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한국인 장모와 백인사위가 연 잡화점이야기

<마이 코리안 델리>(벤 라이더 하우 지음/이수영 옮김/정은문고)

등록 2011.09.28 16:26수정 2011.09.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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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표지 마이 코리안 델리

책표지 마이 코리안 델리 ⓒ 이명화

사실 요즘 나는 그리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네요.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고 이럴 때 저는 쓰고 싶은 글이 튀어 올라 두서없이 끼적여야 하거든요. 그렇다고 대단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는 얘기랍니다. 하지만 틈틈이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짧은 글이라도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이나 리뷰를 꼭 써야 하는 습관 때문에 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곤 합니다. 그러다보면 읽고 서평 쓰고 하다보면...에고고 이 일에 시간을 많이 뺏기지요.

이 책이 제게 온 것은 한 달 전 쯤. 읽어야 할 책 목록으로 책상 옆에 그냥 덮어두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 왔을 때 사실 별로 마음에 확 와 닿지 않아서 접어 두었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다시 펼쳐 읽어보니 제법 흥미롭고 재미가 있어 끝까지 붙들고 읽었네요. 읽고 나면 또 써야지요. 후후.


<마이 코리안 델리>는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글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만나는 이웃 사람 이야기처럼 소소한 일상이 그려져 있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작가가 하는 얘기를 옆에서 듣는 것처럼 일상성이 느껴지고 티비 드라마를 보거나 이웃에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것처럼 친근하게 오 닿습니다.

<마이 코리안 델리>(벤 라이더 하우/이수영옮김/정은문고)이 책은 한국인 장모와 백인 사위가 함께 잡화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겪는 문화적 충돌과 갈등, 거기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서로 갈등하고 이해 못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점점 한 가족의 의미와 사랑, 그리고 문화적 이해 등을 이끌어 낸다고나 할까요.

<파리 리뷰>라는 문예지 중견편집자로 유유자적하게(월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지내던 작가는 점점 자신의 일에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처가 식구들과 의논 끝에 '델리'(간단한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함께 파는 가게 혹은 잡화점)를 사서 운영하기로 합니다. 작가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 9개월 전에 장모의 단독주택 지하로 이사를 오고. 3년 동안 브루클린의 다가구 주택에 살며 매달 집세를 내는 게 지긋지긋하던 차에 집주인이 전기배선을 잘못해 가전제품이 불타버렸고 이참에 집을 사기로 결정, 그때까지 처갓집에서 임시 피난처를 삼기로 한 것입니다.

백인 청교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작가는 윌리엄 스트렁크와 E.B.화이트가 쓴 <문체의 요건>이란 책에서 글쓰기는 엄중한 것이고 좋은 글쓰기란 겸손과 일관성, 전통에 대한 존중 등의 미덕을 갖추며 자신만의 문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통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듯이, 자신이 자란 청교도적인 전통은 그것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처가식구 박씨네 집과 더불어 살면서 정체성의 혼돈을 경험하게 됩니다. 장인과 속옷까지 나눠 입게 되질 않나, 노크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박씨집 사람들이 아무 때나 문을 열지 않나 사생활을 누릴 수가 없어 힘들어하지요. 작가가 자란 환경은 열다섯 살이 되자 기숙사 학교에 보내졌고 부모님은 독립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박씨 집안의 경우는 부모가 성장한 자녀와 같이 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죽을 때까지 부모를 섬기고 부모를 부양하고 부모에 맞추고 사는 인생을 당연시한다는 것을 봅니다. 이래저래 혼란스러운 날들을 경험하는데 그는 델리를 시작한 후 여전히 낮에는 '파리리뷰'에서 편집자의 일을 하고 저녁에는 델리 일도 하면서 지냅니다.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장모 케이와 처가식구들은 '미국으로 이민 온 후 그 무엇도 확실한 게 없는 삶을 살면서도(겨우 몇 년 전에야 집을 샀다)조금도 후회하거나 속상해 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입니다.


한 번도 델리 일 같은 것을 해 본적이 없는 작가는 돈 계산에서부터 물건 판매하는 것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서투른 그를 바라보는 장모는 늘 불만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사사건건 충돌이요 갈등이지요. 하지만 점점 작가는 델리 일에 흥미와 애착을 느끼고 좋아하게 됩니다.

청교도적인 교육과 성향을 지닌 그와 밀어붙이기 식 장모와의 갈등과 충돌은 늘 신경전을 벌이는데, 그 가운데 점점 장모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갇힌 세계에서 점점 탈피하는 경험합니다. 낮에는 뉴욕의 중심 맨허튼에서 문예지 편집일로 저녁에는 브루클린으로 달려가 구멍가게에서 씨름하는 생활을 지속하고 점점 이 일에 재미를 붙여갈 때쯤에 가게를 접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노동의 즐거움이라고 말이지요.

작가는 델리 일을 하면서 그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 모든 활동들이 아내 개브의 가족과 얽히기 시작했고 같은 병원을 가고 같은 의사를 찾고 심지어 이발소도 한국여자에게 한다. 장모 케이와 델리 일을 통해 그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대면하게 되었고 지적인 일에만 매달려왔던 그의 삶은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 균형감각을 얻은 것 같다. 지적인 일과 델리 운영 양쪽을 오가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모든 결정을 순간마다 우주적 의미를 고려하는 사람이었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윤리의식의 시험대에 오르며, 몸에 걸친 실오라기 하나에도 그의 개성을 표현하는 의미를 부여했고 엄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입으로 들어가거나(음식) 입에서 나올(말)수 없던 그였습니다. 소극적 저항이나 중립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자신을 드러낸 후 평가를 받는 거라고 믿고 있었고,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는 위컴의 윌리엄의 금언도 백인 청교도 중산층에는 충분하지 않았고 예절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글을 쓰면서 땅과 가깝게 지내며 노동을 소중히 여겼던 작가들이 생각납니다. 작가 박완서 선생도 박경리 선생도 살아생전에 글 쓰는 일이 아니면 땅을 일구었다지요. 노동으로 땀 흘리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면서 지적인 일과 육체적 노동의 균형을 맞춰가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는 늘 상상 속에서 글을 쓰다보면 현실에 천착하지 못하고 공허하게 부유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자꾸 현실의 끈을 붙들기 위해 뭔가 작은 것이라도 육체적인 노동, 텃밭을 일구고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이이라 생각됩니다. <마이 코리안 델리>의 작가 역시 델리(잡화점)의 경험을 통해 균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공'처럼 느껴졌던 문학편집자의 생활이 편의점 델리 운영으로 해독제 역할을 했던 게지요. 

언뜻 보기엔 미국인 사위인 작가가 한국인 장모를 통해 은근히 한국문화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낯이 뜨거울 때도 있었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 속엔 한국문화를 뼛속 깊이 경험한 작가의 흥미로운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계급이나 문화의 차이를 초월할 수 있었던 거냐고 묻는 말에 그렇지 않다고, '그보다는 더욱 나다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달까요.'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가공'의 일만 해 왔던 작가 자신이 '델리'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새로운 눈뜸과 그의 변화와 성숙이 이루어졌다고 할까요.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갈등하면서 깊은 정으로 묶여진 뜨거운 가족애의 훈훈함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책: <마이 코리안 델리>
저자: 벤 라이더 하우/옮긴이:이수영
출간: 정은문고/2011.7.11
값: 15,000원


덧붙이는 글 책: <마이 코리안 델리>
저자: 벤 라이더 하우/옮긴이:이수영
출간: 정은문고/2011.7.11
값: 15,000원

마이 코리안 델리 -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정은문고, 2011


#마이 코리안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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