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 야반도주한 신부... 사연 들어보니

[기사 공모- 결혼] 소개팅 주선했다가 소송 당할 뻔했습니다

등록 2011.10.13 08:55수정 2011.10.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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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따운 외모, 빛나는 볼륨 몸매, 유려한 말솜씨로 자타가 공인하는 '퀸카'임을 자랑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본색은 고단수 사기경력으로 별을 달고 있는 '터프걸'이었으니….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그 집 며느리 될 사람이에요"라며 등장하는 영주(김하늘 분)의 모습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앞으로 전개될 '애정빙자 사기극'의 전초전을 예고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비련의 여주인공 그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그랬다, 아리따운 여인을 앞에 두고 내 친구 민수(가명)에게 벌어진 파란만장 파혼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 많은 노총각의 이상형은?... 165cm이상+미인+날씬녀 '뷰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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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포스터 ⓒ 시네마 서비스

그러니까 벌써 10여 년 전이다. 중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 때문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민수는 악착같이 벌어 또래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무렵 이미 아파트 장만은 물론 고급차를 끌고 다녔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이미 기반을 잡았으니 이제 여자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결혼 후 아내의 눈치를 받고 살아가는 친구들과 달리 아직 싱글인 그는 지출 부문에서 통제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항상 친구들 사이에선 '물주'로 통했다. 나이 서른을 넘어선 특수차 운전직이었지만 그래도 어엿한 대기업의 협력회사 직원이었다. 결혼만 하면 모든 게 만사 오케이였지만 늘 여자가 문제였다.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이상형. 165cm 이상의 무조건 날씬하고 예쁜 여성, 이른바 '묻지 마, 뷰티걸'이었다.

이 이상형의 기준에는 일말의 타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들을 몇 번 소개로 만나보긴 했다. 하지만 얼굴이 뛰어나게 예쁘지 않으면 절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결국 월급은 유흥비로 탕진하기 일쑤였고 사귀는 여성은 주로 정체불명의 직업여성들이었다. 그나마 또 여자가 생겼다 싶으면 6개월도 가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나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내는 민수가 원하는 스타일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여 년간 연락이 끊겼다가 최근 고향집으로 돌아와 얼마 전 우연히 마주친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내가 고심 끝에 내놓은 비장의 카드, 민수의 이상형 '그녀'는 바로 영희(가명)였다.

몸매는 물론 미모에 언변까지 갖춘 그녀, 영희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역시 아내의 말대로 내가 봐도 그녀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예쁜 여자에게 한 번 꽂히면 헤어나지 못하는 민수, 결국 영희와의 첫 만남에 그만 홀려 버리고 말았다.


미모 밝히는 민수 vs. 돈 밝히는 영희

민수가 유독 미모만 밝혔다면, 영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돈을 밝혔다. 영희가 미모에 언변까지 겸비했다면, 민수는 은근히 경제력을 과시했다. 영희도 민수와의 첫 만남에서 바로 꽂히는 듯했다. 하지만 영희의 눈에 들어온 건 민수의 외모나 마음이 아닌 바로 만고불변의 관심 대상인 경제력이었으니…. 이유야 어찌됐든 두 사람이 서로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까지는 딱 맞아 떨어졌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우리 부부와 과감히 연락을 끊은 그들은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나날을 보내는 듯했다. 무엇 하나 걸림돌이 될 것도 없었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트를 즐겼다. 아무리 분위기를 잡아도 영희씨가 스킨십(?)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뷰티걸'이라는 위로감 하나만으로도 민수는 그저 좋았다.

이윽고 한 달 후 우리 부부를 찾아 온 민수와 영희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제 겨우 만난 지 한 달되었는데, 벌써 결혼을 준비하고 있단다. '너무 빠른 것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 민수를 따로 불러 물었다.

"만난 지 이제 한 달 되었는데…. 그렇게 될 수가 있는 거냐? 벌써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거면 좀 빠른 것 같은데? 그리고, 너 저번에 전화했을 때 영희씨가 유난히 스킨십을 거부한다고 고민하던데, 진도는 좀 나간거야? 뽀뽀나 해봤냐?"
"흐흐흐, 진도는 무슨…. 아직 손도 못 잡았어. 하지만, 너무 걱정 마. 결혼하면 해결될 거야…."

"야, 이 바보야! 결혼한다면서 손도 못 잡았다면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이면 너무 짧은데…. 신중히 생각해, 최소한의 신뢰는 있어야 하니 집안과 성품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해라. 그리고 영희씨가 이렇게 빨리 결혼을 허락한다면 그 이유도 잘 생각해봐."
"야, 신부가 예쁘니까 배 아프냐? 친구가 잘 되가는데 제발 초치지 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민수는 들은 체 만 체, '소귀에 경 읽기'였다. 예쁜 여자면 사족을 못 쓰는 민수, 어찌나 즐거운지 이미 입이 귀에 걸려 웃고 있었다. 

한 달 만에 결혼선언... 아파트에 혼수까지 일사천리로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수는 마치 마법에 홀린 듯 서둘러 상견례를 마치고 영어 이름으로 된 최고급 아파트 전세계약까지 마쳤다. 그것도 부족해 신부 측 몫이라는 가전제품과 혼수까지 신용카드로 마구 지르기 시작했다. 조금 무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그렇게 결혼식 날짜까지 잡히며 잘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결혼식을 1주일을 앞두고 한밤 중에 갑자기 민수가 찾아왔다. 영희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야, 영희가 연락이 안 돼. 이거 어쩌면 좋냐? 며칠 전부터 묻는 말에 잘 대답도 안하고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그저께 밤부터는 휴대폰도 안 되고…. 집에도 안 들어왔다고 그러는데…. 아, 미쳐버리겠다!"
"너, 혹시 싸웠냐?"

