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 동생이니 어련하겠니...너 부반장 해라"

[나의 멘토①] 언니 덕에 부정선거 개입...그게 멘토의 시작이었다

등록 2011.10.23 17:58수정 2011.10.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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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멘토는 누구십니까?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의 멘토가 누구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도 아니고 직장 생활에 애를 먹는 청춘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득 당신의 멘토가 누구입니까, 하는 갑작스런 물음에 나도 모르게 두 살 위의 언니를 떠올렸다. 이 스스럼없는 대답에 나 자신조차 놀라고 있었다.

 텔레마코스와 멘토르

텔레마코스와 멘토르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는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간 사이 아들 텔레마코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조언과 조력을 아끼지 않고 올바른 길로 인도한 훌륭한 스승 멘토르. 어린 텔레마코스를 훌륭한 성인으로 길러 낸 이는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친구인 멘토르였다.

반항기의 텔레마코스처럼 불안전한 인간인 나를 늘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사람은 고작 두 살 차이 언니다. 언니가 내 인생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건대 멘토의 위치에 언니를 올려놓는 것이 전혀 손색이 없다. 두 살 위의 언니가 성인이 된 내 인생에 이렇게 커다란 존재로 자리할 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어린 시절 언니는 말이 없고 행동이 느려 약간 모자란 아이처럼 취급되었다. 아홉 살이 되어서야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도 아마 언니의 그런 미덥지 못한 성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랑 언니는 나이로는 두 살 차이지만 학년으로는 한 학년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학교에 입학한 조용한 언니는 늘 혼자서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의 호롱불 밑에서 아이는 혼자 글자를 깨치고 산술을 익혔다. 그 시간에 나는 나가서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땅 따먹기를 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움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 아이들도 다 나랑 비슷했다. 언니는 좀 달랐다. 그래서 나는 언니를 좀 무시하는 편이었다. 나는 곧잘 어른들 앞에 불려나가 노래와 춤으로 그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당연히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밤낮 책만 들여다보며 공부만 하고 앉아서 그 재미있는 나이 먹기 놀이에도 숨바꼭질에도 고무줄놀이에도 끼지 않는 언니는 참 한심한 아이였다.

언니 덕에... 부정선거의 주인공이 되다

그런 내가 언니 덕을 톡톡히 보는 일이 생겼다. 막 2학년을 올라가니 담임선생님은 전학년도에도 똑같은 교실에서 2학년 담임을 하신 분이셨다. 이제 3학년으로 올라간 언니의 작년 담임이셨던 것이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이틀인가 되던 날. 나는 반 아이들 몇 명과 남아서 선생님이 새로 교실을 꾸미는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언니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 제 언니도 작년에 2반이었어요."
"그래? 언니가 누군데?"
"저기, 정은경이요."

나는 언니라는 호칭도 생략했다. 집에서도 나는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맞장을 떴던 것이다. 그런데 언니 이름을 들으신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껴안으시면서 너무 대견해 하셨다.


"어머! 정은경이? 공부 잘하는 쌍봉리 정은경? 그런데 동생이랑은 전혀 안 닮았구나. 그러고 보니 이름은 비슷하네. 세상에 은경이가 언니야? 정말 반갑구나."

그날부터 선생님의 나에 대한 지독한 편애는 시작되었다. 단순히 정은경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선생님에게 정은경이라는 아이는 자신이 교직에 발을 들인 이래 가장 착하고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독특한 아이였다. 학년이 바뀌어 그 아이를 보낸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런데 마침 한 학년 아래 은경이 동생이 또 들어왔으니 너무 반갑다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선생님에게 언니 '아바타'였다.

그런데 나는 언니 아바타가 될 수 없었다. 공부도 싫어하고 덜렁대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늘 울거나 까불거나 했다. 학기 초, 아직 시험을 한 번도 치러본 적 없어 내 실상을 모르는 순진한 선생님. 내가 언니 절반만 해도 일, 이등은 거뜬할 것이라고 착각하시는 것 같았다. 어차피 정은경이 같이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아이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독특한 아이는 십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니까.

 지난 3월 8일 오후 새학기 전교회장 선거철을 맞이한 가운데 경기도 수원 고색초등학교에서 전교회장과 부회장에 출마한 어린이들이 4학년 교실을 돌며 사랑과 즐거움, 웃음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 것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오후 새학기 전교회장 선거철을 맞이한 가운데 경기도 수원 고색초등학교에서 전교회장과 부회장에 출마한 어린이들이 4학년 교실을 돌며 사랑과 즐거움, 웃음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 것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생님의 언니 아바타에 대한 특혜는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공공연히 행해졌다. 대표적인 일은 선생님과의 담합으로 내가 여자부반장에 당선된 일이었다. 선생님은 방과 후에 나를 은밀히 부르시더니 뒷일은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내일 부반장 후보에 무조건 나오라고 하셨다. 당시는 남자가 반장을 하고 부반장은 여자, 남자 각각 한명씩이었다. 그러니 여자아이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부반장이었다. 선생님은 단순히 정은경이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를 부반장에 앉혀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내가 할 일은 선생님과 미리 약속한 대로 교단에서 임시반장이, '자, 다음은 여자 부반장 하고 싶은 사람!'할 때 '저요'하고 힘차게 손을 드는 것이었다. 순박한 시골 아이들 중 누구도 스스로 학급임원이 되겠다고 손을 들 맹랑한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생님과의 밀약이 있었다. 아니면 나를 추천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식상 몇 명의 후보자를 더 천거 받는 절차를 거쳐 본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본선과정에서 관망해야 할 담임선생님이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하셨다. 갑자기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절차를 바꾸시고 나는 엉겁결에 부반장이 되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학급임원투표법에 입각한 공정한 선거였지만 그 내용은 엄연한 부정선거였다.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한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선생님의 부당한 선거개입으로 부반장에 선출되었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아이의 급부상을 의아해 했다.

