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비판 시대에 읽는 박제가

<북학의>를 읽고

등록 2011.10.06 18:04수정 2011.10.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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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북학의>의 서문을 쓴 박지원은 '장차 어느 나라를 본받아서 진보해 나갈 것인가?'라고 해 박제가의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 있다.

 

여기서 어느 나라란 중국을 이르는 것이고, 이때의 진보란 서양의 문물이 상징하는 물질문명을 발달시키는 것이었다. 서구 물질문명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하게 비판을 받고 있는 때가 지금인데도 이런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 나라의 큰 병폐는 가난이라 합니다. 가난은 무엇으로써 구할 것인가 하면 중국과 통상하는 길뿐입니다"라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중국과 통상을 통하여 조선의 낙후된 현실과 처절한 민생을 박제가는 극복해 보려 하였다.

 

그가 눈길을 끝까지 떼지 못하는 것은 조선 민중들의 삶이다. 박제가는 자기가 쓴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민생이 날마다 곤궁해지고 재용(財用)이 날마다 궁핍해지는데 사대부들은 소매 손에 손만 꽂고 앉아서 이를 구원하지 않으려는가? 또한 옛 법에만 의존하여 편안하게만 지내면서 이를 모르는 것인가?"

 

자기 시대 사대부들의 안일한 자세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생이자 관료로서 그의 성실성을 본다. 민생에 대한 관심과 민중에 대한 애착이라는 그의 진정성을 찾게 된다. 그의 중국 문명에 대한 예찬은 출발점일 뿐이며, 그 알맹이는 조선 민중과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그의 책이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사람들의 손과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는 자기 시대 주류 학자도, 고위관료도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시대 "나라의 병폐는 가난"이라는 현실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타파하는 것은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다"고 여겼다. 다행히 그는 수행원으로서 청나라를 세 차례 방문할 기회를 잡게 되었고, 중국 문물을 실제로 경험하고선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가 중국의 문물을 예찬하며, 중국을 모델로 삼을 것을 역설하는데, 여기에는 조선의 학자들과 관료들에 대한 강한 불만이 묻어있다.

 

그는 중국을 피상적으로 소개하거나 두루뭉술하게 예찬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중국은 너무나 신기하고 놀랍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왜 조선은, 중국이 이렇게 발전하는 동안에도 답보 상태에 있는가, 하는 자책과 불만이 담겨 있다. 그가 정말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조선의 낙후된 민생이다.

 

민생을 끌어올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중들을 문화생활로 이끌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꿈을 이렇게 말한다.

 

"낚시와 사냥하는 데 배와 수레도 있으며, 아이들은 역질을 앓지 않고, 늙은이는 노래하고 글을 읊조리게 되기를 원할 뿐이다."

 

백성들이 저마다 문화생활을 하기 어려운 것도 열악한 민생 때문이다. 그는 이 열악한 민생현실을 자기의 그것으로 아파하고 있다.

 

그가 중국을 본받으려는 것은 물질문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의 관직에 청탁(淸濁)이 있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조선에서 나날이 성해지는, '독직(瀆職)하는 풍습'에 대해서도 중국과 비교하면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모든 직업이 나라를 위해서 필요할진대, "날이 갈수록 농사일은 더욱 가볍게 여기고 과거는 날이 갈수록 중요하게 여기게만 되는" 현실도 그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가 중국을 배우려는 건 순전히 조선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중국의 법을 배우는 일에 대해서도 박제가는 호의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순히 사대주의적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대저 명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 부끄러움을 씻으려면 이십여 년을 힘써 중국을 배운 뒤에 함께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284쪽)."

 

중국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분위기를 질타하면서 오히려 원수의 좋은 점을 배움으로써 원수를 극복하는 자세를 취하자고 박제가는 권면했다.

 

농사에 대한 그의 시각을 보면, 그의 시각이 균형을 잘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님께 올리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날이 갈수록 농사일은 더욱 가볍게 여기고 과거는 날이 갈수록 중요하게 여기게만 되옵니다." 농사하는 일이 통상하는 일이나 글을 읽고 쓰는 일보다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다른 것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언어에 대해서 박제가는 극단의 입장을 보인다.  중국말을 배워 그것만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박제가는 주장한다.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우리말을 아예 쓰지 말자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런 시각은 독자들의 시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극단적이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박제가를 읽어내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것을 보아야지 그의 손가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처절한 민생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제에 대한 애착이라는 큰 줄기에서 보면, 이러한 시각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의 시각일 뿐이며, 그의 모국어에 대한 시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한 시대에 그가 펼 수 있는 극단적인 주장이라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그의 이야기가 더욱 살갑게 들리는 것은 그가 쓰고 있는 말들이 민중들의 삶의 자리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이야기 하는 대안들이 구체적이고도 실현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첨부파일
북학의.jpg

덧붙이는 글 | 박제가, 북학의, 이익성 옮김, 서울:을유문화사, 2011

2011.10.06 18:04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박제가, 북학의, 이익성 옮김, 서울:을유문화사, 2011
첨부파일 북학의.jpg

북학의 - 시대를 아파한 조선 선비의 청국 기행

박제가 지음, 박정주 옮김,
서해문집, 2003


#박제가 #중상주의 #정치 개혁 #정조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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