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세인트 폴 시네마
떠들석한 밀레니엄의 시작이 엊그제 인 것 같은데 벌써 2030년, 내 나이 60살이다. 30대에는 60대면 노인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60대라는 현실에 맞닥뜨려보니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위안 삼아 새로운 한해를 맞는다.
공식적인 나의 첫 번째 직업은 한옥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목수다. 작년부터는 스스로 가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좌에서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올해 목표는 나와 나에게 배웠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가구들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이미 팔려나간 것은 사진으로 전시를 할 생각이다. 이렇게 나는 일주일 중 하루는 강의를 하고 3일은 가구를 만든다. 한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몇 개월 동안 여기에 매달려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다른 일을 한다. 그것은 젊었을 때 취미였던 사진찍기다. 그냥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고 돌잔치나 결혼식 같은 이벤트 사진을 찍어준다. 원래 사진찍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취미도 살리고 돈도 번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이 블로그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곳들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한 출판사에서 이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것을 제안해 와서 조만간 책이 나올 예정이다.
아내도 젊은 시절 취미였으나 바빠서 늘 미뤄뒀던 비디오 편집을 직장 퇴직 후에는 아예 직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3일은 돌이나 결혼식 사진과 비디오를 편집한다. 평상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역사해설가 과정을 수료한 뒤 토요일마다 고궁 해설가로 변신해 학생 등 관람객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4일~5일 정도 일을 한다. 그러나 지금 하는 일은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지겹고 힘든 '일'이 아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평생에 걸쳐 꼭 해보고 싶었던 내 '꿈'이다. 그래서 젊었을 때가 아닌 60을 바라보는 지금이 오히려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50대까지는 가족을 위해, 자유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더 중요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정말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젊었을 때 반드시 지킨 두 가지 목표
지금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50살까지 "아이 학비를 마련하겠다", "빚을 지지 말고 살자"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그 대신 그 돈을 대학 등록금으로 쓰기 위해 15년 이상 꾸준히 저축했다.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는 대신 전세를 살고 저축해서 이자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이 목표와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두 가지 직업을 통해 내가 60만 원 집사람이 60만 원, 합해서 약 120만 원 남짓(2011년 물가기준)을 벌고 있다. 여기에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작은 집을 선택했고, 작은 집을 넓게 쓰려고 하다 보니 살림살이도 최대한 줄였다. 여유 시간이 많으니 채소는 주말농장에서 다 키워서 먹는다. 결정적으로 아이 교육비를 100%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미리 준비해 놓은 터라, 풍족하진 않지만 지금 버는 120만 원은 우리 두 부부의 생활비로는 크게 부족함은 없다.
많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이자도 있다. 65세부터는 국민연금도 수령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달 약 200만 원 정도의 생활비가 모인다. 지금 우리 부부는 때로는 여행도 가고, 앞으로 태어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른, 내가 꿈꾸는 일을 종이에 정리해보자그러나 돌이켜보면 30대인 나에겐 노후라는 단어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회사에서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졌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돈 쓸 곳은 점점 더 많아졌다. 또 적어도 내 집 한 칸은 마련하려 했지만, 집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버렸다. 현실이 이러니 노후준비를 그저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로만 생각했다. 어차피 생각해 봤자 지금 현실에서 뾰족한 해답은 없다라는 심정으로 자포자기 했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50대 이후 삶, 10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남아 있는 50년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은 늘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직장에서 퇴직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올수록 이런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과연 우리 가족이 모두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내 30대를 괴롭혔던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꿈꾸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머릿속이 아니라 종이에 써 보는 일이었다. 30대 때 내 직업은 프로그래머지만 나의 꿈은 내 집을 내가, 한옥으로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상시 손재주가 있던 나는 우리 집에서 쓰는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목수라는 직업을 생각해 냈고 프로그래머에서 퇴직하면 목수를 해야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도 친구들이 대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반복하며 아르바이트로 고생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적어도 등록금만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안심하고 공부하고 있다. 또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모님 덕분에 나중에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워 졌다는 것에 대해 무엇보다도 고마워 한다.
노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지금도 TV 광고에서는 골프 치고, 크루즈 여행 가고, 편의시설이 다 갖춰진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이 행복한 노후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부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 삶을 동경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해외여행은 자주 가야 겨우 1~2년에 한 번이며, 골프 치고 산다고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실버타운의 시설과 프로그램도 매일매일 하다 보면 오래지 않아 지겨워 질 것이다.
우리 부부는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내 자아를 실현하고 꿈을 이뤄가는 노후가 진정한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잘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직업으로 연결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건, 젊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행복이다.
2030년 내 나이 60살,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앞으로 100살까지 산다면 40년이 더 남았다. 오래 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꿈을 더 꿀 수 있다는 것이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에는 노후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막연히 두려워만 했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사실은 그다지 두려울 것은 없다. 아니 나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어 오히려 노후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한다.
넓고 다양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만들어 간다는 건 그 어떤 보물을 찾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오늘도 나는 내 인생이라는 지도에서 그 보물을 찾는 탐험을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사)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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