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540만 원 대신 내주고 싶다"

[取중眞담] 눈물의 증언대회 이후 이어진 '구제의 손길'... 등록금 문제는 여전히 남아

등록 2011.09.26 15:55수정 2011.09.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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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공항이다! 한국이 좋구만. 무료 와이파이가 4개나 잡히네."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2년 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남동생이 한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농장일, 피자배달, 청소, 서빙 등을 해서 번 돈으로 호주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동생이 동남아 여행까지 마치고 마침내 귀국했습니다.

2년 만에 귀국한 동생... '시한폭탄' 터졌다? 

세컨드 비자 발급을 위해 한국에 잠깐 들렀던 게 지난해 봄이었으니, 거의 1년 반 만에 동생을 만나는 소감이요? 당연히 기쁘기는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호주에서는 마치 '보헤미안'처럼 일하며 공부하며 여행하며 자유롭게 지냈는데 한국의 팍팍한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요. 동생에게는 우스갯소리로 "이제 '헬게이트(지옥으로 가는 문)'가 열린 거다"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학업'입니다. 06학번인 동생은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는 얼마간의 준비기간 끝에 호주로 떠났습니다. 현재 동생은 최대 휴학 기간을 초과해 제적 처리된 상태입니다. 물론 입학금을 다시 내야 하기는 하지만 복학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입니다. 여기에 자취를 하려면 생활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동생은 '어차피 대학 졸업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돈이 아깝다. 복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생각이 다릅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 졸업 안 하고 어떻게 살 수 있느냐. 돈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며 펄쩍 뜁니다. 하지만 당장 수백만 원 규모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부모님도, 동생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은 동생의 등록금을 일컬어 '시한폭탄'이라고 하더군요. 동생은 다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아예 이민갈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공부 계속 하고 싶다" 오열하던 대학생, 그리고 한 통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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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학업포기 대학생 증언대회'에서 2학기 등록을 앞두고 고액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제적될 위기에 처한 한 학생이 자신의 형편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2일, 동생과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한 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한국대학생연합이 주최한 '학업포기 대학생 증언대회'에 참석한 이화여대 임아무개씨는 '증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코끝이 빨개져 있었습니다. 목이 메여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한 임씨는 발언 내내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3년 간 학교를 다니면서 2000만 원의 학자금 대출(4학기분)을 받았다는 그는 5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미 2년 반 동안 휴학을 한 임씨는 이번에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언제 복학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날 임씨를 비롯한 6명의 대학생들은 학교 당국과 교육과학기술부에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구제'를 요청했습니다(관련기사 : 마이크 잡자 눈물바다..."540만 원 없으면 쫓겨나요")


다음 날인 23일 오전, <오마이뉴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름도 직업도 밝히기를 꺼려한 이 독자는 임씨의 한 학기 등록금을 내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저는 부자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대에 전화를 해봤더니 오늘이 등록 마감일이라고 하더라"면서 "빨리 학생과 연락이 됐으면 한다"고 거듭 부탁했습니다. 

한대련을 통해 알아낸 연락처로 임씨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임씨의 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이대 총학생회를 통해 임씨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오후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독자 분은 혹시라도 등록 마감일을 넘길까 봐 급한 마음에 계속해서 전화를 해오고, 취재기자로서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전날 임씨의 오열하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마음이 더욱더 불편했습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오후 4시경, 김지영 이대 부총학생회장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연락은 됐는데 몸이 아프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일단 제적은 유보한 상태입니다. 다음 주까지도 시간은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미친 등록금', 개인의 '선의'로 해결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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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연합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한 대학생들의 구제요청을 추가로 받고 있다. ⓒ 한국대학생연합

그리고 다음 날 늦은 오후, 마침내 임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임씨는 증언대회 이후 고민이 많아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독자분과 통화한 결과, 임씨는 이번 학기까지만 휴학하고 내년 1학기에 다시 학교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학기는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수강신청도 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한 학기 등록금을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도, 또 한 학기분의 등록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학기 휴학하면서 학업을 마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한대련에 따르면, '학업포기 증언대회' 이후 곳곳에서 '구제'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뿐만 아니라 건국대 동문, 송파구 한 교회에 다니는 교인, 대형 연예 기획사, 한국장학재단 등에서 학생들을 돕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네요.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미친 등록금'이 이러한 일부 개인들의 '선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지난 상반기, '반값등록금 촛불'이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자 정부여당도 야당도 등록금 대책을 내놓았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대선 당시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부여당의 등록금 대책은 1조 5000억 원의 장학금 확충 계획에 그쳤고, 학생들은 2학기에도 1학기와 같은 금액이 찍힌 등록금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대학생들, 29일 다시 '반값등록금 촛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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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 정문앞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가 공동개최한 '9.19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 선포 기자회견'에서 비싼 등록금을 '반값'으로 자르기 위한 퍼포먼스를 위해 톱이 준비되어 있다. 이들은 "<우정과 화합의 장>을 뛰어 넘어 서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의 장으로 '연고제/고연제' 본연의 의미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오는 19일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이런 가운데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내몰린 대학생들은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고, 수업도 들어가고 싶고, 캠퍼스를 당당하게 거닐고 싶다"(건국대 이아무개씨)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오는 29일, 대학생들이 다시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듭니다. 한대련은 이날을 '거리수업의 날'로 정하고 거리수업과 촛불집회 그리고 거리행진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야 하는 걸까요. 이제 날도 추워지는데 말이죠.

이대 임아무개씨는 부모님에게 "올해 안에는 등록금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거다, 졸업하고야 말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 역시, 2년 만에 돌아온 동생과 등록금 때문에 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등록금 #반값등록금 #한대련 #구제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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