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보석' 반대하는 검찰, 공정택 잊었나

[주장] 공정택이 누렸던 '무죄추정의 원칙', 곽노현도 누려야 한다

등록 2011.10.04 20:11수정 2011.10.0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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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권우성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 권우성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구속된 지 벌써 20일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식 기소가 되어 교육감직을 잃고 온전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된 지도 보름이 다 되어 갑니다.

 

'기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고 공언했던 검찰이 구속되는 날까지 꼬박꼬박 교육청에 출근해 업무를 보았던 곽노현 교육감을 구속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임 교육감이었던 공정택 전 교육감 사건 때와는 너무나 다른 검찰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교육철학이 전혀 다른 두 교육감을 겪으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인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두 교육감들의 사건을 처리하는 두 얼굴의 검찰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공정한 법 집행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 하에서는 '학력신장'의 기치 아래 학력 경쟁의 칼날에 이리 베이고 저리 베이며 고통 받는 아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반대로 곽노현 교육감이 이끌었던 지난 1년은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들과 새로운 교육적 시도들을 하면서 혁신학교를 만들어 가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행복이 조금씩 전염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법 사건이 터졌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공정택 전 교육감은 최소 세 번 이상 범법 시비를 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설마 곽 교육감이 이렇게 구속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두 교육감의 사건처리 과정을 비교해 보면 너무도 극단적입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은 검찰의 '과도한' 배려를 받았고, 곽노현 교육감은 검찰의 '가혹한' 공권력 남용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의 비리가 공개되었을 때 검찰과 사법부가 보여주었던 태도는 '무혐의'와 '행정공백을 우려한 불구속 수사'였습니다. 당시 검찰은 누구보다 교육행정에 대해 과분할 정도의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검찰은 공정택 전 교육감이 사설학원 원장, 사학 이사, 급식업체 사장, 학교 공사업체, 교장, 교감 등으로부터 수십 억 원의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도 '대가성 없음'으로 결론 내려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당연히 구속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지요.

 

교육행정의 최고 권력을 가졌던 이가 직접적인 이권 세력이나 직속 하급자들로부터 받았던 돈이 '대가없는 돈'이며 따라서 구속 따위의 처벌은 필요 없다는 것이 2009년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3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3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권우성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해 3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도착한 뒤 부축을 받으며 청사로 걸어오고 있다. ⓒ 권우성

 

공정택 전 교육감과 마찬가지로 '최고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어 그리 아쉬울 게 없었던 곽노현 교육감이 권력에 붙어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양보를 한 뒤 고통당하고 있는 이를 돕기 위해 주었던 2억은 '대가성 있는 돈'이고 '죄질이 중한 범죄행위'며 구속해야 한다는 것이 2011년 대한민국 검찰의 주장입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의 범법행위는 가히 화려합니다. 2008년 공정택 전 교육감 부인이 고교 동창 등의 명의로 관리하다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4억 원의 돈이 드러났을 때에도 검찰은 공정택 전 교육감을 재산 신고 누락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당연히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공정택 전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끝까지 수행했습니다. 물론 최종적인 유죄 판결을 받고도 그가 구속되지 않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건 대한민국 검찰의 교육행정을 걱정하는 눈물겨운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커녕 1심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심지어 변호인 측의 보석 요청 의사에 대해서도 결연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검찰의 태도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두 번이나 애틋하게 검찰의 보호와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택 전 교육감은 2010년 뇌물사건으로 결국 구속됐습니다. 한편의 애달픈 '지못미' 드라마를 보는 듯했습니다.

 

검찰과 현 정부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공정택 전 교육감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려 애썼는지, 그리고 검찰이 '교육 행정공백'을 얼마나 깊이 우려하고 있고 그 공백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해 지금까지 검찰과 사법부가 보여준 태도에서 나타난 형평성 결여가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곽노현 교육감은 구속되었고, 교육감직은 커녕 인신의 속박을 당한 채 구치소에 격리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법 관련 문제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법적 절차에 의해 그 시비가 가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곽노현 교육감도 최소한 공정택 전 교육감이 누렸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다행히 곽노현 교육감 측 변호사들이 보석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사건을 맡은 담당 재판부가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원칙적인 법리 적용이라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공정택 전 교육감 사건 처리와의 형평성이라는 차원에서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교사인 저는 교실과 학교만이 아이들의 학습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가정과 사회 모두가 학습 장소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법부 또한 살아 있는 아이들의 학습의 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도록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곽노현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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