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정상에 핀 하얀 꽃, 영혼의 추모화입니다

다시는 어처구니 없게 존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등록 2011.09.27 11:13수정 2011.09.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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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우면산을 할퀴고 간 폭우와 산사태가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인간의 무뢰함을 꾸짖기라도 하듯 물 폭탄을 맞은 것이다. 사태 두 달이 지나 나는 산 정상에 핀 하얀 백합 같은 꽃을 보았다. 그 꽃은 지난여름 말없이 숨져간 18명의 영혼을 추모하려 피어 있는 조화 같았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더위가 심하고 비도 많이 왔다. 일기 예보에서 장맛비가 지나갔다고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그런데 지난 7월 하순, 내가 한세대를 살아온 우면산자락에 예상하지 못한 국지폭우로 산사태가 크게 났다. 

우면산골짜기마다 폭우에 밀려온 흙더미와 나무와 돌들이 순환도로변 아파트까지 밀어닥쳤다. 시간당 엄청난 강수량은 산위에서 거칠 것 없이 아래로 떠내려 와 아파트 7층까지 덮쳤다. 그날 밤 서울의 서초 우면산에 최고의 폭우가 쏟아졌다.

속보는 우면산자락에서 많은 사람이 숨졌다고 전했다. 집에 물이 차,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그만 감전되어 숨지고, 어린애도 밀려온 토사에 의해 숨졌다. 모두 내 이웃들이다. 얼마 후에는 케이블 TV방송사도 물에 잠겨 방송이 중단되었다.

인터넷과 핸드폰의 메시지로 전해온 소식은 서초 문협에서 함께 임원을 맡은 시인의 아들이 운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다. 소중한 생명이 예고도 없이 세상과 이별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중대병원 영안실 빈소를 찾아 문우아들 영정에 한 송이 국화꽃을 올렸다. 서른다섯의 아들은 가을에 결혼을 할 예정이고 효자였다면서 문우는 울먹였다. 어머니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말없이 그저 슬픔의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지난 가을, 그러니까 일 년 전에 우연하게도 전원마을 문우 집을 방문해 차도 한잔 나누었다. 아담한 단독주택으로 잘 정리된 가내 가구들과 온 가족이 다복한 모습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선하다. 문우 집은 마을에서 산자락 가까이에 있어 마치 큰 정원같이 여기고 살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이었다.

우면산 산사태 이후 모습 ⓒ 윤영전


자연재해는 과연 인간으로 어찌 할 수 없는가? 의문이었다. 지난해 초겨울 우면산에 몰아닥친 폭풍의 위력도 대단했다. 근 1-2백년 아카시아와 참나무들이 여지없이 꺾이고 뿌리까지 뽑혔다. 자주 가는 등산로 곳곳에 쓰려져 있어 자연의 위세에 놀랍기만 했다. 그때도 일부 피해가 있었지만 올해와 같은 인명피해는 없었다.


나는 우면산의 참혹한 현장을 찾아갔다. 자주 다니던 등산로였는데 상상을 초월한 심한 상처의 자국이었다. 산위에서 마치 봇물이 터진 것 같았다. 등산길도 없어지고 심지어는 바윗돌과 큰 나무들도 뽑혀 떠밀려갔다. 마치 바다에 해일이 거꾸로 산에서 아래로 일어난 것 같은 꼴이었다.

산을 한 바퀴 돌아 전원마을의 문우 집을 찾았다. 아직도 실감나지 않은 아들의 죽음에도, 지하실에 쌓인 흑을 파내고 가제도구를 정리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을사람들과 수방사와 곳곳에서 찾아온 도우미들이 함께했다. 나는 그저 문우와 가족들에게 상심하지 말고 아들의 영혼이 평안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그 주일 미사해서 이번 산사태로 교우 3분이 운명하여 기도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하고 어려운 처지의 교우나 이웃을 위해서도 2차 헌금을 하였다. 아무리 기도하고 부의금을 전해도 귀한 목숨을 잃은 아픔을 어찌 달랠 수 있을까.

자연의 힘이고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라 하지만 과연 예방은 불가능 했을까. 사태 후, 두 달 지나, 현장을 보았다. '소 잃고 외양간'고친다는 옛말처럼, 우면산골짜기 일대는 포클레인과 굴삭기로 모두 파헤쳐져 보를 만들고 물이 흐르게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과연 예방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면산 산사태 이후 모습. ⓒ 윤영전


서초의 우면산자락만 해도 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어, 시민들이 얼마나 부러워한 주거지역인가. 소위 강남권 강부자라는 말도 듣는 곳이지만, 이렇듯 예칙불허의 사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변명도 있다. 그러나 문우의 아들 희생은 집 앞에 나무를 잘라 달라고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해 일어난 것이니 인재다.

또한 지난해 산사태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방재시스템 가동도 고려했다고 한다. 헌데 생태공원 조성으로 사전 공사를 해 산사태를 더 촉발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즘 회자되는 4대강사업처럼 자연그대로를 보존해야 생태계를 살리는데, 인간의 욕망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아, 호된 아픔을 당하는 것 같다.

인간수명(壽命)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회갑이나 진갑 고희는 평범하게 맞이하는 우리의 삶이다. 이제는 팔순을 넘어 뉴밀레니엄시대의 구순을 사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급변사고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가 바라는 수명은 무조건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아무래도 수명은 구순이고 앞으로 개놈시대는 120살까지 늘어나는 시대가 도래 한다니, 생전에 좋은 일 많이 하고 수(壽)를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까.

산 정상에 핀 하얀 꽃이 추모를 대신해 숨진 영혼이 영면하기를 기도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하순 우면산자락에서 일어난 국지물폭탄으로 18분의 귀한 생명이 숨졌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뜻하지 않은 산사태에 현장을 다니면서 아픔이 더해갔다. 그동안 차마 아픔을 글로 쓰지 못했는데 이제야 차분한 마음으로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

지금 우면산에는 산골짜기마다 보를 만들고 파해쳐 물길을 만든다고 요란한 포크레인과 굴삭기가 동원되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공사현장을 보면서 과연 그 현장이 방재를 철저히 할지 아니면 4대강처럼 마구 생태계를 파해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다시는 그런 큼찍한 사태를 다시 겪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지난 7월 하순 우면산자락에서 일어난 국지물폭탄으로 18분의 귀한 생명이 숨졌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뜻하지 않은 산사태에 현장을 다니면서 아픔이 더해갔다. 그동안 차마 아픔을 글로 쓰지 못했는데 이제야 차분한 마음으로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

지금 우면산에는 산골짜기마다 보를 만들고 파해쳐 물길을 만든다고 요란한 포크레인과 굴삭기가 동원되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공사현장을 보면서 과연 그 현장이 방재를 철저히 할지 아니면 4대강처럼 마구 생태계를 파해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다시는 그런 큼찍한 사태를 다시 겪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초구 우면산 #우면산사태 #18분 희생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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