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그 이상의 가치를 담는다

곡성 약대추농장 배기섭 사장

등록 2011.10.04 18:08수정 2011.10.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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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추농장 전경 ⓒ 정종신


청량한 바람 소리와 초가을 변화무쌍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잠시 한눈을 팔다보니 왕대추가 무성하게 열린 농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름모를 들꽃들이 지천으로 보이고, 가을의 전령사인 고추잠자리 떼가 군무를 즐긴다.


서정적 분위기와 농부의 부지런함이 물씬 풍긴 이곳은 어린시절부터 농사로 잔뼈가 굵은 배기섭(54) 사장의 혼이 배어 있는 '약대추 농장'. 4만5000여 평의 농장은 행정구역상 곡성군 오곡면 미산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산수가 수려해 산수동이라고도 불린다. 군청으로부터 3km, 자동차로 5분거리, 골짜기를 따라 농장으로 가는 곡선의 포장길이 은근하면서도 여인네의 허리께를 연상시키듯 관능적이다.

따가운 가을볕이 아까운 탓일까, 농장 가장자리 산장 앞 뜰에는 토란대와 고추를 말리는 정겨운 풍경이 한없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철지난 평상에 잠시 앉아 하늘을 보니 골짜기 저 너머엔 마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나 나옴직한 아기자기한 산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민다.

'약대추농장'은 배 사장의 삶의 터전이자, 어린시절 꿈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스스로 농사꾼임을 자처한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종착점인지도 모른다. 농장에는 대추나무를 비롯해 감·밤·포도·복숭아·석류·매실·자두·헛개나무 등 10여 종의 과일나무들이 즐비하다.

모두가 그의 손길을 거쳐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10여 통의 양봉과 유정란을 낳는 100여 마리의 토종닭, 그리고 배 사장이 취미삼아 기르고 있는 비둘기들도 농장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각기 다른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화음을 맞추듯 배 사장은 농장의 지휘자인 셈이다.

농장을 병풍처럼 감아도는 3만여 평의 산에는 능이버섯과 같은 귀한 갖가지 산나물이 계절따라 배 사장의 손길을 기다린다. 이같이 곡성을 대표한 농장으로 제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뚝심이 바탕이 됐다.


농장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그와 나눈 짧은 대화에서 농사꾼으로서의 순수함과 열정을 엿볼수 있었다. 그는 단 한시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일년에 한두 번 영농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을 오갈 때도 버스의 좌석을 좌우로 바꿔가며 앉는다. 고속도로 주변의 가수원과 농장들을 봐 두었다가 시간이 될 때 다시 찾아가 보기 위해서다.

또 하루일을 시작하기 전 그는 이미 새벽에 오늘할 일들을 머리속에서 설계도를 그리듯 마무리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의 꼼꼼함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농장을 돌아보다 우연히도 대추나무에서 짝짓기를 하는 무당벌레를 볼 수 있었다. 농약과 거리가 멀다는 증거다. 실제로 그의 농장에서는 농약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처음 농삿일을 시작하면서 맹세한 것 중 하나인 친환경 농업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그의 손때 묻은 갖가지 농기구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풀을 베고, 퇴비를 주는 것을 손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추나무들의 생육이 좋아 씨알이 굵고 빚깔이 곱다.

배 사장은 "대추나무는 새순을 자르고 가지를 벌려 고정해 줘야 하는 일들로 참 손이 많이 간다"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에 넓은 농장을 수시로 갈아 줘야 하니 고생도 이만 저만 아니지만, 튼실하고 당도가 좋은 대추를 볼 때면 그간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보람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사는 기분으로 짓는 게 아니다"고 말하고 "땅은 자식을 아끼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자세와 성실함에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배기섭 약대추농장 사장 ⓒ 정종신

이곳 농장에 뿌리를 내리기 전, 그도 한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도시 회사의 간부로 근무했다. 그러나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는 선친의 뜻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늘상 반복되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을 찾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향에 돌아온 그는 오곡면 농협조합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곡성읍 농협조합장을 끝으로 1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배 사장은 조합장 소임을 맏으면서 느낀 점이 너무 많았다. 할일 없으니 농사나 짓는다는 관념의 틀을 깨고 싶었다. 농업에는 연습이 없으며, 정성과 노력, 그리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자만이 경쟁에서 살아 남는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고향 선후배들과 작목반을 만들고, 부가가치가 높은 과학영농을 실현하는 것이다. 배 사장의 또하나의 꿈은 곡성을 대표한 음식을 개발해 이를 널리 홍보하는 데 있다. 그런 연유로 3년 전 농장안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약대추 산장'을 오픈했다. 이곳을 다녀간 고객들이 인터넷에 글들을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표적인 메뉴는 버섯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능이버섯이 가미된 '닭곰탕'. 닭 육수의 깊은 맛과 닭고기의 쫄깃함이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농장에서 직접기른 채소로 만든 반찬은 정갈하고 맛이 깊어 일품이다. 유통과정이 없이 손님이 찾을 때마다 그때 그때 바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살아 숨쉬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방금 무친 배추김치와 가지나물, 정성그럽게 감아돌린 파김치는 주요리가 없이도 공기밥 한 두릇은 거뜬히 해치울 만하다. 배 사장 부인이 정성이 깃든 고들배기 김치는 그중에서도 백미다. 

가을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왕대추 산장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을거리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배 사장은 이곳 왕대추 산장을 찾는 손님을 올해 3만 명, 내년에는 5만 명으로 잡고 있다. 그는 "욕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보면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산속의 계곡물처럼 자신의 삶을 유용하게 흘려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땅에서 배운 또하나의 아름다운 삶의 가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호남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호남매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약대추산장 #닭곰탕 #배기섭 #억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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