OOO 동생이니 어련하겠니... 참 잘 나갔다

한동안 공부 잘하는 언니를 등에 업은 나의 전횡은 계속되었다. 부반장 직권으로 친구들을 무시로 통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의 척도인, '선생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중간놀이 시간에 두 명씩 짝을 맞춰 추는 포크댄스에서 선생님의 파트너로 선택되어 맨 앞에서 선생님과 손을 잡고 스텝을 맞추는 영광도 모두 내 차지였다.

"호호호. 우리 미경이 때문에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이렇게 편하구나. 아직 배우지도 않은 노래를 어떻게 계이름까지 척척 부르니. 아이들이 너 부르는 거 따라 하니까 선생님 가르치기가 한결 수월하다. 역시, 정은경이 동생이라 다르다니까."

음악시간. 선생님은 풍금을 치시는 사이사이 고개를 빼고 나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시다 다시 풍금 건반을 신나게 두드리신다. 언니가 물려준 음악책에는 언니가 가사 밑에 또박또박 써 놓은 계이름이 줄에 맞춰 적혀 있었다. 음은, 언니가 작년에 음악책을 펴놓고 몇 번씩 연습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자연스럽게 따라 배운 것이었다. 나는 언니처럼 교과서를 받자마자 한 학기 공부를 며칠 만에 독학으로 끝내버리는 공부벌레가 아니었다.

음악시간뿐 아니었다. 언니가 물려준 교과서에는 언니가 일일이 깨알 같은 글씨로 기입해 놓은 문제풀이와 정답과 해설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중요한 대목에는 별표 표시도 잊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친절하게 달아 놓은 각주와 해석을 적절히 활용만 하면 되었다. 순진한 선생님은 내가 질문에 손을 들고 답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정은경이 동생이니 어련하겠니."

정은경이는 그 후로도 학창시절 내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는데 나는  항상 까불고 성격 나쁘고 이기적으로 놀았다. 여전히 언니에게는 언니라는 호칭을 절대 안 썼다. 어른들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나에게 벙어리 같은 언니는 늘 만만한 아이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성인이 된 자매는 멀리 떨어졌다. 언니는 강원도로 나는 광주에. 일 년에 잘 해야 한두 번 밖에 못 만나지만 언니는 늘 내 옆에 머문다. 가족 중에 나랑 가장 많은 세월을 함께 한 사람이 언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는 산골마을을 떠나 대처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허름하고 비좁은 자취방에서 자매 셋이 부대끼며 고생했던 세월은, 그 기억만으로 우리사이에 끈끈한 정을 새겨 놓았다.

우리 딸 진로까지 꼼꼼 체크... 정말 나의 '멘토'

 외모는 물론 성격, 삶이 너무 다른 자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외모는 물론 성격, 삶이 너무 다른 자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DNA프로덕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언니랑 나랑은 놀랍도록 기질이 비슷하다. 어릴 때와 달리 언니는 무척 유머러스하고 명쾌하고 화끈한 성격으로 변했다. 거기에 더해 언니는 정의롭고 합리적이며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다. 한마디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그런 언니 인품에 나를 묻혀가기가 부끄럽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자매는 놀랍도록 닮아가는 것 같다. 비슷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성실함과 넓은 도량을 따라 가려면 나는 한참 멀었다. 

나는 매사를 언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언니가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언니는 이럴 때 어떤 충고를 해줄까를 생각하면서 살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 전혀 닮지 않은 외모에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세상을 보는 눈, 세상을 사는 방식은 어느새 닮아가는 것 같다. 아니 닮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직까지 언니처럼 합리적이고 정의롭고 신중한 사람을 내 인생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언니는 확실한 나의 멘토다. 한 번도 언니에게 이런 내 마음을 표현한 적 없지만 그녀를 향한 내 사랑과 존경의 마음은 부모님 이상이다. 어쩐 일인지 세상과 멀어져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동생을 언니는 늘 안타까워한다. 옛날하고 상황이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언니의 관심과 노력 때문에라도 나는 서서히 세상에 나를 맞추려 노력한다. 

