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주)시네마 제니스
자퇴 후, 청소년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사되었다. 아직도 보수언론에서는 쉼없이 교권침해를 얘기하고, '무서운 10대들' 어쩌고 하는 보도를 계속 쏟아 낸다. 참 혼란스럽다. 이 와중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1년째에 접어든다고 한다. 시간 정말 빠르다!
시간 빠르다고 느낄 만도 하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여기저기에서 학생인권조례 시대를 맞이하는 교육이나 강연 요청이 들어왔고 실제로 몇 번 가기도 했었다(이제는 '청소년'인 활동가가 인권 교육을 와달라는 요청을 종종 듣기도 한다, 참 신기하다!). 그 때마다 나는 또 경험하지 못했던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학교 혹은 인권에 관심 있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신청해놓은 인권교육 때문에 억지로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시간을 때우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학생들을 보자니 지난날 정말 듣기 싫은 고등과학 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진짜 미안했다. '그대들에게 인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권을 얘기해서 미안해요!'
실제로 어떤 교육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제로 인권교육을 듣게 되는 학생들이 안쓰럽고 미안해서 "교육을 듣는 것을 원치 않으면 듣지 않아도 좋아요~"라고 얘기하고 교육을 잘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복도를 지나가는 교사가 딴짓(카드게임)하는 학생을 보고 불러냈다.
"야, 이 XX 너 나와 봐". 따라가 보니 학생들이 교무실에 불려가서 열중쉬어 자세로 교사의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데 그런 태도가 말이 되냐? 학교 안에서는 그런 게임을 해서는 안 돼." 인권교육을 진행하는데도 이렇게 인권적이지 않은 사례들이 실제로 교실 안에서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참 당혹스럽고 혼란스럽다. 하루에 반나절을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수업을 '듣기만'하는데 피곤하고 집중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사실 교육(수업)이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학생들도 인간이므로 '인권'이 있는 것이다그이들도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학생인권조례는 제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조례보다 내가 더 위에 있다'라며 폭력이 교육인 줄 아는 교사들에게 상처받고, '어린 것들이 무슨 인권? 요즘 학생들 무서우니 당연히 손 좀 봐줘야지!'라고 쉽게 얘기하는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학생인권에서 가해자인 학교가 우습게도 학생인권을 얘기하고 훈계하듯 교육을 신청해버리고 무슨 교화 받는 것 마냥 인권교육이란 걸 듣게 하는데, 이 상황에서 이미 그들의 인권은 '삭제' 당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법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학생도 인간이므로 '인권'이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한 명제를 학교는 왜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걸까? 뭔가 그들의 마음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호소해도 듣질 않는다.
'대충 인권활동가한테 강연 요청해놓고, 강제로 학생들 앉혀놓지 말아라. 교육 몇 번 진행하는 것이 학생인권조례 맞이라면, 그런 맞이는 필요 없다! 사실 조례 이전에도 우리들에게 인권은 있었다. 당신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꼭꼭 숨겨 놓고 없는 척 해서 없는 건 줄 알았을 뿐이지!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야?'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뚝딱'소리와 함께 학교현장에서 인권적인 교육이 실현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멍청한 기대였다. 그런 기대는 몇 번의 교육으로 비참하게 무너졌다. 생각해보면 항상 우리에게 폭력을 일삼으면서 우리를 사육하던 학교가 갑자기 '학생인권조례'를 들고 와서 체벌도 하지 않고, 자 너희에게 권리와 자유를 주겠어!'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한 번도 그 권리와 자유를 누려 본 적 없는 학생들이 아직까지 조례를 두발자유, 체벌금지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사육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또 많은 인권 활동가들이 학교 현장으로 교육을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이 통하는 진리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