장, 양변기에 머리 감는 사연

홍미영 부평구청장,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서 한 달 넘게 거주

등록 2011.09.26 16:25수정 2011.09.26 20:23
0
원고료로 응원
a

사업이 중지돼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십정2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 한만송


일교차가 커진 지난 22일 오전 6시 30분께 인천 부평구의 십정2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이하 십정2지구) 내 달동네를 찾았다. 출근길에 나서는 이들보다 이른 아침부터 골목길에 삼삼오오 나와 있는 노인들이 더 많았다. 길을 잘못 들어 사업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무너져가는 건물들, 빈 집과 상가들, 노인들이 차지해 버린 골목길이 황량했다.

인천의 달동네, 집 무너져도 하늘만 쳐다봐

십정2지구는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216번지 일원으로, 면적은 19만 3066.3㎡다. 이곳엔 도시 개발에 밀려 모여든 2700여 세대가 정착해 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당초 2014년까지 전면수용방식을 통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완료, 공동주택 3048호를 분양할 계획이었다.

이 중 1000여 세대는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연탄과 석유 등으로 난방하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살림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07년 지구 지정 고시 후 일부 낡은 주택은 그대로 방치돼 화재 위험 등에 노출돼 있다.

부평구에 따르면, 500세대 이상이 빈 집으로 방치돼 있고, 일부 빈집들은 붕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온갖 쓰레기와 노숙자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 본드와 부탄가스 등이 발견됐다. 상당수 집들이 흙벽돌이나 시멘트 블록 등으로 지어졌으며, 20~30년 동안 개보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집들이 꽤 있다.

a

월 27일 내린 집중폭우로 인해 건물(십정동 216-87번지)이 무너져 내렸다. ⓒ 사진제공·부평구


a

십정2지구 내엔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꽤 있다. 이런 집들이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되고 있어 주거환경개선 사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7월 27일 집중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 ⓒ 한만송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중단된 가운데, 지난 7월 27일 내린 집중폭우로 인해 건물(십정동 216-87번지, 위에서 두번째 사진)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나마 붕괴 위험을 확인한 공무원들이 입주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불과 몇 시간 후 집이 붕괴됐다. 산비탈 위에 있던 가옥은 붕괴되면서 아랫집을 내리쳤으나, 다행히 안전망에 걸려 대문 등을 파손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로 인해 아랫집 5가구가 시급히 이주해야 하는 처지다. 문제는 이 같이 붕괴 위험이 있는 가옥과 담장, 시설물이 즐비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LH가 천문학적인 빚을 핑계로 장기간 사업을 중지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곰팡이 핀 공부방에 거주하며 딸 결혼시켜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이런 소식을 듣고 십정2지구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며 지난 8월 22일 이곳에 홀로 들어와 지내고 있다. 한 달이 지난 22일 오전 7시 무렵에 이곳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인 해님방에서 홍 구청장을 만났다. 

평소 그를 알고 지내던 슈퍼마켓 주인은 "구의원, 시의원 할 때부터 알았다. 국회의원도 지낸 구청장이 이곳에 와서 지낸다고 할 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달 넘게 이곳에서 지내니 주민들도 꽤 힘을 얻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홍 구청장이 머물고 있는 해님방은 홍 구청장이 대학 졸업 후 빈민운동을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그는 낮에는 구청장 업무를 수행하고, 밤엔 이곳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은 해님방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동네를 돌며 주민들을 만나기도 한다.

해님방은 아이들 물품이 곳곳에 쌓여 있고, 벽지엔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화장실이 협소하고 마땅한 세면시설이 없어 머리를 감을 땐 임시 방편으로 양변기에 머리를 대고 물을 붓기도 한다. 그는 편안한 집을 나두고 왜 이곳에서 살까.

"난 이곳에 빚이 참 많은 사람이다. 빚을 갚는 맘으로 이곳에 왔다. 내가 57만 명의 행정 책임자로 있는 곳의 주민들이 붕괴 위험이 있는 주거지에서 계속 방치돼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냐?"

그는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에 생일을 맞았으며, 막내딸도 결혼 시켰다. 추석 명절에 잠시 집에 들렀다 온 것이 전부다. 나이 육십을 코앞에 둔 여성이 한 달째 이곳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a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여성의 몸으로 십정동 지역아동센터인 해님방에서 한 달 넘게 지내고 있다 ⓒ 한만송


"마음의 빚 갚기 위해 이곳에 왔다"

홍 구청장에게 십정2지구는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대학 졸업 후 이곳에 공부방을 열고, 주민들과 동고동락했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엔 이곳에서 구의원와 시의원에 연이어 당선됐다.

인터뷰 도중에도 동네 주민이 쌍화탕을 들고 와 그의 안부를 챙겼다. 이날 '차 없는 날 캠페인'을 함께 하기 위해 온 공무원을 보고, 쌍화탕을 몇 개 더 챙겨온 주민의 맘이 훈훈하게 다가왔다.

"동네 돌아보면 집에 들어와 차 한 잔 마시라고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인근 노부부가 불러 가보았더니, 주민센터에서 나눠주는 사랑의 쌀을 부탁하시더라. 그래서 동장에게 문의해 지급토록 했다. 딱한 사정에 있는 분들이 참 많다."

홍 구청장의 주민 걱정은 이어졌다.

"주거환경개선사업 한다고 집 개보수도 안 하고 그대로 방치하다 보니 동네 사정이 어렵다. 여러 사정으로 그나마 있던 약국들도 없어졌다. 어르신들이 많은데, 약국에 가려면 20~30분 걸어서 나가야 한다. 약사회 등에 부탁해 임시방편이라도 만들어야겠다. 더불어 사는 것은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a

홍미영 부평구청장. ⓒ 한만송


사업성 높여 사업 빨리 추진

LH의 천문학적 빚으로 십정2지구 사업은 요원한 상태다. 한나라당 조진형(부평갑) 국회의원도 수 년째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해양부장관과 LH 사장 등을 면담했다. 또 열악한 재정여건에도 인천시와 부평구가 사업 추진을 요청하고 있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홍 구청장은 "무작정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다만 행정의 책임자로서 이 분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여러분들이 도와줘 LH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윤옥(이명박 대통령 부인) 여사가 솔비(화재로 부모와 오빠를 잃고 심각한 화상을 입은 김솔비양)에게 성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집이 무너지고, 주민 불안이 높아진다. (LH의) 기약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부평구, LH 등은 현재 협의체를 구성해 사업성을 높여 조기 착공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용적률 상향조정, 도시기반시설 축소, 소형 평형 확대 공급(원주민 재정착률 제고) 등을 꾀하고 있다. 이는 LH 측의 승인을 남겨 놓고 있다.

조진형 의원실 이익성 보좌관도 "11월에 지장물 조사를 착수할 수 있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단지 내 도로 폭을 축소하고 녹지를 줄이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분양가를 낮추는 등의 방안도 논의 중이고, 구체적 액수까지 나오고 있다"며 "사업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착공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미영 #부평구청장 #주거환경개선사업 #LH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