나를 향한 그녀의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은 이제 내 아이에게까지 이어져 같은 학년의 아이를 똑같이 기르면서도 내 아이를 챙기는 쪽은 항상 언니다. 내 딸의 성격이나 진로 문제에도 엄마 못잖게 신경을 쓴다. 자신의 아이가 누리는 것을 내 아이도 똑같이 누리게 하고픈 마음이 강하게 엿보인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이모의 고마움을 아직 모른다.

"라훌라!(딸 가명. 내 핸드폰의 딸 닉네임- 장애물, 걸림돌이라는 뜻) 큰 이모야. 너 혹시 시저가 죽어가면서 '아, 누구 너마저! 하면서 죽잖아. 그때 시저가 말한 '누구, 너마저'의 누구가 누군지 생각나니? 기억 안 난다고? 대사는 생각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 중3이면 '부루투스 너마저!'라고 바로 튀어나와야지. 너 저번에 이모가 사서 읽으라던 세계역사 책 읽고 있어? 뭐? 엄마가 아직 안 사줬다고? 엄마 바꿔봐."

언니는 종종 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돌발퀴즈처럼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요즘 관심 가는 과목은 무엇인지 자주 체크를 한다. 아이가 당연 싫어할 수밖에.

"너, 내가 라훌라한테 세계역사 책 사서 읽히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도 안 사줬니? 뭐? 출판사하고 책 제목? 내가 저번에 자세히 불러줬잖아. 애한테 신경 좀 쓰라니까. 아니다. 그러지 말고 이사한 집 주소 불러. 내가 바로 사서 택배로 부칠게. 헌성이도 이 책 너무 재밌다고 단숨에 한 질을 읽었어. 라훌라도 좋아할 거야. 다 읽으면 이모랑 책에 대해서 대화하자고 해. 내가 다른 거 또 질문할 것도 있고."

이모가 보낸 책이 택배로 배달되어 오던 날. 아이는 질려버렸다. 세상에나 이렇게 지루한 책이 재미있다고? 두꺼운 책이 일곱 권이었다. 게다가 같은 학년인 사촌 녀석은 이 딱딱한 책이 재밌다고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니.

"아! 엄마. 책이 너무 지루해요. 죽어도 못 읽겠어. 며칠 있으면 큰 이모가 전화해서 책 내용 물어볼 건데 어떡해. 아, 좋은 생각. 엄마가 대신 읽고 저한테 얘기해주면 안돼요?"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언니는 늘 그런 식이다. 단순히 다그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후속조치로 물량공세가 늘 뒤따른다.

딸아이는 왜 이모를 좋아하지 않을까

직장 생활에 두 아이를 기르면서도 언니는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적극적이다. 나는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아이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빌빌거린다. 그러니 애가 타는 쪽은 늘 언니다.

"이번 방학에 라훌라 어디 보내니?"
"아니. 그냥 집에 있는데."
"중 3인데 견문을 넓혀야지. 넌 방학이 되어도 아이 해외견학 한번을 안 보내더라. 애를 그렇게 방치하면 안 돼. 헌성이는 저번에 중국 갔으니 이번 방학엔 15박 16일로 북유럽 보냈다. 알았으면 라훌라도 함께 묶어 보낼 걸. 아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언니는 다음방학엔 우리 딸을 패키지로 묶어서 견문을 넓히라고 멀리 보낼 태세였다. 

"엄마 큰 이모가 방학에 나 어디 보내래요?"
"으응, 북유럽."
"으악, 안 돼. 엄마 나 그런데 가기 싫어요. 멀고 이상한 남의 나라를 왜 가라는 거야. 엄마. 나 절대 그런 나라에 보내면 안 돼. 알았지?"
"염려 마. 엄마는 돈이 없어서라도 못 보내니까."
"휴! 살았다. 난 큰 이모 싫어. 서울 막내이모가 훨 좋아." 

불시에 전화로 점검을 해서 귀찮게는 하지만 또 간간이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보내오는 큰이모를 표 나게 배척할 수도 없고 아이에게 그 이모는 좀 어려운 존재다. 막내 이모처럼 한 번씩 만나면 용돈이나 듬뿍 쥐어주면서 예뻐졌다고 칭찬해주고 그럼 얼마나 좋아. 하여튼 큰 이모는 좀 독특한 어른이다. 게다가 그런 이모에게 엄마는 전적으로 의지한다.

아침저녁으로 자신에게 먹기 싫은 홍삼 진액을 먹이라고 종용한 이도 큰 이모고 아빠가 거의 사줄 뻔한 아이폰4를 아이에겐 과분하다고 무산시켜버린 사람도 큰 이모란 걸 안다. 큰 이모는 정말 만만한 어른이 아니다. 그런 아이도 언젠가는 큰 이모의 관심이 얼마나 고맙고 축복이었던가를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옛날에 나는 언니 아바타였다. 언니는 지금 내 멘토고 나는 그녀의 멘티다. 이 멘토링 관계는 서서히 바뀌어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이 너무 가혹하다. 오랜만에 철든 동생이 나의 멘토에게 오랜 세월 맞장 뜨며 생략했던 호칭을 붙여 보낸다. 언니!
#멘토 #언니 #아바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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