"아니, 그것도 아니야. 싸울 일이 뭐가 있겠어. 그저께 아침까지만 해도 한참 통화했는데…. 의견 차이나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어. 혹시나 해서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했는데 영희씨 집에서 조금 더 기다려보래."

민수는 일 주일 동안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쓰디 쓴 소주병을 들이키며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흑흑, 영희씨를 찾아내란 말야!"하며 영희씨 집 안방에서 죽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울부짖어도 결국 결혼식 날짜는 그렇게 지나가 버렸고, 순진한 민수는 일생 일대 치욕적인 파혼의 경험을 겪고 말았다. 아…, 불쌍한 민수는 구슬피도 울어댔다.

"한 달 동안 영희씨 손이라도 한 번 잡아봤다면 또 억울하지도 않겠다. 예쁜 여자 타령만 하다 말 한마디 못하고 파혼당한 나 같이 멍청하고 불쌍한 놈도 없을 거야."
"결혼식 준비도 다 끝난 상태에서 이렇게 돼 더 안타깝구나. 하지만, 내가 볼 땐 지금 시점에서 파혼한 게 너한테 더 잘 된 일일지도 몰라."

나의 어줍잖은 위로도 민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일은 그 다음에 터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아,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결혼 1주일 앞두고 행방불명된 신부,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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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앞두고 도망가는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런어웨이 브라이드>의 한 장면. ⓒ A Garry Marshall Film

소개해준 사람 팽개치고 자기들끼리 몸이 달아서 결혼날짜 잡고 다 저질러놓더니, 정작 영희씨 집에서 "배 째라!"며 '나 몰라라'로 나오자 이제는 나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신혼집 장만은 물론 가전, 혼수, 예물, 부모의상 비용에 신혼여행, 청첩장, 예식장 사진 계약금까지 다 나에게 책임지라는 분위기다.

중매는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뺨이 석대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소개팅 주선 한 번 해주고 소송 당하게 생겼다. 중매가 잘못되면 당사자는 물론 집안까지 두고두고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급기야 민수의 어머니, 형수, 형님 등 가족들이 나에게 전화를 해대기 시작했다. 이 분들도 처음에는 "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하는 애원조로 시작하더니 결국 "어떻게 그런 여자를 소개시켜 주느냐?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보느냐?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너도 이 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걸"하며 염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결혼준비에 들어간 비용 전체 책임은 물론 (어디서 귀동냥했는지)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책임지란다. 파혼을 유발한 측이 보상 의무가 있다고 달려드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야속하면 차라리 뺨이라도 때릴 것이지…. 민수가 좀 더 현명하게 처신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이건 뭐 다 나한테 떠넘기는 분위기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 날짜를 잡더니, 결혼식 날짜 지난 지 하루 만에 기다렸다는 듯 벌써 '책임' 문제 운운한다. 후~, 한숨만 나온다.

민수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실연의 상처를 생각하니 또 그렇게 모질게 항변도 못할 노릇이다. 인생이 끝난 것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술로 나날을 보내는 놈이, 일부러 씩씩한 척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안쓰럽다. 야속한 영희씨, 끝낼 생각이면 어찌되었든 당당히 해결을 하고 가든지…. 왜, 나만 나쁜 사람 만들어 놓고 이렇게 도망을 가시나이까.

자기들끼리 저질러 놓고 소개한 사람한테 책임져라?

결국 파혼과 관련된 소송방법과 보상사례를 찾고 법전을 뒤져가며, 최고장과 내용증명을 내가 대신 작성해 수차례 협박(?)했다. 둘만의 일이니 책임지지 못하겠다며 한 달을 저항하던 영희씨 부모도 끝내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민수의 통장에는 결혼준비에 들어간 비용은 물론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청구한 금액 전액이 입금됐다. 아, 근데 왜 이리 기쁘지 않을까? 영희씨 부모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이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영희씨는 그 전부터 알고 지내는 한 스님과 도피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몇 달 후 돌아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는 말이 "정말로 그 사람과 결혼하려고 했단 말예요. 그런데, 하늘의 뜻이라 스님을 따라 암자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다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결혼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조급해진 영희씨가 돈만 보고 결정한 민수에게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일까?

과연 영희씨는 민수가 영원히 일생을 맡길 수 있는 인연이었을까? 어쨌든, 민수는 조상님이 도왔다. 그래도 결혼 전에 영희씨의 이중성(?)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때 암자로 도피한 영희씨가 스님으로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왔다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민수야, 당시는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잖니. 여자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모두 못 믿을 게 여자는 아니란다. 지금 너와 함께 하는 지영(가명)씨는 영원히 믿는 거지? 날짜 잡아놓고 파혼당한 아픈 과거는 잊고, 이제는 미용사 지영씨 만나서 잘 살고 있지?! 영희씨 도망가고 이제 한국에서 장가가기는 틀린 것 같다더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명언은 없다. 그러나 저러나 영희씨 부모님한테 받은 돈, 아직도 남은 게 있으면 술 한 잔 사라!'

덧붙이는 글 | '결혼, 그 사소한 모든 것' 응모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결혼, 그 사소한 모든 것' 응모 글입니다.
#결혼 #파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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