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첫날과는 달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원 없이 나선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14일 선거유세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나 후보는 14일 오후 4시 43분부터 재래시장인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을 약 15분 동안 돌면서 상인과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이날 공식 선거운동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 후보는 세광약국 골목 도매시장 2번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시장 안쪽으로 50여m를 걸어가며 좌판을 벌인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노년층이 많고 중년층도 섞여있는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 나 후보에게 반색했다. "가지 6개 1000원!"을 외치던 중년의 야채 상인은 나 후보가 가지 2000원 어치를 달라고 하자 가지를 싸주며 "이번에 꼭 되십시오"라고 덕담했다.
육류를 파는 한 할머니 상인은 한 표를 부탁하는 나 후보에게 "말로만 하지 말고 꼭 책임을 지세요"라고 당부했다. 나 후보는 이날 이런 당부들에 대해 "잘 알겠습니다, 안심하세요"라는 대답을 즐겨했다. 자신의 이번 선거 구호 '나경원이라면 안심하세요'를 활용한 것.
이날 나 후보는 시장에서 상인들과 시민들을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바나나 한 다발 5000원, 버섯 2봉지 5000원, 가지 12개 2000원 총 1만2000어치를 샀고, 버섯 상인으로부터 오이 2개를 덤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날 이 시장에 있던 시민들이 모두 나 후보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나 후보의 '보행 중 흡연금지' 공약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한 노년층 남성은 담배를 문 채 나 후보 일행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다가 나 후보측의 수행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담배 물고 길 가는데 왜 지X이냐"며 수행원을 한참 동안 노려보기도 했다.
시민 직접 만나 악수하는 것 택한 나경원 후보
이날 나 후보가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안쪽으로 들어간 거리는 50여m. 돌아나오면서도 지지를 호소했으니 시장 안에서 100여m 정도만 이동하면서 유세를 한 셈이다.
나 후보는 바로 앞 유세일정이었던 휘경동 이경시장 방문도 계획보다 훨씬 일찍 마무리했다. '시장 골목이 예상보다 좁았고, 마침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이어서 유세가 자칫 시민들의 불편을 부를까봐 이경시장 일정은 계획보다 빨리 마무리했다'는 게 나 후보측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오전 8시 10분부터 40여분 동안 진행한 지하철 종각역 앞 유세에서도 나 후보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진 의원 등과 함께 비옷을 입고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인사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나 후보측 공식 선거운동 차량인 마티즈 승용차에 달린 확성기에서는 나 후보의 선거운동노래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다른 선거에서 만큼 쩌렁쩌렁하게 크게 울리지는 않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유세차량에 올라 확성기를 이용해 연설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선거운동 방식이지만, 이런 방식에서 탈피해 시민들을 직접 만나 악수하고 인사하는 쪽을 택한 것.
"저비용·저소음·저인력, 낮은 자세로 한다"
나 후보측 이종현 공보특보는 "저비용·저소음·저인력을 목표로 '낮은 자세로 시민 속으로'가 선거운동 기조이기 때문에 유세차 위에 올라서 마이크 잡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후보 선대위는 이번 유세 기간 동안 '1일 1봉사'를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날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배식봉사를 한 것은 이 계획의 일환이다.
'봉사활동의 비중을 높이고, 낮은 자세로 바닥을 훑겠다'는 것은 지난해 7·28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서 이재오 의원이 취했던 기조다. '조용히 유권자들을 만나 손을 잡겠다'는 것은 지난 4·27 성남시 분당을 보궐선거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보여줬던 선거운동 방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나 선거운동 첫날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의 지원유세를 받았고 이런 지원은 향후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재오 의원의 '나홀로 선거운동'과는 차이점이 있다.
또 이날 나 후보가 했던 봉사활동이 '식사 나르기 8번', '식판 설거지 4분'에 그쳤고 청량리 청과물 도매 시장 방문도 15분 만에 끝났다는 점에서 이재오·손학규식 체력전과도 차이가 있다.
'조용한 선거운동 방식을 택한 게 이재오·손학규식 아니냐'는 질문에 이종현 공보특보는 "기존의 선거운동 방식으로 하자는 쪽도 있었지만, 나 후보가 이렇게 하는게 자신에게도 맞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며 "우려도 있었지만 '거창하게 하지 말고 슬림하게 하자'는 데 대해서 시민들의 반응도 의외로 좋다"고 답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공유하기
'낮은 자세' 선거운동 나경원, 손학규 따라하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