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묵은 정치만 아니라 묵은 이념도 갈아엎어야

원외 정당된 진보신당에게 바란다

등록 2011.10.07 12:02수정 2011.10.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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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 엎어야 합니다. 고기도 50년 쓰던 고기판에 구우면 새까맣게 됩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어록 중 길이 남을 명언이 중 하나다. 노회찬 전 의원이 지난 2004년 3월 20일 KBS-1TV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하여 한 발언이다. 유권자들은 환호했고, 이 발언이 영향을 끼쳤는지 몰라도 민노당은 그해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얻어 진보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원내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 권영길(창원을)·조승수(울산북구) 후보가 지역구로 당선됐고, 정당득표율 13%를 얻어 8석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했다. 직전 총선인 제16대 총선에서 21명 후보 전원이 낙선한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민들은 민노당에 큰 기대를 했다. 민노당이 추구했던 노동자와 농민,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치는 다 이루지 못했지만 보수 정책만 쏟아진 국회를 조금은 왼쪽으로 옮긴 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했다.

2004년 민노당은 '희망'이었지만 2008년 민노당은 '분열'

하지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처럼 2007년 17대 대선 패배로 말미암아 민노당은 분열했다. 대선 패배를 두고 '종북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자주파'와 '평등파'라는 골깊은 노선 투쟁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다. 사실 민노당의 이런 노선 투쟁은 우리나라 정당 발전에 굉장한 유익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그동안 이념과 정파로 뭉친 정당이 아니라 지역주의 정당에 가까웠다.

정당 존재 이유가 정권을 창출하여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념과 사상이라는 토대 위에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 민노당은 자주파와 평등파가 각 정파의 제 이념에 따라 논쟁과 토론, 경쟁, 세력을 통하여 원내진출만 아니라 정권 창출까지 바랐지만 노회찬과 심상정, 그리고 조승수 의원 등은 끝내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3년 반이 지나 노회찬과 심상정 전 의원은 진보정당에서 탈당했다. 이어 조승수 의원 역시 7일 "진보통합에 대한 저의 생각과 진정성이 진보신당 대의원 동지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모두 다 개인의 부족함이라 생각된다"는 보도자료를 남기고 탈당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이제 진보신당은 의석수 하나 없는 정당이다.


조 의원은 또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을 부결시킨) 대의원대회의 결정과 진보신당을 통해 진보정치를 계속하려는 동지들의 판단을 진심으로 존중한다"며 "'진보신당의 깃발이 남아있는 한 이 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던 당 대표로서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며 진보신당에 대한 만감이 교차함을 보여주었다.

진보신당은 원외 정당


하지만 '진보통합'이란 더 큰 목표 때문에 진보신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당이 이념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노선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 역시 노회찬 전 의원이 7년 전 비유했던 '묵은 불판'일 수 있다. 시대가 변했다. 불판을 갈아야 한다. 자주파니 평등파니, 종복주의니 하는 것은 '묵은 이념'이다.

정치만 묵은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묵은 불판에 고기를 구울 것인가. 새로 갈아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이념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21세기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솔직히 민노당과 진보신당 당원이 아닌 유권자들이 자주파와 평등파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유권자들은 그런 논쟁에 관심이 없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거대 정당이 안철수 광풍이 휘청거리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이게 두 정당만의 위기일까. 아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낡은 이념에 매몰되어 종파논쟁만 일삼은 진보정당을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체 정당으로 인식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진보정당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정당 또는 정치세력으로 인정했다면 안철수 광풍이 아니라 민노당 광풍, 진보신당 광풍이 휘몰아쳐야 했다.

정파논쟁만 하는 진보정당, 유권자는 외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두 정당은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정파논쟁만 하는 정치세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극우와 보수세력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한 때는 진보신당원이었던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지난 3월 27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독자정당파'가 낸 '2011년 당 종합실천계획 수정동의안'이 통과되자 강하게 비판했었다.

"진보신당 당대회. 이른바 '독자파'가 승리한 모양이네요. 자기들끼리 자축 분위기입니다. 결국 나홀로 등대 정당하겠다는 얘긴데, 그 친구들이 모르는 건 그 등대에 전구가 없다는 거에요. 남 길 찾아주러 들기 전에 자기 좌표나 제대로 알았으면..."

"정당이 무슨 사회주의 동호회인지, 아니면 좌익 보이스카웃 캠핑인지, 아니면 틴에이저 소셜리스트 카페인지,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래 놓고 그걸 승리라고 자화자찬하고 자축들 하고 앉았으니...휴..."

문제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탈당에서 보듯이 진보신당 중 일부는 아직도 민노당과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국민참여당 문제가 있지만 이념 논쟁이 큰 이유다. 이른바 이념 순혈주의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묵은 이념 논쟁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묵은 이념 불판 갈아야

진중권씨는 또 지난 5월 26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간 '진보정치대통합'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가 결렬되자, 27일 트위터를 통해 민노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노당에서는 종북노선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것 같네요. 그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통합을 위해서라도 그냥 앞으로 북한의 3대 세습이나 인권문제에도 비판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될 일을... 그걸 안 하네요. 그건 죽어도 못 한대요."

"한심한 인간들입니다. 21세기에 다 망해가는 봉건왕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니... 그러고도 '진보'의 시늉을 하겠다니... 이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죠. 사이비 종교. 정치적 신념이 종교화하면 참 힘들어지죠."

민노당 역시 국민참여당과 통합안을 부결시켰다. 진중권씨 독설이야 이미 아는 바라 이런 비판이 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쓴소리다. 진보정당을 살리는 소리다. 아직도 '빨갱이 때려잡자'는 극우세력의 붉은 덧칠이 외면받은 것처럼 자주파 평등파 논쟁 그리고 종복주의 운운하는 진보정당 내부 투쟁 역시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을 것이다.

80년대 낡은 이념 불판을 갈아 엎어라 그래야 진보정당이 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 #민노당 #진보신당 #묵은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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